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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종교

철학계의 옴므파탈 쇼펜하우어 :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BGM The Ocean - N.EX.T)

by Caferoman 2021. 10. 3.

독서노트

“인생은 전체로 보아도, 부분으로 보아도, 계속되는 기만 같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인생의 허무와 고통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자, 쇼펜하우어

삶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철학자들의 언어유희/사고유희를 읽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이래로 읽어온 철학서적들을 헤아려 보니 가장 빈번하게 나온 이름은 바로 “아르뚜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였습니다.

이 철학자에게 애착을 가지는 이유는 참 단순한데요,

  • 병맛 스럽지만 매력적인 어투
  • 2인자의 감성에서 나오는 깨알같은 냉소
  • 무기력한 현자타임 가운데 ‘인생 뭐 있어?’라는 시크한 위로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특유의 냉소는 분명 그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구절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특히 책 전체가 역설 그 자체인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과 같은 저서라면 더더욱) 우리는 위대한 철학자를 그저 상또라이로 오해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죠.

 

철학계의 옴므파탈

언뜻 보기에 오늘을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이고 의미없다’라며 냉소적인 관조를 보이는 것 같다가도 그의 문장과 생각들을 곱씹다보면 그 행간에서 ‘인생 힘들지? 근데 그거 어떨 수 없어, 너나 나나 다 그래’ 라는 위로를 전하는 그는 철학계 옴므파탈의 대명사가 아닐까 싶네요.

 

feat. N.EX.T -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1994年)

“삶은 그 자체로는 실로 고유한 가치가 없고, 삶이 움직이면서 유지되는 것은 필요와 환상에 의해서다. 그것이 멈추는 순간 실존의 빈곤과 공허는 명백해진다.”(『소품과 부록』, 「실존의 허무에 관한 학설 보론」)

“음악은 이런저런 기쁨과 고뇌, 고통, 공포, 가벼움, 즐거움 혹은 고요함 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기쁨 자체이며, 고통 자체다. 추상화되는 모든 감정들 말이다. 음악은 어떤 부속 장치 없이 정수를 우리에게 준다. 또한 그에 따른 어떤 동기도 없이.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잘 이해하듯, 음악은 하나의 미묘한 본질에 다름 아니다. 상상력은 음악에 의해 너무나 쉽게 깨어난다. 우리의 환상은 이 정신세계에 비가시적이면서도, 우리에게 직접 말을 하듯 너무나 살아 있고 역동적인 어떤 형상을 주려고 한다. 실제 세계로부터 끌어낸 유사한 패러다임 안에서 무엇인가를 구현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표상과 이성이라는 원칙」)

저자가 전하는 존재의 공허함이라는 이미지 가운데, 매사에 냉소적이었던 그가 의외로 칭송하던 '음악'의 존재가 눈에 띕니다. 그의 구절들을 읽다보면 고 신해철이 쓴 명곡 The Ocean의 구절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 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N.EX.T -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1994年)

 

의외로 건성건성 살지 않았던 그의 일침

이 책을 읽으면서 쇼펜하우어를 다시 보게 된 구절은 책의 말미에 나오는 그의 일생에 관련된 기술이었습니다.

스물여섯 살에 이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큰 저작을 완성했지만, 팔리지도 않고 읽히지도 않았다. 전 세계를 향한 가르침은 대실패였다. 대학 강의도 실패였다. 적수인 헤겔의 강의 시간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개설했으니, 헤겔의 계단식 강의실은 꽉 찬 반면, 쇼펜하우어는 거의 텅 빈 강의실에서 강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도 그는 아주 절제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식사 후 15분은 꼭 플루트를 불었고, 자기 개와 함께 고독한 산책을 즐겼다

 

하다 못해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도 하루에 15분씩 이라도 악기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방구석에 먼지 쌓인채 방치되어 있는 기타와 맥북을 볼 때마다 쇼펜하우어의 망령이 저의 게으름을 꾸짖는 듯 합니다.

