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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역사

삼십육계 제12계 순수견양(順手牽羊) : 기회를 틈타 양을 끌고 가듯 아무리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마라

by Caferoman 2022. 1. 5.

삼십육계 12계 순수견양 : 기회를 기다렸다가 양을 끌고 가라

나타날 때를 알고 나타나 양을 취하는 늑대

제12계 순수견양(順手牽羊)은 중국 5호 10국 시대의 후주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북송을 건국한 송 태조(宋太祖, 927년 3월 21일 ~ 976년 11월 14일) 조광윤과 그의 제위를 차지한 동생 송 태종(宋太宗, 939년 11월 20일 ~ 997년 5월 8일) 조광의에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즉 조광의가 어떻게 형의 적장자들을 제치고 제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순수견양의 계략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때가 성숙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손이 가는 대로 양을 끌어오면 되는 일이었다.

 

일만(一萬)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만에 하나 있을 만일(萬一)이 두려웠던 것이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꼬리를 자르는 것은 분명 상책이 아닙니다. 꼬리를 자르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꼬리 없는 머리는 진퇴(進退) 공수(攻守)가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책이 무엇이냐 하면….” 조광윤이 조보와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강두수미(强頭瘦尾)!” 군신은 이렇게 한 마음이 되었다. 그랬다. 머리를 강하게 만들고 꼬리를 약화시키면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군신 두 사람은 득의하여 웃었다. 조광윤은 술을 준비하게 하고 꼬리를 어떻게 약화시키느냐 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세 잔의 술이 넘어가고 조보는 생각이 정해지자, 젓가락으로 장을 찍어 손바닥에 ‘권(權)’자를 쓴 다음 조광윤에게 내밀어 보여 주었다.

 

참고로 조광윤이 활약하던 5대 10국 시기는 역사상 가장 암흑적인 시대였고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으며 가장 의리가 없던 시대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대왕기(大王旗)가 바뀌었으며, 황포로 갈아입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대이니만틈 손에 군권을 잡은 자가 임자인 시대적 배경이 있음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빼앗고 빼앗기는 시대였기에 조광윤은 건국 이후 자신의 모든 충신들을 내치는 배주석병권을 감행하면서 까지 내부세력을 경계했고 이 과정을 통해 조광의에게 순수견양의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조광윤은 그의 동생에게 권력을 빼앗기다시피 했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또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배주석병권

휘하 장수들과 술을 마시고, 황제로 옹립되었던 송태조는 961년 역으로 금위군(禁衛軍) 장수 석수신(石守信) 등의 휘하 장수들을 초청하여 말술을 먹이고, 병권을 자발적으로 내놓게 하는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을 단행하였다. 정세가 안정된후 조광윤은 석수신 등 공신들을 초청해 연회를 차렸다. 연회 참석자들이 한창 주흥이 도도해 졌을무렵 조광윤은 갑자기 시종들을 멀리하고 엄숙하게 공신들에게 말하기를 '만일 당신들의 힘이 없었다면 나는 황제로 될 수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황제가 된 후 나는 매일 편안한 밤을 잘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 말은 들은 장교들은 놀라움을 표하면서 "우리가 어찌 감히 황제에게 다른 마음을 가질수 있겠습니까?"라고들 답했다. 조광윤은 이때 "당신들은 비록 황위를 탐내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당신들의 수하에 부귀를 꿈꾸는 자들이 있을까 봐 두려운 것이오. 만일 당신들에게 황포를 걸쳐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당신들도 거절하기 힘들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오."라고 말했다. 이에 공신들은 다급히 어떻게 하면 황제를 안심하게 할 수 있는가고 조광윤에게 물었다. 조광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사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부(財富)라고 보아지오. 당신들은 아예 권리를 내놓고 지방에 내려가 땅을 사고 호화저택 지어놓고 살면서 나와 친척으로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소"라고 답했다. 장교들은 조광윤의 말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다음날 모든 고급 장교들은 모두 황제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조광윤은 바로 그들의 직무를 해임시켰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십국의 혼란이 군벌의 폐해로 일어났다고 생각한 송태조는 휘하의 군벌들에게도 그러한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하고 술자리에서 자신의 고민을 토로함으로써 하루 저녁에 군벌들의 세력을 넘겨받아 중앙으로 복속시킨다. 이 사건은 지방 군벌에 의한 군웅할거의 국면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된다. 태조는 동일한 수단으로 왕언초(王彦超) 등 여러 명의 절도사들의 병권도 박탈하고, 지방의 행정과 재정을 모두 중앙으로 복속시켰다. - 출처 위키피디아

 

세상에 위기감을 느끼는 두 부류 : 기아와 추위에 허덕이는 부랑자 그리고 천하를 통일하려는 제왕

 

조광윤이 빼앗은 시씨의 후주, 조광의가 빼앗은 북송

만물(萬物)은 부음(負陰)하고 포양(抱陽)하기에 크게 얻는 것이 있으면 크게 잃는 것 또한 있게 된다. 실(失)은 득(得)이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것으로, 실과 득은 일체의 양면인 것이다. ‘순수견양’은 특이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배우려 든다. 총명하기 짝이 없는 조광윤이 어찌 이런 이치를 모르겠는가? 그는 훗날 자신의 양(羊)을 누군가 끌고 가리라는 것을 알고 하나하나 제거해갔다. 그 방법으로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으로 잠재적인 적이 될 수 있는 이성(異姓)들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지자(智者)의 천 가지 우려에 한 가지 실책이 있기 마련 아닌가? 아무런 병도 없이 죽게 된 조광윤은 결국 대나무 광주리로 물을 긷는 헛일을 한 것이다. 그는 동생이 자신의 강산을 빼앗으리라고는 꿈조차 꾸지 못했으며, 자신처럼 순수견양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역사는 반복해서 "기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친신에 의하여 정권과 강산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금세 잊고 말아 전철(前轍)을 밟게 된다는 점이 문제임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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