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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학

열린 인문학 강의, 윌리엄 앨런 닐슨 : 파스칼의 시선으로 바라본 신학

by Caferoman 2021. 9. 6.

독서노트

블레즈 파스칼 Blaise Pascal, 1623-1662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수학, 물리학, 신앙적인 변증과 문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열두 살에 혼자 힘으로 유클리드 기하학 12번 명제를 증명해 냈으며, 몇 년 뒤 파스칼정리를 담은 수학 논문 《원추곡선론》을 발표했다. 컴퓨터의 기초가 된 계산기를 발명하고, 근대 확률 이론의 기초를 세운 천재 수학자다. 또한 오늘날 자동차나 비행기 기술에 꼭 필요한 이론인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한 물리학자요, 후대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철학자였으며, 합승 마차 체계라는 오늘날의 대중교통 개념을 창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파스칼은 1623년,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클레르몽페랑에서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잃고, 교육열이 높고 엄격한 아버지,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서 외아들로 자랐다. 1646년에 첫 번째 회심을 경험했으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천재적인 활약으로 높아진 명성에 기대 한동안 귀족 사교생활에 빠졌다가, 1654년에 결정적인 두 번째 회심을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신과 인간에 대한 탐구에 쏟아부었다. 가톨릭교회의 내부개혁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더욱 치열하게 참신앙과 교회를 고민했으며, 거기서 《팡세》와 더불어 문학적 명성의 토대를 이루는 작품인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문장가(文章家)였던 파스칼을 프랑스 문필가들 가운데 단연 으뜸으로 꼽는다. 긴 투병 끝에 1662년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트위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저서 『팡세』에서 소개된 저자의 약력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를 수학자, 물리학자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철학과 신학에서도 그의 탁월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팡세』는 신학적 관점을 바라볼 수 있는 유명한 저서 중 하나이구요.

단순 수학자,과학자로만 알고 있던 파스칼의 재조명

얀센주의자인 파스칼의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파스칼은 아르노 가문에 초빙되어 얀센주의 조직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파스칼은 자신이 쓴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으로 얀센주의를 옹호했습니다. 서한은 루이 데 몽탈이란 사람이 시골에 사는 친구에게 파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 사태의 상황을 전달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풍자 비판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이 편지를 통해 파스칼은 예수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습니다. 때로는 기술적으로 불공정해 보이지만, 결국 논쟁적인 작가들이 저마다 사용하는 방법으로 파스칼은 예수회 저자들의 학설을 공격했습니다. 예수회 저자들은 종교적 교리(은총의 문제)나 도덕적 결의법決疑法(양심의 문제와 정의를 명백하게 위반한 행위를 변호해야 하는 문제가 딜레마에 빠졌을 때 이를 해결하는 학문)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17세기에 맹위를 떨친 길고도 격렬한 논쟁에서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출간은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예수회에서는 얀센주의자들을 이단으로 낙인찍는 데 성공했고 가까스로 포르루아얄 수도원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옳든 그르든 파스칼은 적어도 프랑스에서 예수회에 결코 온전히 회복할 수 없는 매서운 일격을 가한 셈이었지요


무릇 종교,정치,고부간의 갈등은 끼어들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은 법인데, 오지랖퍼 파스칼 형님은 이 상처뿐인 싸움에 뛰어듭니다. 『팡세』 이전에 쓰여진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교 코르넬리우스 얀센

벨기에의 이프르 출신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연구하고 이 위대한 교부의 교리를 해명하는 데 평생을 바침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 사상에서 결정론, 예정설 그리고 인간은 부질없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죄론을 포함해 종교적 운명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시조임

염세주의자 파스칼이 말하는 신

기질적으로 파스칼은 염세주의자였고 그래서 얀센주의자들의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결정론과 인간의 죄와 은총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에 훨씬 쉽게 동조했던 것입니다. 그는 미지의 것과 사후 세계의 문제를 다룰 때 무능한 인간 이성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파스칼은 몽테뉴가 던지는 농담조의 회의론에 신물이 났습니다. 그런 회의론으로는 결론이 확실하지도 않은 데다 논리적으로 답을 내기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그는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 나오는 유일한 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성이 내린 모든 결론과 도움을 거부하고 신의 품 안에 스스로를 맹목적으로 던지는 것, 그러니까 신앙과 자신에게 내려진 은총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파스칼에게는 회의주의자·신비주의자·신앙지상주의자라는 다양한 명칭이 붙었던 것이고, 더 나아가 그의 종교적 감정을 병적 환각이라거나 다른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는 또 다른 통찰력이라고도 표현했던 것입니다.


