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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학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멈춤 - 백상경제연구원

by Caferoman 2021. 10. 6.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멈춤

극한의 압박 가운데 피어나는 생명력

레밍은 대략 4년 주기로 급증했다가 대량 사망하고, 개체 수가 줄면 빈 공간을 이용해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주기적인 사이클을 보인다. 레밍이 한꺼번에 죽었을 때 그 원인을 조사한 결과, 먹이가 모자라 굶어 죽은 게 아니었다. 과밀화 상태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증하면서 지레 흥분하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돌변해 정상적인 대사 리듬이 깨어진 상태였다
북극곰이 등장한 시기를 핵 게놈 분석 자료로 따져보면 진폭은 크지만 대략 60만 년 전후로 드러난다. 북극 해안의 어떤 불곰 개체군이 먹이를 바꿨다는 증거인데, 잡식성인 불곰이 육식동물로 변신하기 위해 완전히 다른 ‘직업’을 택했다는 얘기다. 불곰은 잡식성이긴 해도 식물성 먹이가 약 90퍼센트에 달한다. 이에 반해 북극곰은 먹이의 90퍼센트가 육식으로 포유동물 중 육식 비중이 가장 높다. 이빨을 비롯한 신체 변화 없이 먹이를 완전히 바꾸는 일은 처절한 생명력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잘나가던 직장이 덜컥 사라지자 생소한 직종에 다짜고짜 뛰어들었다고 비유하는 것도 만신창이 상태로 죽음에 내몰렸던 불곰을 하찮게 본 말에 불과하다.

총 6권으로 이루어진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출/퇴근길 짧게짧게 끊어 읽기 적당한 분량으로 전권 E-book을 통해 읽게 되었습니다. 멈춤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의 쳅터는 다양한 시각에서의 우리 사회와 인류를 조망하고 있습니다.

 

뭉쳐야 산다

흡혈박쥐는 상호애타적인 협력관계로 똘똘 뭉쳐서 서로를 살린다. 흡혈박쥐는 피를 먹지 않고는 이틀밖에 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매일 밤 먹이를 찾기도 어렵다. 피를 먹지 못한 박쥐가 다른 박쥐에게 구걸하면 이에 공감한 박쥐는 적은 양의 피를 게워내 먹여준다. 배고픈 이웃을 배려하며 삼켰던 먹이를 게워내는 행동으로 박쥐들은 오랜 기간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굶주리는 박쥐 없이 집단은 견고하게 개체 수를 늘리고, 추운 날이면 함께 모여 체온을 유지한다. 흡혈박쥐는 어두운 굴이나 빈 건물, 나무 구멍에 거꾸로 매달려 많게는 수천 마리씩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자이언트판다는 육식동물의 두개골과 뼈를 으스러뜨릴 정도의 이빨 특성은 그대로 보존한 채 먹이만 바꿔 대나무 줄기를 부순다. 대나무 숲에 고립된 육식성 곰이 강한 삶의 의지로 견디다 기발하게 새로운 직업을 개척했고, 급하게 나돌아다닐 일이 없어져 한결 여유를 즐기면서 무거워지고 커졌다. 물론 고기도 먹을 수야 있지만 먹이의 99퍼센트는 대나무다. 안타까운 건 적응력이 좋지 못한 동물이라 건너편에 대나무 숲이 빤히 보이는데도 큰 도로가 가로막고 있으면 넘어가지 못하고 대책 없이 바라만 보다가 굶어 죽기도 한다는 것이다.

적응과 생존에 대한 자연의 사례들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북극곰과 흡혈박쥐처럼 끈질긴 적응력과 생존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자이언트 판다와 같이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일도 발생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갖가지 동물들의 사례를 보며 '과연 우리는 우리의 환경과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되는 매우 참신한 챕터였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샌델이 주장하는 정의

윤리적 정의로움 :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은 사람을 차등으로 대해야 한다는 수직적 인간관과 성별, 경제력, 인종,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수평적 인간관

경제적 분배의 정의 : 차등 분배와 균등 분배가 있다. 차등 분배는 수직적 인간관과 관계가 있으며 분배에서의 ‘자유’를 추구하며 균등 분배는 수평적 인간관과 관계가 있으며 분배에서의 ‘평등’을 추구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여기에서 갈린다.
정치적 선택의 정의 :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시민들은 정치적 자유와 선택을 통해 보수와 진보를 결정할 수 있고, 결과는 그 사회의 경제체계로 나타나게 된다.

 

어린왕자 :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야

‘본질에 대한 이해보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어른의 세계는 창의적인 사고와는 담을 싼 물질로 가득 차 있음을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왕자는 여섯 별을 여행하면서

  • 명령만 하는 수많은 왕
  • 자만과 위선으로 포장된 허풍쟁이
  • 매일 술에 절어사는 술꾼
  •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점등인
  • 하루종일 책상에서 연구에만 몰두하는 지리학자
  • 쉴새없이 샘을 하며 소유에 집착하는 상인

총 여섯 명의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고 일곱 번째 별 지구에서 비행사를 만나게 됩니다. 어린왕자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게 되는데,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 한 송이가 있는데, 가시가 돋은 장미는 늘 불평을 늘어놓아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별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생텍쥐페리는 ‘열린 창문을 통해 안을 바라보는 사람은 닫힌 창문을 통해 안을 보는 사람보다 많은 걸 볼 수 없다’는 보들레르식 사유와 상상력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사막여우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로 풀어 냅니다.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도문대작(堵門大嚼) :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시다

허균은 《도문대작》을 지은 이유를 세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허균의 집안은 명문가이다. 전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예물로 바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온갖 진귀한 음식을 고루 먹을 수 있었다.

