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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종교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ch.2 (feat. 개코 from 다이나믹듀오)

by Caferoman 2021. 8. 5.

실용주의 철학으로 가실 분은 이 곳에서 환승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독서노트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인생은 아끼는 책, 발장난을 하는 아이, 손에 쥐고 있는 도구, 저녁에 쉴 수 있게 집 앞에 놓인 긴 의자와 같아. 너는 여전히 내 말을 무시하겠지. 하지만 나이가 들면 평범한 사실을 알게 된단다. 인생은 어찌 되었든 행복이야.”(장 아누이Jean Anouilh, 『안티고네』)

“큰아버지가 말씀하시는 행복과 인생 이야기는 신물 나요! 인생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랑해야 해요.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핥는 개들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살라는 거지요? 지나치게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라면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라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원해요. 전부가 아니면 거절할래요. 저는 소박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지혜로운 척하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싶지도 않아요. 바로 오늘 모든 것을 확신하고 싶어요. 제가 어렸을 때처럼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확신이요. 이런 확신이 없다면 죽는 것이 나아요.”(장 아누이, 『안티고네』)

 

행복철학 열차는 고통의 노선을 타고

“시인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 때가 많다. 하지만 고통에서 시집이 탄생하고 우리는 이를 알고 시집을 읽는다. 아무리 삶이 괴로운 시인도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시인은 고통을 탐구하는 대신 고통에서 작품을 만들고 시 작품에서 더 완벽한(더 행복한) 만물의 질서를 상상해 고통을 달랜다. 마찬가지고 배우, 특히 희극 배우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 때가 있지만 고통을 탐구하는 대신 고통에서 연기를 표현하고 다양한 등장인물을 연기하며 고통을 달랜다.”(『철학적 단편에 붙이는 비문학적 해설문』, 300쪽)

“아무리 최종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퇴보하지 않으려면(혹은 잊히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반복적으로 인생을 채워가야 한다. 반복은 다시 한 번 지속적인 노력이 될 것이다. 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플라톤에 따르면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이든 사랑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든 사람에게 사랑은 느끼고 싶어 하는 감정이다.”(『철학적 단편에 붙이는 비문학적 해설문』, 81쪽)

 

키에르케고르는 우리가 겪는 고통이 이해나 탐구의 대상이 아닌 행복을 찾아가는데에 동행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고통에 침잠하고 심취해 있기보다는 공존하는 고통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며 나아가자는 것이지요.

 

“지속적인 노력은 존재하는 주체가 살아가는 윤리적인 인생을 표현한다.”(『철학적 단편에 붙이는 비문학적 해설문』, 81쪽)

“살 속에 박힌 가시(정말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상상일 수도 있다)가 너무 깊어서 뽑아서 제거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자 그는 그대로 두기로 한다. 가시는 그에게 거추장스러운 대상이자 삶 전체는 방해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도전하기로 한다. 가시가 없는 자신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다시 뽑아서 없애보든가 포기하든가). 그는 평생 가시에게 도전하기로 한다. 가시를 고통을 주는 무례한 존재로 본 것이다.”(『죽음에 이르는 병』, 419쪽)

 

한걸음 한걸음 고통 그 삶을 살아나가는 의연한 태도는 욥기에 나오는 욥을 닮았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 욥기 23:10 KRV

“욥이 위대한 이유는 가식적으로 만족한 척하며 자유의 열정을 포기하고 억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일기』, Ⅲ, 189)

 

신의 진정한 존재를 인정하는 자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윤리적인 선택이다. (……) 윤리적인 선택은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쉽고 간단하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한없이 어렵다. 살면서 윤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선택하는 행위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이것이냐 저것이냐』, 472쪽)

 

저자는 종교는 좁은 의미에서 신과의 관계에 몰두하는 생활이 아닌 신성과 연결되어 전반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이 미지의 존재는 무엇일까? 인간조차 지식을 동원해도 알 수 없다. 바로 미지의 존재다. 인간은 알려져 있으니 인간과 관계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아는 다른 존재도 아니다. 따라서 이 미지의 존재를 신이라 부르자. 우리가 미지의 존재에게 붙여줄 수 있는 이름은 ‘신’뿐이다.”(『철학적 조각들』, 77쪽)

