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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역사

삼십육계 제22계 관문착적(關門捉賊) : 문을 닫아 퇴로를 차단하여 적을 섬멸하라

by Caferoman 2023. 5. 3.

제22계 관문착적(關門捉賊) : 문을 닫아 도적을 잡듯 퇴로를 차단하여 적을 섬멸하라

관문착적의 핵심은 이것이다! 문을 닫아 걸듯 퇴로를 차단하여 적을 섬멸하라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 개국공신의 처우에 관하여

중국 송나라 때, 태조(조광윤)가 연회를 베풀어 무인들이 가지고 있던 병권을 고관후록(高官厚祿 : 높은 벼슬과 많은 녹봉을 부여함)을 조건으로 빼앗은 사건으로 송 태조는 석수신과 왕심기를 비롯한 개국공신들의 병권을 빼앗아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킵니다. 이렇게 빼앗은 병권을 통해 송 태조는 새로운 군사 제도를 수립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문인들의 지위가 높아짐과 동시에 무인들의 지위는 현저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문인을 중시하고 무인을 경시하는 '중문경무(重文輕武)’의 기조는 송 왕조의 전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막상 송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나자 병권을 쥐고 있던 개국공신들의 존재는 황제인 조광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고 이에 조광윤은 휘하 장수들을 모두 술자리에 불러들입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즈음 조광윤은 장수들에게

"어느 날 아침에 부하들이 그대들에게 황제복을 입힌다면, 아무리 그대들이라도 마음이 크게 흔들릴 것이오."

라며 자신의 고민을 토로합니다. 이는 '개국공신들 중 누가 자기처럼 무력으로 왕위를 앗아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며 '지금 물러서지 않으면 피를 볼것이다.'라는 무인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 였습니다. 이에 무인들은 조광윤의 속내를 파악하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반납하며 물러나게 됩니다.

 

중국 3대 만인적(萬人敵) : 관우, 장비 그리고 한세충

삼십육계 22계 관문착적은 문인이 득세하던 시절 만명을 능히 대적할 수 있다고 하는 만인적(萬人敵)의 위용을 과시한 송의 명장 한세충이 올출을 사면초가의 상태로 몰아 넣은 뒤 그 퇴로를 차단하여 승리를 거둔 이야기 입니다.

 

한세충(韓世忠)
송나라의 명장. 자는 양신(良臣). 오늘날의 섬서성 연안 출신이다. 악비와 더불어 금나라에 대항했던 송나라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그 활약은 악비에 버금갈 정도이다. 악비, 장준, 유광세와 함께 남송 중흥사장으로 불린다. 시호는 충무(忠武), 왕호는 기왕(蘄王)이다. 여러 차례 공적을 올렸고 방랍의 난을 진압할 때 장군 왕연에게 진(眞) 만인적(萬人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사(宋史)>에 의하면 "의를 익히고 재물을 경시하였으며 군을 지키는 것은 엄중하였고 사졸들과 고락을 같이하였다"는 기록처럼 무예와 의리가 뛰어났고 법을 지키며 병사들을 잘 통솔해 당시 백성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 출처 : 나무위키

 

올출의 15만 금군은 남진하며 무자비한 약탈을 시작했고, 잔뜩 얻은 전리품을 얻고 도강하기 위해 이동하는데 이 때에 한세충은 금군의 도강을 막기위해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힌 뒤 물러납니다. 당시 금군은 15만에 이르는 대군이었고 한세충이 이끄는 남송은 8천명이 고작이었습니다. 올출은 자신의 군세를 믿고 한세충에게 "쓸데없는 계략을 부리지 말고 날짜를 정해서 한판 거하게 붙어보자!"
라며 서신을 보내고 한세충 역시 서슴없이 결전을 받아들입니다.

