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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종교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 발타자르 토마스 (feat. 벤자민 리벳의 실험)

by Caferoman 2021. 8. 9.

독서노트

모든 철학자에게는 두 명의 철학자가 있다. 자기 자신과 스피노자다. — 앙리 베르그송

지적인 면에서 그보다 뛰어난 철학자들은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그를 따라갈 철학자는 없다. ― 버트런드 러셀

철학자들의 왕, 신학으로부터 철학을 구출해 낸 철학의 그리스도. ― 질 들뢰즈

스피노자가 부릅니다 What is Love?

“우리와 지복과 비참함은 모두 오직 하나의 요소에 달려 있다. 즉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지성개선론』

스피노자가 정의 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다소 딱딱하고 지루할 것이라 예상했던 철학책을 보다 읽기 편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주제와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하지만 그 표현이 진부하지 않은 그런면에서 스피노자의 책은 여타 철학자들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흔들리는 정서를 안정되게 잡아주는 닻이며 감정의 정글에서 우리가 기준을 삼는 나침반이다. 다만 그런 감정이 바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닻일 수도 있고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나침반일 수도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정서의 대상 대신에 올바른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사랑하는 대상만이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사라진다 해도 슬픔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다른 이의 수중에 떨어졌다고 해도 질투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고통, 미움, 혼란도 생기지 않는다.”
“사랑받는 대상이 기뻐하고 있다는 이미지는 그 대상을 사랑하는 이의 정신의 노력을 증진시킨다. 즉 사랑하는 이의 기쁨의 정서를 강화한다. 사랑받는 이가 느끼는 기쁨이 더 클수록 사랑하는 이의 기쁨 또한 그렇게 더 커진다.”(『에티카』, 3부, 명제 21, 증명)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미움을 가지기 시작해 결국 그 사랑이 전부 사라진다면 (동일한 원인에서) 전혀 사랑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많이 미워하게 될 것이고, 전에 그 사랑이 컸다면 그것에 비례해 미워하게 될 것이다.”(『에티카』, 3부, 명제 38)

정신은 신체를 사유하고 신체는 정신을 실천한다

“정신은 할 수 있는 한 신체의 활동 역량을 돕거나 증대시켜줄 것을 상상하고자 한다.”(『에티카』, 3부, 명제 7)

“단지 자신의 행동은 인식하지만 그 행동을 결정한 원인을 모르는 것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유의 관념은 그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그 어떤 원인도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성립한 것이다. 그들이 인간 행위는 의지에 의존한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행위의 원인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가지지 않은 채 하는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지가 무엇이며 그 의지가 어떻게 신체를 움직이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것에 무지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잘난 척하면서 본부를 차지하고 그곳에 머무는 영혼을 발명해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조소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에티카』, 2부, 정리 35, 주석)

최근 인간의 뉴런 운동에 대한 연구는 "행동을 인식할 수 있지만 그 행동을 결정한 원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스피노자의 주장 다시말해 "행동이 의지보다 앞선다"는 주장을 지지해주는대요 이 뇌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실험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벤저민 리벳의 "행동은 판단에 우선한다"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 교수는 실험 참가자의 근육에 측정기를 달고, 머리에는 뇌파 검사기를 붙여서 뇌파를 측정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에게 시계 앞에 앉아서 마음 내킬 때 버튼을 누르게 한 뒤, 자기가 버튼을 누르겠다고 처음 자각한 시간을 보고하게 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버튼을 누른다고 생각하는가? 일반적으로 ‘버튼을 누르자’라는 욕구가 생기고 버튼을 누르는 행동이 나타난다고 예측할 것이다. 이를 간단히 도식화해서 풀어보자. 즉, 행동하겠다고 자각한 시점을 Aawareness로, 뇌의 준비 과정인 준비전위를 RPreadiness potential로, 버튼을 누르는 행동을 Mmovement이라고 하자. 이 가운데 뇌의 준비전위라는 용어가 낯설지 모르겠다. 이는 동작을 위해 뇌세포 신호가 발생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는 A → RP → M의 순서가 맞다고 예상할 것이다. 언뜻, 움직이려는 의지에 의해 뇌에서 신호가 발생하고, 이어서 손의 근육이 움직이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리벳의 실험 결과는 기이했다. 결과는 RP → A → M의 순서였다. 뇌에서 준비전위(RP) 동작을 위한 뇌세포 신호가 발생했고, 버튼을 누르겠다는 의도를 자각한 다음(A), 버튼을 눌렀다(M). 리벳의 실험 결과만으로 보면, 움직이려는 의지를 의식하는 시점은 이미 두뇌가 움직임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낸 이후다. 버튼을 누르겠다고 의도했을 때, 뇌는 이미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난 결과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자각하기 전에 이미 뇌는 행동할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의도가 행동보다 앞선다고 여길 수 있는 자유의지는 착각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는 셈이다.

이 실험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사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단순히 그 순서의 차이정도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인간이 인공지능이나 기계와 구별되는 정체성의 요소 라고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실재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실험의 결과가 지지하는 스피노자의 철학 중 하나는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착각과 달리 오직 신만을 진정 자유로운 존재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하물며 신조차도 그가 원하는 대로 이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인간인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죠.