 

인간의 절망을 이해하는데에 그리고 해결하는데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질문은 바로 초월적인 신의 존재와 그 관계에 대한 물음인것 같습니다. 불확실한 삶 가운데서 확실하고 완전한 기준이 존재하느냐의 의미는 절망을 이해하는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지요. 다이나믹 듀오의 8집 『Grand Carnival』의 마지막에 수록된 곡 "겨울이 오면"에서 개코의 벌스는 그런 심정의 고민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낙하하는 자존감은 끈을 당기지 못하고 추락해 그래 난 나약해
신의 존재는 의심 안 해도 사랑과 사람과 미래는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나의 겨울을 더 길고 아리게 만드는데 『겨울이 오면 - 다이나믹 듀오』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철학자들의 계보에서 전후에 위치한 스피노자와 니체와는 달리 키에르케고르는 신에 대한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요, '신이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가 있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미지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미지의 존재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미지의 존재를 부정하려면 미지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철학적 조각들』, 82쪽)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내가 증명하고 싶은 것은 미지의 존재가 신이라는 사실이다. 만족스러운 표현은 아니다. 그 존재를 비롯해 증명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철학적 조각들』, 77쪽)

 

필로테라피 시리즈 전권을 완독하고나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권을 꼽으라면 저는 이 키에르케고르 편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저자인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의 친절한 해설도 그렇거니와 단순한 해설을 넘어선 문장력과 통찰력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다음은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의 "지성인이 믿음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에 대한 구절입니다.

 

신앙이 있다는 것은 지성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진실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진정으로 믿음을 갖는다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키에르케고르는 다른 종교를 언급한 적은 없으니 기독교를 예로 들어보자. 기독교는 가장 불확실한 것을 믿으라고 한다.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나타난 신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 자비를 실천해 십자가에 못 박혀 인간의 죄를 사해주셨다고 우리는 배웠다.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해도 믿기 힘든 이야기라서 믿음을 가지려면 특별히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왜 이성을 외면한 채 신을 자처할 누군가를 믿기로 할까? 왜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나 그 제자들을 믿으려 할까?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신앙은 폭풍 가운데 침몰하지 않기 위해 허우적대는 몸부림과 같다

“어느 고요한 날 배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은 신앙을 표현한 이미지가 아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자 펌프를 사용해 열심히 물을 빼내 배가 가라앉지 않게 애쓰고 쉽게 항구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신앙을 표현하는 이미지다.”(『철학적 단편에 붙이는 비문학적 해설문』, 149쪽)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불확실한 것만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내면에서 탐구를 향한 열정이 높아져간다. 진실은 객관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대상으로 삼아 과감하게 무한히 탐구하는 것이다. (……) 그런데 진실의 정의는 신앙의 정의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위험이 없으면 신앙도 없다. 신앙은 무한한 내면의 열정과 객관적인 불확실함 사이의 모순이다. 만일 신을 만질 수 있다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신을 믿어야 한다. 내 신앙을 계속 간직하고 싶다면 객관적인 불확실함이 여전이 있다는 점을 끝없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철학적 단편에 붙이는 비문학적 해설문』, 135쪽)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키에르케고르의 표현과 같이 평온한 안정을 누리는 권한이라기 보다는 불확실함에 대면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위 구절들을 보면서 비와이(Bewhy)의 앨범에 featuring으로 참여한 『Where Am I -The blind star』에서 개코(in 다이나믹 듀오)의 verse가 연상되었습니다.

 

영생이나 사후 세계가 없다면 지금 내가 산 차는 반영구적인 건데
신념을 가진 어떤 이는 물질은 다 허상이고 다 무의미한 거라 하네
천국과 지옥은 인간이 만든 통치의 기술? 과학이 증명한 사실에 맘이 가는 이유가
보이는걸 믿는 게 더 쉬워서인 걸까 기적을 보지 못한 걸까

