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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종교

열린 인문학 강의, 윌리엄 앨런 닐슨 : 철학

by Caferoman 2021. 8. 27.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세 유대인 : 예수와 바울 그리고 필론

경제가 번영하는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유물론과 쾌락주의가 나타났습니다. 종교는 기껏해야 형식적이었을 뿐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퇴폐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윤리적 요소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사라지고 부정이 판치는 시대에 대한 반역이 전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짓밟힌 양심의 갈망을 충족시켜주고 지중해 제국을 채워줄 정도로 충분히 큰 체제를 제시하는 지도자라면 누구라도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 유대인, 즉 예수와 바울, 필론이 이 일에 앞장섰습니다.

 

예수를 다른 유대인과 같은 선상에서 놓고 그들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대담하고 참신했습니다.
유물론이 성행하기 훨씬 이전에 로마의 속국 출신의 한 개인이 바라던 마음의 평안과, 세상의 변화는 무엇이었을지 사상가이자 지도자였던 예수라는 관점에서 그의 언어들을 재조명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인것 같습니다.

 

철학이 스스로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지 못한다면 철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철학이 도움이 된다면, 그 이유는 철학이 스스로 제공해주는 것 이외의 어떤 기준으로도 측량할 수 없는 뭔가 다른 의미를, 그 자체로 뭔가 특별한 의미를 삶에 부여해주기 때문입니다.

 

위 구절은 다른 영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를태면
"음악은 스스로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지 못한다면 음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라던가
"신앙이 도움이 된다면, 그 이유는 신앙이 스스로 제공해주는 것 이외의 어떤 기준으로도 측량할 수 없는 뭔가 다른 의미를, 그 자체로 뭔가 특별한 의미를 삶에 부여해주기 때문입니다." 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아무 (형이상학적인) 단어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있어보이긴 하지만 실속 없는 문장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겐 철학과 시 모두가 필요하다

모든 논증에는 통찰이 있고 모든 통찰에는 논증이 필요하므로 시와 철학이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갈릴레오가 끼친 이중의 영향력은 근대 철학을 새롭게 만든 가장 중요한 원천입니다. 베이컨과 로크는 이성보다는 감각을 신뢰하고 발견의 정신에 의해 고무된 철학의 관찰자였지요. 데카르트, 홉스, 스피노자는 수리철학자이자 이성의 옹호자로서, 지식을 확장시키기보다는 지식을 더욱 확실하게 만드는 데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갈릴레오의 발견과 주장이 미친 영향력은 베이컨의 경험론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설명하며 저자는 베이컨의 경험론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에 이어 17~18세기 유럽 철학의 흐름을 간단히 요약하면서 넘어갑니다.

 

베이컨의 경험론

베이컨은 인간의 왕국인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지식 위에 지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힘은 하나로 만나게 된다.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 자연은 명령을 받으면 복종하게 되어 있다. 원인으로 여겨지는 것은 규칙으로 작동된다.” 자연을 이용하려면 자연을 관찰하라, 그래서 자연을 인간의 거주지, 도구, 보물로 바꿔라.

베이컨의 경험론은 ‘소박한 역사적 방법론’을 인간 정신의 연구에 적용한 로크에게서 쇄신되었고 존재를 지각(“존재는 지각이다”)으로 환원한 버클리에게 계승되었으며, 흄에 이르러 회의론적 위기를 초래했고 영국의 국가철학으로 존속되었습니다.

데카르트의 합리론

데카르트의 합리론은 대륙철학이라는 거대한 형이상학적 체계, 스피노자의 일원론과 라이프니츠의 이원론의 토대가 되었고 볼프에게서는 단순한 형식주의와 독단론으로 떨어졌지만 칸트가 이끌었던 새로운 독일 관념철학에 살아남았습니다.

로크와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끌어낸 유사한 요소가 뒤섞인 홉스의 물질철학은 프랑스 혁명의 발발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유물론 운동으로 발전되었고 물리학으로부터 형이상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모든 철학자의 모델로 남았습니다.

 

17~18세기 서양철학의 한계 가운데 칸트의 두두둥장

보편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지식의 거인들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당대에 불명확하게 드러나는 경향을 구체화하는데, 그런 경향은 대체로 이전 시대를 지배했던 경향에 반발해서 나타납니다. 둘째, 싹트기 시작한 그들의 사상은 추종자들 사이에서 더 자라나면서 결국 원작자도 알아보기 어렵게 됩니다.

17~18세기 철학은 막연하게 이야기되었던 ‘영혼’의 요구를 상대적으로 무시했다는 점인데요,당시 철학의 특징은 '인간 인식의 두 가지 중대한 원천, 감각-지각 혹은 이성 가운데 둘 중 하나를 고립시키거나 지나치게 강조했다' 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칸트는 역작 『순수이성비판』(1789)에서 감각-지각과 이성 모두에 필수적인 규정을 만들어 극단적인 관점을 교정하려 했던 것입니다.
칸트는 말했습니다. 개념 없는 지각은 맹목적이고 지각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고.

사람들은 이적이나 독단이 없는 ‘자연종교’●, 권위가 없는 이성적인 도덕성, 계시나 신앙이 없는 증명 가능한 신학의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진의는 퇴색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자신의 외부에 남겨놓게 되자 인간은 의지할 곳도 없고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느꼈습니다. 17세기 초에 파스칼은 데카르트의 수학적 합리론을 통해 종교의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자연종교는 흄에 이르러 간단하게 무신론으로 바뀌었지요. 시대정신 전체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선동적인 저항은 루소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루소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신뢰하고 마음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기본적이고 자연 발생적인 인간의 본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칸트의 철학을 통해서 당대 철학이 가지고 있는 인식론에서 벗어나 정신 그자체가 중심이 된 인식을 주장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계에 새로운 중심을 설정했다면 칸트는 인식에 새로운 중심을 설정하려고 했습니다. 새로운 중심이란 정신 그 자체였지요. 이전 시대의 오류는 주로 인식의 중심을 대상에 두려 했기 때문에 지각이든 이성을 통해서든 정신은 외적인 자연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방법론으로는 회의주의나 철학적 논점으로는 불충분한 독단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칸트는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방법은 대상이 정신에 따라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사고는 일종의 행위입니다. 일반적으로 행위는 양심을 통해서 드러나는 나름의 법칙을 가지고 있지요. 양심의 법칙은 인식과 같은 특정 행위를 지배하는 법칙에 우선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양심이 지성을 위압한다거나 의지가 자연에 폭력을 가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양심은 자연보다 더 심오하고 실재적인 세계, 그래서 의지가 실행하는 데 적합한 또 다른 영역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신, 자유, 영혼불멸의 세계입니다. 이 영역은 완고한 감각으로는 인식될 수가 없습니다. 인식을 통해 알 수 있는 영역은 자연뿐입니다. 이 영역은 믿을 수 있고 믿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역이야말로 모든 행위의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과학을 정당화하면서 출발했던 칸트는 신앙을 정당화하면서 끝을 맺었던 것입니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책인데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만큼이나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내가 왜 이런 무익학 잠꼬대같은 책을 붙잡고 졸고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난이도가 높은 책일 것 같아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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