둘째, 잘사는 집에 장가들어서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있었다.

셋째, 임진왜란 때 북쪽으로 피난 갔다가 강릉으로 돌아오면서 기이한 해산물을 골고루 맛보았고, 벼슬길에 나서면서 남북으로 다니며 전국의 별미를 모두 먹어볼 수 있었다.

 

요즘 시대에 비한다면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라던가 최자의 "최자로드" 같은 책이 아닐까 싶은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고전 서적입니다.

 

채권의 역사 : 전쟁을 위한 자급수급을 위한 방법

전쟁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부의 중심에 선 군주라 해도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도 군자금을 충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채권이라는 금융상품이 개발되게 됩니다.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부과할 경우 국민에게 전쟁을 치르는 명분을 설득하기 어려웠지만  채권의 경우 일시적으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돈을 빌려준 사람도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이 전쟁을 치르며 채권 발행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14~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피사, 시에나 등에서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채권을 발행한 기록이 있으며 이들은 자국 시민만으로는 군대를 구성할 수 없어 용병을 고용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세기 초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희대의 조작극이 발생하는데, 전쟁이 터지자 로스차일드 가문에서는 치밀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자금을 축적한 뒤 전쟁 결과가 선포되기 하루 전에 ‘영국군이 졌다’는 가짜 정보를 흘려 국채를 샀던 사람들이 팔아치울 때시 장에 나온 영국 국채를 모두 사들여 20배나 되는 이득을 챙기게 됩니다.

 

금융산업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현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수단이라는 온순한 얼굴과 탐욕과 독식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며 공학자들을 동원하는 악마적인 얼굴이다. 인간의 욕망이 살아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금융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물류 유통의 중요성 : 북학의와 아마존

《북학의》를 쓴 박제가는 당시 부강한 청나라의 원동력과 조선의 가난한 원인의 핵심이 수레와 선진물류체계임을 지적합니다.

 

수레는 하늘을 본받아 만들어서 지상을 운행하는 도구다. 수레를 이용해 온갖 물건을 싣기 때문에 이보다 더 이로운 도구가 없다. 유독 우리나라만이 수레를 이용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그 까닭을 물으면 곧잘 “산천이 험준하기 때문이다”라고 대꾸한다.
우리나라는 동서의 길이가 천 리이고 남북의 길이는 그 세 곱절로 서울이 그 중앙에 위치한다. 사방의 산물이 서울로 몰려들어와 쌓이는데 각지로부터 거리가 횡으로 500리를 넘지 않고 종으로 천리를 넘지 않는다. 육지로 통행해 장사하는 사람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오륙 일이면 넉넉하게 목적지에 도달하고 가까운 곳이라면 이삼 일 걸린다. 잘 달리는 사람을 대기시켜 놓았던 유연처럼 한다면 사방 물가의 고하는 수일 안에 고르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영동에서는 꿀이 많이 나지만 소금이 없고, 관서에서는 철이 생산되지만 감귤이 없으며, 함경도에서는 삼이 잘 되고 면포가 귀하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많이 나는 물건으로 다른 데서 산출되는 필요한 물건을 교환해 풍족하게 살려는 백성이 많으나 힘에 미치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한다. - 《북학의》 〈내편〉, ‘수레’ 중

 

당시 조선의 일반적인 교통수단은 도보였으며 양반이나 되야 말을 탈 수 있었으나 이마저도 노비가 말을 끌고 가면서 이동하다 보니 속도 또한 빠르지 않았던 점에서 볼때 조선은 상공업이 발달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상거래를 맡았던 보부상도 봇짐을 지고 다니며 물건을 판매하는 형식의 거래만 가능했기에 상거래 속도와 규모가 제한적이 었습니다. 그렇기에 박제가는 상공업이 발달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운송수단(수레)의 도입이 필요함을 주장했습니다.

 

2015년 7월 이후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고의 물류기업이 오프라인 중심인 월마트에서 온라인 중심인 아마존으로 바뀐 것은 어찌 보면 예견된 사건이었다. 이러한 거래 행태의 변화는 도시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요 항구도시는 창고와 운송기능을 제외한 현장 거래가 대폭 축소됐고, 전통시장과 지방의 오일장은 예전과 같이 비중 있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주식 했다가 쪽박찬 위인들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 아이작 뉴턴.
“10월은 주식투자에 극히 위험한 달이다. 또 7월과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2월도 위험하다” - 마크 트웨인

 

우리 주변에는 정말 모르는 것 빼고 다 아는 것 같은 지식인들이 어째 주식만 하면 쪽박을 차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하지만 위로가 될만한 사실은 물리학의 거장 아이작 뉴턴이나 대문호 마크 트웨인조차 주식투자에는 폭망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요즈음 시기는 여러모로 이 책의 주제처럼 "멈춤"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멈추고, 한풀 꺾여 조정에 흔들리는 주식투자를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볼 때임을 이 책은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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