그럼에도 난 아직 신을 믿네 이 모든 것에 시작을 이해 할 수 없기에
생각의 뫼비우스의 띠를 싹둑 끊어주는 건 소주 몇 잔 그리고 담배.
당신들을 설득 할 생각 없네 난 지금 이 지점에 있다는 걸 고백하는 것뿐
넌 내게 돌을 던져도 돼 몇 년 전에 난 예수님과 그걸 믿는 자들의 광신도였거든

“사랑의 감정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 사랑의 기적과 순수한 종교의 기적은 비슷하다. 사랑의 감정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처럼 종교적인 감정도 마찬가지다! 상식을 존중하는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은 불합리가 존재하며 불합리는 저절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한다.”(『인생길의 단계』, 188쪽)

 

결국 우리 모두가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절망 가운데 꺼내는 용기가 필요함을 키에르케고르는 말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다. 나에게 가능하다는 희망이 필요하다면 폐에게는 산소가 필요하다. (……) 이러한 어려움으로 종교 생활에 입문한 사람만이 모든 가능성을 이해한다. 이런 사람만이 신을 만났다.”(『죽음에 이르는 병』, 387쪽)

 

키에르케고르의 생애

후대에 전해진 작품과 비교하면 키에르케고르의 생애는 평범한 나머지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남다른 탁월함은 그의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생각한 대로 살고 경험한 것을 전부 생각으로 승화시킨 철학자들은 흔하지 않은데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철학자에 속한다.

 

키에르케고르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묘하다. 우선, 키에르케고르는 여전히 모든 실존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남아 있다. 실제로 많은 철학자들이 실존주의 철학은 키에르케고르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카를 야스퍼스, 장 폴 사르트르, 마르틴 하이데거, 폴 리쾨르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칸트학파, 니체학파, 하이데거학파와 달리 키에르케고르학파를 내세우는 철학자는 없다. 비유하자면, 키에르케고르는 사촌들은 많았으나 정작 그의 유산을 직접 물려받은 사촌은 한 명도 없는 것과 같다. 왜 그럴까? 키에르케고르는 평범한 철학자가 아니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파스칼과 비슷하다. 파스칼과 같은 이유로 키에르케고르도 철학의 이성을 상당히 불신한 나머지 독특한 철학자로 남았다. 너무나도 종교적이고 실천적이었으며 분노와 열정이 지나치게 넘쳤던 그였다.

 

옮긴이의 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절망을 느끼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고 오히려 실존적인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하기에 절망도 할 줄 안다.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을 분석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현대 소비사회에서 미디어를 통해 세뇌된 가치 때문에 ‘가짜’ 절망감에 빠져 있는지 깨닫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속물’을 비판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속물은 이상이라는 나침반 없이 현재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절망하는 이유가 미디어, 소비사회가 은연중에 정해놓은 ‘획일적인 표준적인 삶(좋은 직장, 높은 연봉, 화려한 쇼핑, 언제든 떠나는 해외여행, 멋진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보내는 여유 등)’에 미치지 못해서인가? 키에르케고르가 ‘도덕’을 강조하는 이유는 고리타분하거나 독선적인 인간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도덕은 자신이 지닌 차이점을 활용해 공동생활에 좋게 기여하라고, 동시에 자신이 남다른 면을 가졌다고 우월감에 젖지 말라고 가르친다. 개인의 개성을 남과 구별 짓는 도구로 교묘히 활용하는 현대 소비사회를 사는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말이다.

함께하기 좋은 것들

힙합앨범과 함께하는 키에르케고르

뜬금 없지만 이 책과 함께 하기 좋은 음악은 앞서 언급한 『Grand Carnival - 다이나믹 듀오』와 『The Blind Star - 비와이(Bewhy)l』 두 Hiphop앨범입니다. 비와이는 두말 할 것 없고, 다이나믹 듀오 역시 종교적인 가치관을 가사에 잘 녹여내는데, 특히 이 두 앨범의 가사들은 그러한 고민들을 힙합이라는 장르에 잘 녹여낸 것 같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역시 힙합이죠(?)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행복주의 철학의 노선에 전후에 위치한 스피노자와 니체의 책들을 추천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그 방향은 비슷하지만 그 과정과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네요.

다른 필로테라피 시리즈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 발타자르 토마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 셀린 벨로크

우울한 날엔 니체 - 발타자르 토마스

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Part.1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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