신은 아담이 금지된 과일을 먹지 못하게 하고 낙원에서 아담을 추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신은 유다의 배반을 막을 수 있었으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신은 쇼아나 리스본의 지진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까닭은 바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신 자신이 원했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고 아담에 대한 처벌과 추방을 의도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사건이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사건은 신이 인간에게 전달하기를 원한 메시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중 일부

“사람들이 자유롭게 태어났다면, 또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한 선과 악에 관한 어떤 개념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에티카』, 4부, 명제 43)

스피노자의 생애

1656년 스피노자는 24세에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을 당했습니다. 그의 파문과 관련한 증언 자료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스스로 “신은 철학적으로만 존재하며 따라서 유대교의 율법은 틀렸다. 정신은 신체와 함께 소멸하기 때문에 신앙은 쓸모 없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사실을 인정했다. 매우 무시무시한 의식과 함께 진행된 파문식에서 스피노자를 저주하였는데 그 저주는 아래와 같이 어마무시했습니다.

“마하마드의 지도자들은 우리가 선언하는 그 순간부터 스피노자를 파문하고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했다. 천사와 현자들의 판단에 힘입어 신과 신성한 공동체의 승인을 받아 631개의 계명이 쓰여 있는 이 신성한 두루마기 앞에서 우리는 바루흐 데 스피노자를 파문하고 저주하고 비난한다. (……) 그는 낮에 저주받을 것이고 밤에 저주받을 것이다. 그는 잠들 때 저주받고 깨어날 때 저주받을 것이다. (……) 이 책에 적힌 모든 저주가 그에게 덮쳐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울 것이다. 이 율법 책에 쓰여 있는 모든 저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모든 부족과 악에 빠진 그를 떼어놓을 것이다. (……) 스피노자와는 아무도 친교를 맺어서는 안 되며 편지를 써서도 말을 해서도 안 된다. 아무도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서는 안 되며 그와 4큐브 이내의 거리에 함께 있을 수 없다. 아무도 그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머물 수 없으며 그가 쓴 글은 아무도 읽어서는 안 된다.”

스피노자는 예의 바른 자, 겸손한 자, 현자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철학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스피노자를 좋지 않게 평가했던 피에르 베일도 자신의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스피노자와 이런저런 친분을 가졌던 사람들과 은거를 한 이후 한동안 그가 살았던 마을의 농부들은 모두 입을 모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피노자는 정직하게 거래했고 다정했으며 충직하고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관습적 규칙을 충실하게 따랐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 사람들이 비록 교회의 율법을 충실히 따랐던 이들이긴 하지만 스피노자가 그토록 순박하게 살았던 이들에게 감탄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 피에르 베일

스피노자의 삶은 위선적 도덕보다 엄정한 논리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위대한 철학자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사랑받을 만하다. 지성의 관점에서 과연 그를 뛰어넘은 철학자가 있다면 아마도 그는 도덕의 관점에서도 역시 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살아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사후 몇백 년 동안 무시무시한 악의 인간으로 여겨졌던 것은 논리적으로 지당한 결론이다.” - 버트런드 러셀, 영국 철학자

그의 걸작 『에티카』에 대한 본 저자의 평가

『에티카』는 스피노자가 쓴 걸작이다. 이 책은 그의 전체 철학을 보여주고 발전시키고 설명하고 정의한 책이다. 설득력 있는 논의를 위해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자신의 논지를 펼친다. 즉 수학적 증명의 과정을 본떠 각각의 명제는 선행하는 명제에서 연역된다.

그는 사랑, 환희, 분노, 우울, 공포, 희망 등의 정서가 이성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우리 인간 세상을 정서와 분리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인간 세상은 정서의 세계다. 기쁨의 정서가 없다면 이성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정서 없는 이성은 다만 그림 속의 사자 같은 것일 뿐이다. 정서가 없다면 인간은 이성만으로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고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삶의 조건과는 무관하게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선택하고 행위를 할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인간 또한 다른 여타 동물들과 같이 끝없이 그물망처럼 이어진 인과관계의 필연적 힘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느끼는 것은 외부 원인에 의해 결정되어 추동되는 ‘욕망’ 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느끼는 욕망의 참된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그 원인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착각해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잘난 척한다는 것이다.

보통 욕망은 결핍을 채우려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스피노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욕망은 곧 인간의 본질이다. 스피노자의 욕망은 결핍된 적이 없다. 욕망이 결핍된다는 것은 곧 그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욕망은 한 존재의 실존 자체이다. 즉 욕망은 그가 존재하는 근거이자 그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지 결핍되거나 넘칠 수 없는 것이다.

함께하기 좋은 것들

책비게이션

괴테, 헤겔로 가실분께서는 이번 역에서 하차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스피노자는 후대에 수많은

빠돌이

추종자들에 의해 추앙받는 철학자가 됩니다.
그 중에서 이어서 알아보기 좋은 철학자 둘을 고르자면 괴테와 헤겔을 꼽을 수 있겠네요. 이 두 철학자에 관련된 저서는 차후에 소개드리겠습니다.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본 책은 아무래도 스피노자의 철학과 그의 여러 저서에 대해 개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만큼 스피노자의 매력에 한층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의 저서를 읽어봐야겠죠. 그런면에서 스피노자의 걸작 중의 걸작 『에티카』를 추천합니다.

두번째 책은 스피노자의 생애와 관련하여 유사한 행보를 보인 파스칼의 저서 『팡세』입니다.
스피노자가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되면서 자신의 신에대한 관념과 철학을 보다 확고하게 완성했다면 파스칼의 경우도 가톨릭교회의 내부개혁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신앙과 교회에 대한 철학을 완성시킨 케이스이거든요.

독서노트에서 언급했던 자유의지와 인간의 정체성에 관련된 항목이 궁금하다면 『4차 인간 - 이미솔, 신현주, 한빛 미디어』 를 추천합니다.

다른 필로테라피 시리즈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 발타자르 토마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 셀린 벨로크

우울한 날엔 니체 - 발타자르 토마스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Part.1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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