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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공부가 취미인 사람들 feat. 아무튼 외국어, 조지영 외국어 3개월이라는 것은 바이엘 상권의 반절 정도의 진도에서 피아노 배우기를 그만두는 것과도 비슷하다. 대략 악보는 볼 수 있지만(심지어 다장조), 피아노를 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싶은 바로 그런 무렵에 피아노를 그만두고, 이번에는 첼로를 해볼까 두리번대는 식이다. 제대로 마스터한 외국어는 없지만 이 언어 저 언어를 깨작깨작 거리며 배우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뭔가 깨달음이나 꿀팁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같은 언어 덕후로서 즐겁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저 역시 저자처럼 이 외국어 저 외국어에 집적대며 외국어를 배워왔는데요, 그간의 대략적인 여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2004 졸업/취업을 목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 : 토익점수 700을 겨우 넘김 2005 - 2.. 2023. 6. 21.
나가, 도깨비, 레콘 그리고 인간 : 눈물을 마시는 새 1, 이영도 서신의 아래쪽엔 서명 대신 기묘한 낙서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사빈은 고개를 들었고 그러자 성주는 설명했다. “키탈저 사냥꾼들의 사냥 기호야. 흑사자와 용(龍).” “흑사자와 용이오?” “둘 다 나가에 의해 멸종한 것들이지. 키탈저 사냥어로 읽으면 케이건 드라카가 되네. 그 친구가 사용하는 이름은 거기서 따온 걸세.” 소설에서 등장하는 첫번째 주인공은 나가를 잡아먹는 키탈저 사냥꾼 "케이건 드라카"입니다. 그 시작은 여느 판타지 소설에서 익숙한 종족으로 시작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판타지 세계관을 바탕으로 쓰인 타자(타이핑하는 자)의 또 다른 시리즈물로 착각하기 쉬우나 이어서 등장하는 범상치 않은 종족들(도깨비와 레콘)을 통해 무언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어서 묘사되는 나가라는 .. 2023. 6. 14.
어느 소심한 남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 : 마음, 나쓰메 소세키 소심한 한 남자의 이야기 소심(小心).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마음(ここ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여기서 소심이란 소인배나 사소함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작음이 아닌 작지만 정교한, 그리고 사소해 보이지만 진중하고 응축된 뉘앙스의 소심이라고 할까요?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선생님의 존재는 사람에 대하여 마음을 닫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 같으면서도 어떤 사연을 가지고 비련의 주인공을 자처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됩니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이 선생님이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소세키의 소설은 분명한 표현으로 전하려는 .. 2023. 6. 8.
1Q84가 영어나 스페인어로 온전히 번역될 수 있을까? : 1Q84,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으면서 "이 책이 영어 혹은 라틴어 계열의 언어로 온전히 번역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설국의 첫문장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國であった."가 떠올랐는데, 주어의 생략이 가능한 일본어, 국어와는 달리 영어의 경우 반드시 한 문장에서 주어를 명시 해주어야 한다. 심지어 스페인어의 경우 동사에서도 그 주어의 성/수가 드러나게 되니 주어 없이 이루어진 문장을 번역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본래의 맛을 살리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번역된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이 영어로는 "The train came out of the long border tunnel into the snow country." 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2023. 1. 22.
보헤미안 렙소디와 이방인, 알베르 카뮈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온 것이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안나 카레니나, 설국, 마션(이건 개인적인 평가)등의 소설들과 같이 이방인 역시 명작소설의 불변의 법칙을 따르듯 : 첫 문장에서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그 차가움에 몸서리쳐질 만큼 냉소적인 서술은 지금 내가 읽기 시작한 책이 하드보일드 소설인가?라고 의심하게 될 만큼 음산하고 건조합니다. 서른 즈음, 삶에 굵직한 획이나 그럴듯한 Milestone 하나를 세워야 할 것 같은 보통 서른이 되기 전에 각자의 삶에 한 획을, 서구적인 표현으로는 Milestone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습니다.. 2022. 8. 18.
아무튼 기타, 이기용 : 누구나 한번 쯤은 쳐봤을 그 기타 이야기 품에 기타를 들이기까지 수없이 낙원상가를 헤매던 이들에게 이 책은 허클베리핀의 기타리스트 이기용 씨가 쓴 기타와 관련된 에세이입니다. 연주기법이나 교본과 같이 뭔가 연주의 교훈을 얻을만한 내용은 없고요, 그냥 기타 치는 사람으로서의 이런저런 감상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찾아보면 의외로 많은 곡들이 몇 개의 단순한 코드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 네 개의 코드만 익혀놓으면 노래를 부르면서 기타로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경험은 무척 중요해서, 어쩌면 모든 기타리스트들은 곡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봤다는 최초의 성취감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경험한 바로 그 순간이 기타리스트로서의 삶이 무한히 확장되는 최초의 순간이기도 하다. 저는 처음 기타를 산 것.. 2022.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