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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학

12가지 인생의 법칙 :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by Caferoman 2021. 8. 26.

독서노트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의도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세상을 조작하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행동하라’라는 말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이는 결국 정보 조작이다. ...
이런 삶을 살면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뒤틀린 욕망으로 옳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말과 행동을 정교하게 조작한다. 계산된 목표의 대표적인 예로는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강요하기,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유능하게 보이기, 서열의 상승, 책임 회피, 다른 사람 공을 가로채기, 승진과 진급,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기, 모두의 호감 얻기, 피해자인 척하여 이익 챙기기, 냉소적 태도의 합리화, 반사회적 세계관의 합리화, 알면서 모르는 척하기, 약한 척하기, 성인군자처럼 말하기, 모든 잘못을 자녀 책임으로 돌리기 등이 있다. 이런 예들은 프로이트의 동료이던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가 ‘인생의 거짓말(life-lie)’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이다.

 

상대방과 나 자신에게 진실한 것은 먼저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는 여덟번째 쳅터 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목적과 의도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의 본래 능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당신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게 된다. 당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감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당신의 잠재력이 억눌려 발휘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념적으로도 진실이지만 생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당신이 용감하게 탐험에 나서면, 미지의 것을 향해 자유 의지로 도전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을 것이고, 그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자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개념적인 진실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증거는 더욱 확실하다. 어떤 유기체가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중추 신경계에서 새로운 유전자들이 활성화한다는 것이 최근에 확인되었다. 새 유전자들은 새로운 단백질들의 유전 암호와 연결되고, 이 단백질들이 구성단위가 되어 뇌에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다. 우리의 많은 부분이 생물학적으로 여전히 발생기 상태에 있다. 정체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자기 생각을 당당히 말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어디라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완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삶은 미완의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따라서 저자는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되게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의 이점을 말합니다.
눈 앞에 작은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 보다 자신을 성장시키는 진실함이 더 유익하다는 것이지요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을 대담하게 직시하고, 그것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다. 눈앞의 것이 섬뜩하고 무서워서, 그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 의식이 마비되고 상처를 입더라도 마찬가지다. 직시해야만 우리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 알고 있는 것, 의지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만큼 직시는 중요하다. 직시는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회를 새롭게 한다. 이런 이유에서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진실을 얼마나 용인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니체가 주장한 것 아니겠는가!

 

본질적(Authentic)인 목소리에 집중하라

자신을 똑똑하고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실수나 오류를 무시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진다. 그런 오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카펫으로 덮어 버리려고 한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시작한 실존주의 철학은 이런 존재 방식을 ‘비본래적(inauthentic)’인 것으로 이해했다. 비본래적인 사람은 자신의 인식과 행동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어도 그 방식을 고집한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다. 그 이유는 내 목표와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이것이 본래적인 목소리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멍청해서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그들이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환경 탓이다.’
이것은 비본래적인 목소리다.

 

나 자신에게 진실한 것은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남 탓하기를 그만두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다소 가혹할 수 있는 저자의 보수주의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구절인데요, 이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저자의 토론 내용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사실 구조적인 불평등이나 차별 등에는 단순히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단순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해석에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제대로 살아가면 삶과의 관계도 명료하고 깨끗하고 바람직해진다. 하지만 제대로 살지 못하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어떤 것도 당신을 구해 주지 못한다. 무모한 저항, 음울한 생각, 기만이나 다름없는 반계몽적 회피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내려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진실하게 살든지 거짓되게 살든지 그 결과를 직시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 보라. 이것이 바로 ‘신념에 입각한 행동’이다. 키르케고르는 ‘신념에 입각한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해 보기 전에 아는 방법은 없다. 좋은 본보기가 있어도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서 소용없다. 누군가 본보기를 따라 성공했다면 그건 운 덕분이다. 따라서 답을 찾으려면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를 옛사람들은 ‘하나님의 의지를 향한 개인적인 의지의 희생’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복종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위다. 바람이 당신의 배를 더 안전하고 좋은 항구로 데려갈 것이란 믿음에 입각한 행위이고,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함으로써 삶도 바로잡힐 것이란 믿음에 입각한 행위다. 위대한 탐험 정신이라고 부를 만하다.

 

다소 상투적인 결론으로 이 쳅터는 귀결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우선 너부터 잘 살아'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독서노트에서 생략하고 넘어갔던 여섯번째 쳅터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진실은 구호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의견이라고 해서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진실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당신의 진실은 당신이 처한 독특한 환경에 근거하고 있다. 오로지 당신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개인적인 진실을 파악한 뒤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신중히 그리고 명확하게 전달해 보라. 그러면 현재의 믿음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확실한 안전과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한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은 삶의 깊고 깊은 원천에서 끊임없이 샘솟는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필연적인 비극에 맞닥뜨리더라도 영혼이 위축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삶의 비극에 복수하겠다는 섬뜩한 욕망을 피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삶의 비극은 존재의 원죄다. 우리 모두 어떻게든 견뎌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이 꿈꾸던 것이 아니라면 진실을 말하도록 노력해 보라. 당신이 어떤 이데올로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거나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나뒹굴고 있다면 진실을 말하도록 노력해 보라. 의욕이 없고 소외당하는 기분이 든다면, 혼돈에 휩싸이고 절망에 빠진 기분이라면, 진실을 말하도록 노력해 보라. 낙원에서는 모두 진실을 말한다. 바로 그래서 그곳이 낙원인 것이다!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노오오력을 강조하는 백인 꼰대 조던 피터슨

이번 챕터에서는 조던 피터슨의 극에 달한 꼰대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거짓말 하지말고 노력해라. 이 얼마나 식상하고 쉬운 조언입니까?

하지만 사실 모든 맞는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회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외부요인에 인해서 나약한 개인이 얼마든지 좌절하고 실패할 수 있음을 간과한 채 너무 문제의 원인을 개인 내부로 바라보는게 아닌가라는 우려가 듭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위로가 되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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