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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종교

고민보다 Go :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feat. BTS

by Caferoman 2021. 10. 4.

무력한 날엔 아리스토텔레스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독서노트

필로테라피 시리즈 중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시리즈입니다..
다들 윤리/철학 수업시간에 한번쯤 들어본, 하지만 막상 그의 철학이 무엇인가로 정의 내리기엔 색깔이 불분명한 철학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소크라테스처럼 명언(이라고 쓰고 독설이라고 읽는) 대잔치를 하며 그럴싸한 어록이라도 충분히 남겨놓거나 니체처럼 확실한 자기 캐릭터를 구축하지 않아서 그런가 개인적으로는 뭔가 따분하고 무색무취의 철학자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사실 결정적으로 이 애매한 캐릭터에 한 몫을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워낙에 다방면에 학식이 뛰어나 온갖 분야에서 저서를 남긴 다작왕이라서 일까요? (마치 작품을 찍어내듯 난사하던 김성모 작가의 만화처럼)

아무튼 고대 철학을 논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는 그의 주옥같은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에게 전하는 레스형의 일침

“많은 사람은 이런 일들은 행하지 않고 말로 도피하면서 자신들은 철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방식으로 신실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태도는 의사의 말을 주의해서 듣기는 하지만 처방전을 전혀 따르지 않는 환자들과 비슷하다. 이런 식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신체가 좋은 상태일 수 없는 것처럼, 이런 방식으로 철학하는 사람들의 영혼 또한 좋은 상태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1, II, 1105 b 12~18)

 

레스형의 아들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의 구절중 일부인데요. 뭔가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 라는 표현을 다소 유하게 돌려까는 솜씨가 역시 그 아버지에 그아들인 것 같네요.

“의사는 병을 치료해야 할지에 대해서 숙고하는 것이 아니며, 연설가는 설득을 해야 할지에 대해 숙고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가 역시 좋은 법질서를 세워야 할지에 대해 숙고하지 않고, 여타의 사람 중 누구도 목적에 관해서는 숙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목적을 설정한 다음 그 목적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것들을 통해서 이루어질지를 고찰한다.” (『윤리학』, III, 1112 b 13~16)

레스형 버전의 "고민보다 GO - BTS"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앎에는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처해 있는 궁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앎을 어떤 이상처럼 여기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일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종종 왜 그토록 안쓰러워 보이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은 오히려 우리 욕망이다. 저지된 욕망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욕망보다 훨씬 더 발견하기 쉽다. 당신의 분노가 있는 곳에 당신의 욕망도 있으니……. -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분명 레스형의 저서 윤리학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자꾸 "욕망"이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는데, 무기력한 사람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 책은 바로 이 "욕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덜 욕망하는가? - 무기력한 현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

오늘 뭐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거나 라고 대답하는 우리는 어쩌면 욕망의 부족함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자문해 봐야합니다. 강요하는 부모, 지시를 내리는 선생, 명령하는 고용주들, 이들에게 고분고분하게 굴다 보니 우리는 타협을 하고 욕망을 아주 조금 갖게 된 것은 아닐까요?

 

또한 우리는 어떤일에 지나치에 몰입한 나머지 본래의 의도와 방향을 잃고 결국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버는 일에 몰두해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왜 자신이 그렇게 그 일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잊고 마는 경우처럼.

 

괴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유부녀를 향한 사랑과 좌절이 없었더라면, 키에르케고르에게 약혼자 올센을 향한 사랑과 파혼의 과정이 없었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죽음에 이르는 병』 과 같은 명작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저자는 희망과 목표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행동의 이유를 빼앗겼을 때, 가장 밝게 빛나는 의미와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제와도 같은 '우리의 무기력함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결론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우리는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 다른 것 때문에 추구되는 것보다 더 목적이 된다고 말하며,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는 않는 것이 그 자체로도 선택되면서 다른 것 때문에도 선택되는 것보다 더 목적이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될 뿐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는 일이 없는 것을 단적으로 목적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윤리학』, I, 1097 a 32~35)

 

그 자체로 가치있는 목적이 다른 부수적인 목적이나 이유/조건을 가지는 목적보다 중하다.
라는 말인데... 번역의 문제인지 처음에는 몇번을 잃어도 '뭔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삶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큰 어리석음의 표징이니까.” (『에우데모스 윤리학』2, I, 1014 b 10)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윤리학 저서에서 언급된 내용을 정리하면 "가장 가치있는 목적을 기준으로 정렬된 삶을 살아라"인데, 확실히 워딩면에서 촌철살인을 일삼았던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카리스마가 떨어지는 것 같네요.