또한 “완전히 행복하면 불행해지기 쉽다. 완벽하기보다는 뭔가 아쉬운 것을 남겨두라.”는 말을 남긴 것을 보면 그는 삶의 여유와 함께 동시에 채워지지 않은 아름다움을 잘 누리고 살았던 철학자로 보입니다. 그의 저서 대부분에서 느껴지는 까칠함과 냉소적인 태도와는 다르게 말이죠.

 

역설적이게도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이 완전하고 완벽한 삶을 꿈꾸지만, 결국 완벽함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완벽함을 위해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갈 때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이 풍족하고,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것에 닿을 수 있는 시대에 이상하게도 오히려 우울감을 호소하는 현대인이 더 많아졌다. 이 우울감은 결핍에 의한 것이 아니라, 풍족함에서 오는 무기력과 권태에 근거하고 있다. - 3개월마다 만나는 마이크로 트렌드 vol.3 - 포럼M 저

 

미모의 트럼펫 주자에게 고백했다 까인 쇼펜하우어(사실 아님)

무릇 어리석음이란 자신에 대한 혐오로 고민한다. 마치 금관악기의 연주자들처럼 서로 모여 집단을 만듦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정신이 뛰어난 사람은 혼자서도 연주회를 열 수 있는 명인에 비유 할 수 있다. 혹은 피아노에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즉 피아노가 그것만으로도 작은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인은 자신은 작지만 하나의 세계이며, 앞서 말한 사람들이 전부 협력해야 비로소 발휘할 수 있는 것을 명인은 그저 하나의 의식의 단독성을 통해 발휘하는 것이다. - 인생론 -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읽다보면 음악에 대한 비유와 예찬이 줄곧 등장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위의 금관악기 연주자에 대한 디스였는데요.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분명 쇼펜하우어는 금관악기 주자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였거나 빌려준 돈을 때 먹힌 것이 틀림없다' 라고 확신했습니다.) 물론 피아노와 기타라는 악기가 작은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비유될 수 있음은 어느정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태생 자체가 단선율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를 저렇게 디스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지...(내가 아마추어 트럼펫 연주자라서 발끈한 것 일수도 있습니다만.)

 


나는 오랫동안 음악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 나머지, 모든 향락 중에서 가장 미묘한 음악을 즐길 것을 권하고 싶다. 세계의 참된 본성을 심각하게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는 것으로 음악만큼 강렬히 작용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만큼 음악이 주는 풍요로움을 잘 알고 잘 누리던 철학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그는 마성의 남자가 아닐까 싶네요.

 

함께 하면 좋은 것들

책비게이션

아래 간단한 도식표는 쇼펜하우어를 시작으로 하나씩 알아보기 시작할 철학자들을 나열한 주관적인 명단입니다.
(아직은 완공예정일이 정해지지 않은 철학자도 있습니다.)

이번역은 쇼펜하우어 역입니다. 내리실 곳은 헤겔 반대편입니다.

 

Album : Paris - Alison Balsom (Warner Classics, 2014)

Paris - Alison Balsom (Warner Classics, 2014)

 

미모의 트럼페터 Alison Balsom의 음악을 들으면서 쇼펜하우어가 디스했던 금관악기의 매력에 빠져보는것은 어떨까요?
특히 이 엘범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연주는 클라리넷 같기도하고 오보에같기도 한 따뜻한 톤을 가지고 있어 원래 트럼펫은 여성을 위한 악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마음에 드셨다면 "쇼펜하우어 인생론""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을 추천합니다.
이 두 책 모두 다소 냉소적인 태소로 쓰여졌지만 특히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의 경우 책에서 주장하는 방법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다가는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으니 역설과 해학의 묘를 음미하면서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발견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필로테라피 시리즈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 발타자르 토마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 셀린 벨로크

우울한 날엔 니체 - 발타자르 토마스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Part.1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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