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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종교

죽음에 이르는 병, 그것은 절망하는 것 :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ch.1

by Caferoman 2021. 10. 2.

독서노트

“인생이란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한가! 한 사람을 땅에 묻는다. 무덤 자리까지 그를 따라간다. 삽으로 흙을 퍼서 그의 시신 위에 세 번 뿌린다. 마차를 타고 도착한다. 마차를 타고 집에 온다. 앞으로 살날이 많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한다. 10년을 일곱 번 곱하면 어느 정도의 세월일까? 왜 이번에는 답이 안 나올까?”(『이것이냐 저것이냐』, 27쪽)

 

절망한 사람은 온통 자기 생각뿐이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에 절망하는 것은 진정한 절망이 아니다. 절망의 시작일 뿐이다. 의사가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절망은 마음속에 있는 의견을 들려주는 것뿐이다. 우리 자신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사랑 때문에 절망하는 젊은 여자를 보자. 연인이 죽었든 바람이 났든 연인을 잃은 젊은 여자 말이다. 여자가 절망하는 것은 연인을 잃어서가 아니라 자신 때문이다. 여자는 가장 감미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해체하고 버렸다. 이제 그녀에게 자아는 적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적이 되어야 한다.”(『죽음에 이르는 병』, 358~359쪽)

저자의 표현대로 "절망은 나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입니다. 아무리 주변에서 그렇게 깊게 빠져있지 말라고, 너무 자신만 생각하면 너만 더 힘들거라고 이야기 한다고 해도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만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바로 절망의 괴로운 실체다. 끝이 내면으로 향하는 이 극심한 고통으로 언제나 우리는 무기력한 자기 파괴에 더욱 몰두한다. 절망한 사람은 절망으로 자기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안이 아니라 고통을 느낀다. 그 고통으로 앙심은 커져가고 이를 악문다. 과거의 절망을 현재 끝없이 쌓아가며 자신을 삼켜버릴 수도,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도, 자신을 없애버릴 수도 없어 절망한다. 이것이 절망이 쌓여가는 공식이다. 자아 때문에 절망이라는 병이 들어 열은 높이 올라간다.”(『죽음에 이르는 병』, 35쪽)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절망의 특성은 바꿔말하면 스스로 자기 자아를 너그럽게 바라봐 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 를 위로해 줄 상대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키에르케고르는 인정을 절망의 해결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키워드로 제시합니다.

 

“시저처럼 되는 것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야심가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시저처럼 되지 못할 때 절망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다. 그가 자신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시저처럼 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시저처럼 되지 못해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시저가 아닌 자신에게 절망하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자아가 그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존재가 된 셈이다.”(『죽음에 이르는 병』, 358쪽

 

멜랑콜리의 어원

mélancholie : 슬픔을 동반하는 우울한 정조(情調),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비애, 침울 등의 감정이 드는 상태

멜랑콜리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의사들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체액을 네 가지로 나누고, 흑담즙이 과도하게 나오면 우울증이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흑담즙이 흑(mélan) + 담즙(cholie) 인 것이죠.

 

“멜랑콜리에는 타인이 죽어서 상을 당했을 때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감정이 있다. 자존감 하락이나 자기 비하 같은 감정은 없다. 상을 치루고 나면 세상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멜랑콜리에서는 자신이 불쌍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멜랑콜리 증상이 있는 환자는 자신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무능한 존재로 묘사하며 마음속으로 자신을 비난한다. 환자는 자신을 비판하고 욕하며 코너로 몰고는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으려 한다. 환자는 누구 앞에서든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처럼 한심한 인간과 알고 지내는 지인들에 대해서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 정신적인 자기 비하에 이어 불면증과 거식증이 나타난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버팀목이 되어주는 의욕도 눈에 띄게 사라진다.”(프로이트, 「초상과 멜랑콜리Deuil et mélancolie」, 『메타심리학Métapsychologie』, Gallimard, 1968)*

 

우울증과 달리 절망은 철저히 개인이 자신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속한합니다. 자기 자신을 가치없고 부정적인 존재로 매도하거나 오해하는 것이 절망의 원인이라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온전한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라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온전한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 어렵다 보니 기본적으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실제로 열심히 노력했는지는 질문하지 않는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모든 철학 이론을 가리켜 행복주의 철학이라고 한다. 행복주의 철학 이론도 그리스 고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행복주의 철학자들을 대표한다. 이들 철학자는 행복을 추구했고 최적의 조건에서 행복에 다가가는 법을 찾아 헤맸다. 이들 이후에 나타난 행복주의 철학자들은 스피노자와 니체다.

 

행복을 찾아서 떠나는 철학여행에 중간쯤에 위치한 키에르 케고르입니다.

 

“인간 안의 미학이란 무엇일까? (……)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인간 안의 미학은 인간이 즉각 자기다워지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다.”(『이것이냐 저것이냐』, 480쪽)

“미학적인 인간은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내부와 내부를 다시 구분한다. 부수적인 것과 핵심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지나치게 상대적이다. (……) 자신을 미학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구분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나는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우연히 발견한 재능으로 본다. 하지만 내게는 재치와 통찰력이 있다. 이것은 정체성과 관련된 핵심적인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런 구별은 전부 환상이라고.”(『이것이냐 저것이냐』, 540쪽)

 

갑자기 행복을 이야기 하다가 '미학'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당황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키에르케고르는 '행복주의'라는 용어 대신 '미학'이라는 용어를 선호했습니다. 따라서 위의 미학은 '행복추구','행복을 추구하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객관적인 지식에 대한 환상

“결국 이성이란 희한한 존재다. 무엇을 보더라도 온갖 열정을 갖고 바라보면 천지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게 다가오지만 열정 없이 바라보면 하찮게 다가온다.”(『이것이냐 저것이냐』, 29쪽)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이것저것 배우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성숙해지고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지적인 것이 훌륭하다고 자주 이야기하는데 교육의 참된 중요성을 부인할 것인가? 우리가 그것을 원하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에너지와 열정을 주자. 그러면 그 사람은 온전한 존재가 된다.”(『이것이냐 저것이냐』, 545쪽)

 

다른 필로테라피 시리즈는 관심이 있었던 영역을 위주로 포스트 하나에 추릴수가 있었는데 키에르케고르는 그러기가 쉽지가 않네요.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도덕과 종교, 신과 인간에 대한 개념 등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필로테라피 시리즈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 발타자르 토마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 셀린 벨로크

우울한 날엔 니체 - 발타자르 토마스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Part.1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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