 

올출의 남침 기세가 전당에 그치지 않고 동쪽으로 향하고 있으나 두려울 것은 없다. 장군은 명주와 월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적을 좌절시켜 북쪽으로 몰아주길 바란다. 황제께서 바다로 나가시면 우리가 육지에서 마음 놓고 적을 칠 수 있다. 오늘 해원에게 정기 2천을 보내니 장군의 파견을 바란다. 장군께서 명주와 월주에서 적을 좌절시키면 세충은 양쯔 강에서 적을 가둘 것이다. 올출이 북쪽으로 철군하는 날이 멸망의 날이 될 것이며 대송 중흥의 날이 될 것이다.
- 책의 본문 중

 

금군은 병력을 많았지만 먼 원정길에 지친 상태였고,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군기가 매우 헤이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반면 남송군은 한세충에 의해 단련된 정예병이었습니다. 게다가 수장 한세충은 만인적의 위용을 뽐내며 전장을 휘젓고 다니니 금군은 이내 대오가 무너지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금군은 남송군에게 싸우는 족족 패하게 되고 보급마저 차단되자 금군은 장강을 건너지 못하면 궤멸하게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한세충은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다. 그는 3천 명을 이끌고 평강에 왔던 것이다. 나머지 병력은 모두 조용히 진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계산은 올출이 퇴각하는 길목에서 점차적으로 적의 역량을 약화시켜 최후의 순간에 ‘관문착적’으로 일망타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적의 원기를 반감시켜 놓지 않으면 10만 정예가 양쯔 강의 대문에 들어섰을 때 가둘 수 없다는 계산을 했다.
수주에서 적의 선대(船隊)를 습격하여 대부분 군량을 태우고 수천 적병을 소멸시키고 올출을 격노하게 하여 찾아오게 만들었으니 큰 성공이 아닐 수 없었다. 평강은 그의 두 번째 적을 좌절시키는 전쟁터였다. 태호를 이용하여 적의 수군 역량을 소멸시키려 계산한 것이다.
한세충의 계산 중에 세 번째 적을 좌절시킬 전쟁터는 상주였다. 그는 이미 악비와 연락을 취해 놓고 있었다. 상주에서 가까운 의흥에 주둔하고 있는 악비의 강력한 기병이 상주에서 적병을 기습하면 한세충은 전 병력을 진강에 집중시켜 이일대로(以逸待勞)하여 관문착적의 대계를 실현한다는 계산을 해놓고 있었다.
- 책의 본문 중

 

장강을 건널수 없자 올출은 군을 돌려 황천탕(현 강소성 북쪽)으로 퇴각하는데 그곳은 사지가 막힌 항구로 , 올출은 50리가 넘는 물길을 헤치고서야 건강으로 빠져나왔으나 대기중이던 악비군에게 습격당해 다시 황천탕으로 후퇴했습니다. 금나라군은 무려 48일 동안이나 황천탕에 갇혀 날마다 숱한 병사들이 죽어갔습니다.

관문착적의 계략에 빠져 말라죽어가던 금군과 올출은 필사의 저항으로 송군의 포위망을 뚫고 불을 지른 뒤 겨우 후퇴에 성공하지만 이마저도 북으로 가는 중 악비의 게릴라 군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금의 15만 대군은 소수만이 목숨만 건지고 돌아가게 됩니다.

 

올출은 싸우면서 후퇴하다가 홀연 수면이 끝도 없이 넓은 곳을 보았다. 올출은 급히 뱃머리를 돌리게 하여 넓은 수역(水域)으로 달아났다. 한세충은 추격하지 않았다. 도주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넓은 수역은 ‘황천탕(黃天蕩)’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황천탕’은 양쯔 강의 한 지류로, 동쪽으로는 주류에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진회하로 통했기에 환류(還流)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후에 서쪽 수로에 진흙이 쌓여 잡초가 무성한 사항(死港)이 되고 만 곳이다. 올출의 선단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본 한세충은 황천탕 입구로 돌아왔다. ‘관문착적’의 대계 중 작은 규모의 관문착적을 이룬 셈이었다.

 

봉쇄한 뒤 섬멸하라

관문착적의 다른 표현으로 '거북이를 유인하여 진흙탕 속에 빠트린다'는 뜻의 견구입남(牽龜入湳)이 있습니다. 

 

小敵困之. 剝, 不利有攸往.
많지 않은 적은 봉쇄한 다음 섬멸해야 한다.
다급해진 적을 너무 몰아치면 오히려 불리할 수 있으니 여유를 주면서 추격해야 한다.

 

적(賊)을 포위한 뒤에 잡으라는 이 계략은 전투 자체보다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앞선 포석, 즉 사전작업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밖에 있는 적을 지치게 만드는 사전작업이 이일대로(以逸待勞)의 전략이라면 적을 안에 가두고 이를 지치게 만드는 전략이 관문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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