 

사랑이란 착각을 유지하는 기술이 아닐까?

“관능(에로스)적인 사랑은 대부분 감정에 따른 것이며 즐거움을 이유로 성립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가 순식간에 헤어진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하면서.” (『윤리학』, VIII, 1156 b 2~4)

“애호의 감정은 만듦(능동)을 닮았지만 사랑받음은 받는 것(수동)을 닮았다. 그런데 사랑하는 일이나 친애하는 태도와 감정은 행위에서 더 우월한 사람들에게 속한다. 게다가 모든 사람은 힘들여 이룩한 것을 더 사랑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돈을 직접 번 사람은 물려받은 사람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 그런데 선행을 받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닌 것 같은 반면, 선행을 베푸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윤리학』, IX, 1168 a 20~25)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왜 "윤리학"이라는 책에서 자꾸 사랑이라던가 욕망, 삶의 목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고 그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말하는 윤리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도덕적 관점에서의 그 '윤리'가 아닌 "살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목 "윤리학"에 혼동을 일으킬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히 이를 "행복학"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이 구절은 데살로니가 서신에서 언급된 "사랑의 수고"를 연상시킵니다. 물론 레스형이 바울보다는 훨씬 이전 사람이니 바울이 레스형의 윤리학을 참고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데살로니가전서1:3-4)

 

행동하는 즐거움 - 즐길 줄 아는 아마추어 예찬

아리스토텔레스가 ‘프락시스praxis’라고 부르는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델에서는 목적이 행동과 별개로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고, 하물며 행동보다 우위에 있지도 않다. “실천은 사실 제작이 아니고 제작도 실천이 아니니까.”1 우리는 출판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글쓰기 자체를 즐길 수 있다. 메달과는 상관없이 수영을 하는 일 자체에서, 자신의 수영 능력이 점점 향상되는 것을 보는 일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응답해주리라는 희망과는 별개로 기도를, 그 느린 리듬을, 그것이 주는 평온함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천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태도이다. 실천에는 행위 전체에 외적인 목적으로 부가될 즐거움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실천은 우리의 타고난 무절제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즐거움은 행위 자체에 있고 그 자체로 충분하며, 그것 이외의 다른 목표나 외적인 목적은 없다.

 

이 책에서 레스형의 윤리학은 이 정도로 다루고 이제 그의 다른 저서 정치학을 언급하는데.
(놀라지 마시기를. 이 형님이 살아 생전 다룬 ⨉⨉학, ⨀⨀학은 한둘이 아니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놀이를 허용하되 제때에 이용해야 하며, 마치 약을 처방하듯 해야 한다. 놀이가 우리 마음에 주는 효과는 이완이고, 놀이가 주는 즐거움은 휴식을 가져다주니 말이다. 그러나 여가는 즐거움과 행복과 복된 삶을 자체에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노동하는 자가 아니라 여가를 즐기는 자에게 주어진다. 노동하는 자는 아직 달성되지 않은 목표를 향해 노동하는데, 행복은 하나의 목표이며 행복에는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 수반되는 것으로 모두 믿기 때문이다.” (『정치학』, VIII, 3, 1337 b 40~1338 a 6)

뭔가 장황한데 한줄로 요약하면 "진정 즐길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 Ha~", 싸이의 챔피언 도입부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숙고

