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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더 늦게 나지만 더 길게 자라는 털 : 허삼관 매혈기, 위화

by Caferoman 2024. 1. 25.

술술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 허삼관 매혈기, 위화

 

오 내가 웃고 있나요? 모두 거짓이겠죠?
날 보는 이들의 눈빛 속에는 슬픔이 젖어 있는데
- 광대, 리쌍

 

이 책의 감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기구한 팔자를 가진 광대의 우스꽝스러움 몸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리쌍의 오래된 노래 "광대"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가난한 주인공 허삼관이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피를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전반적으로 술술 읽히며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삶의 씁쓸한 맛이 배어 있는 느낌이랄까요? 진지하게 "인생이란 이것이다"라고 말하진 않아도, 좌충우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소시민의 일대기를 통해서 가족이란 무엇이며 몸으로 때우며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여운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허삼관’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허삼관은 일생 동안 평등을 추구했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결국 그의 몸에서 자라는 눈썹과 좆 털 사이의 불평등이었다. 그래서 그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이야.” - 책의 본문 중
“어때, 피를 팔았는데 어지럽지는 않은가?” “어지럽지는 않은데, 힘이 없네요. 손발이 나른하고, 걸을 때는 떠다니는 것 같은 게…….” “힘을 팔았으니 그럴 수밖에. 우리가 판 건 힘이라구. 이제 알겠나? 자네 같은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바로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왜 사람들이 나무에 묶이고 외양간에 갇히는지, 왜 맞아 죽는지 아냐구? 모 주석께서 한 말씀하시면 그걸 노래로 만들고, 벽에 걸고, 차나 배에 써놓고, 침대보와 베갯잇, 컵, 냄비, 심지어는 화장실 벽이나 타구에까지 새겨 넣는 이유를 아냐구? 모 주석의 이름을 부를 때 왜 그리 길게 부르는지……. 자, 들어봐. 위대한 영도자이시며, 위대한 원수이시며, 위대한 스승이자 위대한 조타수인 모 주석, 만세 만세 만만세. 다 합쳐서 마흔 자도 넘는 걸 한 번에 읽어야 한다구. 중간에 쉬면 안 돼. 왜 그런지 알아? 이게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이 말씀이야…….

 

참고로 이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 X털 드립의 경우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屌毛出得比眉毛晚,长得倒比眉毛长。- 许三观卖血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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