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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달과 6펜스, 서머셋 모옴 : 소설로 만나보는 고갱의 삶

by Caferoman 2021. 9. 19.

남자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연애를 하려면 아무리 많아도 35살 전이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고흐의 삶이 불꽃이라면 고갱의 삶은 바람같아서

“아무래도 당신은 이런 금언을 믿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대의 모든 행동을 보편적인 법칙이 될 수 있게끔 하여라’.”
“그런 말은 들어 본 일도 없지만, 쓸데없는 잠꼬대군.”
“하지만 이것은 칸트 말입니다.”
“누가 했든 헛소리는 헛소리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부족할 것 없는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첫인상은 언뜻 보기엔 특별할 것 없고 예술 따위엔 관심도 없는 교양 없는 사람으로 비춰집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뒤늦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아내를 버리고 파리로 떠나게 됩니다.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좇아 떠난 그는 가난하고 폐인처럼 은둔하여 그림만 그리다 결국 생활고에 몸져 눕게 됩니다.

 

그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작품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도 사실은 이제 거기에 대한 흥미를 잃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꿈속에 사는 사람인만큼 현실은 아무런 뜻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눈에 비치는 것을 잡으려고 열중하여 그 밖의 일은 의식하지 못한 채 오직 그 강렬한 개성을 캔버스 위에 쏟아붓고, 일단 작품이 끝나면 거기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시간이 어디 있소. 사랑과 예술, 둘 모두를 누릴 만큼 인생은 길지 않으니까.”

 

예술에 눈이 먼 옴므파탈

사티로스에게 쫓겨 그리스의 숲속을 달리는 님프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까? 발이 빠른 님프는 정신 없이 도망치지만 사티로스는 한 발 한 발 소녀에게 다가가고, 마침내 그녀의 목에 그의 뜨거운 입김이 느껴진다. 그래도 그녀는 말 없이 도망치고 그는 여전히 쫓아간다. 드디어 그에게 붙잡혔을 때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것은 공포였을까 아니면 황홀이었을까?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여인의 마음을 한 곳에 몰두하게 하고 그에게서 자의식을 앗아간다. 아무리 멀리 내다보는 인간이라도 자신의 사랑이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다. 이성으로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환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몸을 던지면서, 그 환각을 현실 이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을 조금은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아지게 하기도 하고, 조금은 그 이하로 만들기도 한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즉 이미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 자신의 자아와는 거리가 먼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 변하게 된다.

 

그렇게 프랑스 빈민가에서 폐인생활을 하던 그를 구해주고 자신의 집에 식객으로 들인 집주인의 집에 식객으로 들어가 살게되는데, 스트릭랜드는 그 은혜도 모르고 그 집 아내의 마음을 빼앗고 끝내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만듭니다.

 

인간의 잔인성 중에서, 무척 사랑하지만 여자 쪽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그 잔인성만큼 참혹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 여자에게는 부드러움은 고사하고 관용도 없고 다만 미칠 듯한 짜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매우 위급한 상황은 아닙니다.” 의사는 우리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다만 얼마만큼의 양을 마셨는지 알 수 없어요. 두려움 때문에 약을 먹는 일도 있으니까요. 여자들이란 언제나 사랑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않도록 조심하니까요.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가슴에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시위죠.”

 

그의 기구한 운명은 끝에 남태평양 타히티 섬에 들어가 한센병에 몸이 썩어들어가면서도 끝까지 벽전체에 그의 대작을 그리다가 삶을 마감하게 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스트릭랜드는 여러모로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을 연상시킵니다. 물론 실존인물과 여러면에서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요. 

 

그는 발견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은 아니다. 생각할 수도 없는 힘을 지닌 새로운 영혼을 발견한 것이다. 아주 풍부하고 기묘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그림의 대담한 단순화만은 아니었다. 그 육체는 놀랄만한 무엇인가를 담은 정열적인 관능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화법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육체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이상한 단단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만도 아니었다. 거기다 어떤 영적인 것,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새로움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상상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 영원한 별빛만이 밝혀주는 어두컴컴한 텅 빈 공간을, 벌거벗은 영혼이 새로운 신비를 찾아 두려운 모험에의 길을 밟는 그런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우주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양식(樣式)을 발견하여, 영혼의 심한 고민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아주 서툰 솜씨로 애쓰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표현의 해방을 구하려고 몸부림치는 한 영혼을 발견했다.

 

폭풍같던 그의 삶이 전하고자 했던 바

인생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극히 드물며,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흥미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대부분 그들은 여러 부문에서 다양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한동안 다른 일은 일체 잊고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마음을 빼앗긴 한 가지 일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그들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가지 일에 다른 일이 침입해 오면 그들은 초조해진다. 함께 사랑을 하면서도 남녀가 다른 점은, 여자는 하루 종일 사랑을 계속할 수 있지만 남자는 그럴 수 없다는 데 있다

읽으면서 "그렇지!" 하고 무릎을 탁하고 쳤던 구절입니다. 전체적인 작가의 태도가 마초스러운 남성중심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랑을 대하는 남자의 태도, 무언가에 몰입했을 때 그가 보이는 태도는 무척이나 공감과 위안을 주는 구절이었습니다.

 

일단 자제력을 되찾고 나면, 방금 자기 욕정을 만족시켜 준 그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것조차 몸서리치게 싫었던 것이다. 그때 이미 그의 마음은 하늘 위를 조용히 떠다니고 있으며, 그것은 마치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는 고운 나비가 막 자기가 빠져나온 흉측한 번데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과 같은 전율이다. 본디 예술이란 성적 본능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여자를 대하거나, 달빛 아래 빛나는 나폴리 항구를 보거나, 티치아노의 매장이란 제목의 그림을 볼 때 우리 마음속에 이는 감동은 다 같은 것이다.

 

위 문장 역시 작가의 아주 마초적인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문장 입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된 제3자 스트릭랜드의 삶은 예술에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바친 삶으로 비춰집니다. 누군가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졌을 때 구 주위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황홀경 가운데 나를 잡아당기는 강렬한 힘을 경험하듯, 스트릭랜드에게는 그것이 그림이었고 소설속 주인공에게는 인생이었던 것이죠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 밖의 것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노예선 안에 사슬로 묶인 노예들처럼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스트릭랜드의 마음을 사로잡은 정열도 그런 사랑에 빠진 마음이나 다름없이 폭군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던 거죠.”
나도 나름대로 예술가라고. 나 또한 그 사람이 정열을 불태웠던 그 욕구를 뚜렷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의 경우에는 그 매체가 그림이었고 나에게는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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