“남의 연주를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몸소 연주를 해봐야 하기 때문에 젊어서 연주하기 시작하되, 나이 들어 젊을 때 배운 것 덕분에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고 음악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알게 되면 연주를 그만두어야 한다.” (『정치학』, VIII, 6, 1340 b 35~39)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남의 나팔 연주를 평가할라면 일단 니가 나팔을 불어봐!" 정도의 내용인데 이런 내용이 과연 『정치학』이라는 책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인지... (아무래도 레스형은 일단 자기가 쓰고싶은 ⨉⨉학, ⨀⨀학 등등의 책표지를 몽땅 만들어 놓고 아무말 대잔치를 한 것은 아닌가 실로 의심됩니다. 뭐랄까 박찬호의 야구해설 같다고나 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전제는 사람은 누구나 탁월함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다는 확신 위에 서 있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기를 실현하는 데 실패할 때마다 쾌락을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바로 좌절된 이 욕망이다. 최선을 다하고 빛을 발하고, 성공하고 정점에 도달하는 것, 이런 것이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열망을 오만이라고 비난하기는커녕 그와 반대로 완전히 쏟아부으라고 우리에게 권유한다.

 

분명 책의 주제가 무기력한 사람들을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인데, 레스형은 "무기력하지 않으려면 자기 내면의 욕망을 불러일으키세요!"라고 하고 있는듯 합니다. 즉, 전교 1등이 전하는 "너의 열정을 발산해봐 너도 할 수 있어"와 같은 공허하고 재수없는 위로와 같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네요.

 

행복이란 무엇인가

“마치 균등한 것이 더 작은 것에 대해서는 더 크고 더 큰 것에 대해서는 더 작듯이, 그렇게 중간적인 품성상태는 감정에서나 행위에서나 모자라는 것에 비해서는 지나치지만 지나치는 것에 비해서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용감한 사람은 비겁한 사람에 비해서는 무모해 보이고 무모한 사람에 비해서는 비겁해 보이니까. (……) 이런 까닭에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중간에 있는 사람을 각기 반대쪽 극단으로 밀어내고, 비겁한 사람은 용감한 사람을 ‘무모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무모한 사람은 그를 ‘비겁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른 경우에도 유비적으로 그러하다.” (『윤리학』, II, 1108 b 15~28)

한줄요약 : 인생만사 상대적임

 

“만일 행복하다는 것이 삶과 활동 속에서 성립하고, 처음에 이야기한 것과 같이 좋은 사람의 활동이 신실하며, 그래서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라면, 또 자기에게 고유한 것도 즐거운 것에 속한다면,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들을 볼 때보다 가까운 사람들을 볼 때 더 잘 볼 수 있다면, 또 친구로서 신실한 사람들의 행위가 좋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이 행위들은 본성상 즐거운 두 가지 속성을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극히 복된 사람은 이런 친구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윤리학』, IX, 1169 b 31~35)

 

한줄요약 : 무기력한가? 그럼 진정한 행복을 위해 욕망하라.

두줄요약 : 진정한 행복이 뭔지 알고 싶나? // 나의 수많은 다른 저서들을 읽어봐라.

이렇게 너무나도 많이 알고 말도 많은 스승을 둔 알렉산더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레스형 : 산더야~ 오늘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10가지 이야기 중 첫번째 주제에 대한 개요는 말이다...
산더형 : 아오, 저 그냥 전쟁이나 할래요!

 

함께하면 좋은 것들

음악 :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 - Monocrom(1999), 고민보다 Go - BTS

레스형이 강조하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내면의 욕망은 이 노래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내 전부를 걸어 보고 싶은 그런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 ?

또한 이 책과 어울리는 곡으로 BTS의 고민보다 Go가 떠올랐습니다.
"살아가는 일이 종종 왜 그토록 안쓰러워 보이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은 오히려 우리 욕망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과 묘하게 어울립니다.

걱정만 하기엔 우린 꽤 젊어
오늘만은 고민보단 go해버려
쫄면서 아끼다간 똥이 돼버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전후의 고대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의 스승(플라톤)과 그 스승의 스승(소크라테스)의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직접 쓴 저서는 없지만요.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플라톤
  • 파이돈 - 플라톤
  • 향연 - 플라톤
  • 국가 - 플라톤

행복철학의 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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