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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보헤미안 렙소디와 이방인, 알베르 카뮈

by Caferoman 2022. 8. 18.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온 것이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안나 카레니나, 설국, 마션(이건 개인적인 평가)등의 소설들과 같이 이방인 역시 명작소설의 불변의 법칙을 따르듯 : 첫 문장에서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그 차가움에 몸서리쳐질 만큼 냉소적인 서술은 지금 내가 읽기 시작한 책이 하드보일드 소설인가?라고 의심하게 될 만큼 음산하고 건조합니다.

서른 즈음, 삶에 굵직한 획이나 그럴듯한 Milestone 하나를 세워야 할 것 같은

보통 서른이 되기 전에 각자의 삶에 한 획을, 서구적인 표현으로는 Milestone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습니다.(저만 그랬던 것일까요?)

신해철이 민물장어의 꿈을 발표하던 때가 서른 하나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을 발표한 것이 서른
프레디 머큐리(Queen)가 Bohemian Rhapsody를 처음 부른 것이 서른
아멜리 노통브가 살인자의 건강법을 발표한 것이 스물여섯
알랭 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발표한 것이 스물다섯...
... 계속 나열하고 있다 보니 '난 그동안 나이만 먹으며 뭘 남겼나?' 하는 괜한 자괴감이 듭니다.

아무튼 <이방인>은 작품을 읽고 나서 바로 작가의 신상을 확인하고 그 저작 당시 나이를 보면서 "카뮈 엄친아구나"라고 헛웃음이 나오던 작품이었습니다. 부럽네요 서른 즈음에 이렇게 멋진 작품을 남기다니. (참고로 저는 보통 책을 고를 때 작가에 대해 별다른 배경지식 없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편견 없이 작품을 접하고 싶은 취향 탓인 것 같은데, 카뮈의 소설들은 어쩌면 예외라고 할 수 있겠네요.)

L'Étranger X Bohemian Rhapsody

감히 장담하건대 프레디 머큐리는 Bohemian Rhapsody를 쓰기 전에 까뮈의 이방인을 읽어봤을것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혼자만의 소설을 써 봅니다.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 완벽하도록 아름다운 소설과 음악은 개인적인 인식의 틀 속에서 절묘한 콜라보를 이룹니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 이방인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Caught in a landslide, no escape from reality
Open your eyes, look up to the skies and see - Bohemian Rhapsody 중

말도 안되는 껴맞추기일 수 있지만(사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하고도 어울리게?', '아예 사르트르 평전을 가져다 붙이지 그래?' 등등의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지만요) 특히나 사형선고를 받는 과정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읽는 동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보헤미안 랩소디의 멜로디가 머릿속에 내내 맴돕니다.

오, 우상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렸나이까? 모든 것은 끝났다. 목이 마르다. 몸이 타오른다. 더 어두워져 가는 밤이 나의 눈을 가린다. 이 기나긴 꿈. 나는 깨어난다. 아냐, 나는 죽어가고 있다. 새벽이 밝아온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빛인 먼동, 나에게는 가혹한 태양일뿐.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도 아니다. 하늘은 입을 열지 않는다. 신은 사막에다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디서 들려오는 말일까. “네가 증오와 힘을 위해서 죽는 데 동의한다면, 누가 우리를 용서해주겠느냐?” “용기를 내, 용기를, 용기를 내라!” 하고 되풀이하는 것은 내 마음속의 또 하나의 혀일까? 혹은 아직도 죽기 싫어하는 내 발 밑에 쓰러진 자의 말소리일까? 아! 또 한 번 속아버린 것이라면! 지난날의 다정했던 인간들아, 유일한 구원자들아. 오오, 고독하구나, 나를 저버리지 말아 다오! - 이방인

I see a little silhouetto of a man
Scaramouch, Scaramouch,
Will you do the fandango?
Thunderbolts and lightning very very frightening me
...
But I'm just a poor boy, nobody loves me
He's just a poor boy from a poor family
Spare him his life from this monstrosity
Easy come, easy go, will you let me go?
...
Will not let you go - Let me go (Never)
Will not let you go - Let me go (Never, Never, Never) - Bohemian Rhapsody 중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에 오히려 모순적인 평안함을 느끼는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와 장대한 Opera Rock의 노래 가운데 강렬한 목소리로 호소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은 그 기승전결과 곡의 플롯이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안겨주기라도 한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 찬 밤하늘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제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 이방인

So you think you can stone me and spit in my eye?
So you think you can love me and leave me to die?
Oh baby, can't do this to me, baby
Just gotta get out, just gotta get right outta here - Bohemian Rhapsody 중


Bohemian Rhapsody의 마지막 폭풍과 같은 내적 갈등이 가사와 격렬한 기타 연주로 절정을 이룬 뒤, 마치 죽음이 지나간 형장에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의 고요함처럼 소설과 노래는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폭풍 뒤 고요함을 표현합니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에선 미래의 구렁 속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 이방인

Nothing really matters
Anyone can see
Nothing really matters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Any way the wind blows - Bohemian Rhapsody 중

함께하기 좋은 것들

음악 : Bohemian Rhapsody - Queen(1975)

원래는 이방인에 대한 감상문을 쓰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Bohemian Rhapsody에 대한 포스팅이 되어 버린 듯하네요. 기왕 글의 방향을 잃은 김에 Mark Martel 보헤미안 랩소디 Cover버전을 함께 공유합니다. 이 분이 현존하는 프레디 머큐리에 가장 가까운 가수가 아닌가 싶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QkCxE2Lh458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알베르 카뮈의 다른 소설이 읽고 싶다면 "페스트"를 추천합니다. 더더욱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다른 감동을 주지 않을까 싶네요. (이방인보다는 조금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이방인보다 페스트를 더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방인은 너무 어두웠으니 조금은 유쾌한 소설로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면, 독일 작가 "한스 라트"의 그리고 신은... 3부작의 첫 번째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를 추천합니다.

2021.08.06 - [소설] -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했다(feat.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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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듯한 이 암울함 너무 마음에 들어. 좀 더 이런 느낌의 소설이 읽고 싶어'라고 생각하신다면 주제 사라마구"눈먼 자들의 도시"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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