미지의 형이상학적 영역을 다루는데에 있어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라이벌인 데카르트와 대척점을 이룹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데카르트가 말했다면 "너는 생각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말하며 인간의 이성은 쉽게 흔들리는 나약한 갈대일 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철학 자체도 아무것도 결론 내리지 못하며 근거가 박약하고 아는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할 때 가장 잘하는 일로 보인다. 사람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가장 그릇된 사상을 가꾸게되는 주요한 요인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데서 온다고 본다. — 몽테뉴 수상록중


또한 파스칼은 몽테뉴의 회의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을 던지는데요,
"철학 자체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하는 나는 킹왕짱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개드립좀 작작하지?"라고 일침을 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인간의 이성이 미지의 영역(진리)을 드러내는데에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면 이성의 결론과 도움을 거부하고 신의 은총을 바랄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이 증명한 신,『팡세』

『팡세』라는 조각글의 밑에 깔려 있는 사상은 인간의 절망, 자기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에 맞서 싸우는 인간 자신의 본성 안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확신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진리를 받아들이면 우리의 고난에는 원인이 있고 인간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죄를 사할 수도 있다는 위안을 얻게 됩니다. 적어도 우리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의미에서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 기독교와 신 자체까지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저자는 『팡세』를 통해 우리는 파스칼이 가지고 있던 종교관의 총체와 실체를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프랑스 문학 양식의 걸작 가운데 하나를 맛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저작은 신에 대한 막연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결국 파스칼은 수학적인 두뇌를 지녔지만, 기하학적 증명이 아니라 감정을 장악하는 방법을 통해서 이성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파스칼은 자신의 철학적 맞수 데카르트가 위대한 이성주의자였던 것처럼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의 직관주의자였습니다.


본 쳅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신의 존재 앞에 나약한 한 인간에 대한 자각과 시선입니다.

비록 인간은 잔인한 외적 자연의 희생물에 불과하고 세찬 바람 앞에 꺾이는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지만,
이 모든 것 위로 인간을 끌어올려주는 단 한 가지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자각이다


바로 인간은 나약하지만 사유하는 존재라는 시선이지요. 어쩌면 그의 라이벌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따뜻한 구절이 아닌가 싶네요. 참고로 데카르트와 몽테뉴(와 같은 회의주의자)에 대하여 파스칼이 팡세에서 했던 드립으로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고집불통’의 다른 말, ‘회의론자.’
데카르트, 쓸모없고 불확실한.

함께하기 좋은 것들

앞서 3차례에 걸쳐 리뷰했던 팡세 - 블레즈 파스칼

대체로 한문단 혹은 짧은 문장 두어개 정도의 분량을 가지는 그의 단상들을 모은 팡세는
마치 셀럽 철학자의 트위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끊어 읽기도 좋고 무엇보다 철학/신학 이라는 범주에 속한 책 치고는 지나치게 진중하거나 무겁지않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팡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앞선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팡세 - 블레즈 파스칼 ch.1 : 인간은 위대하고 비참하다
팡세 - 블레즈 파스칼 ch.2 : 정의란 무엇인가
팡세 - 블레즈 파스칼 ch.3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파스칼 외에 자신의 신념과 주장때문에 당시 종교계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심지어 파문을 당하기도 했던 철학자로는 스피노자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스피노자가 주장했던 신관은 파스칼과는 조금 다른 범신론이었는데요,
사후세계, 신 등 인간이 알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철학자들의 고찰을 좀 더 살펴보고 싶다면 스피노자와 키에르케고르, 니체에 관련한 입문서들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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