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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역사

역사의 쓸모, 최태성 :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까

by Caferoman 2021. 9. 8.

태극기 부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 번의 포스팅으로 <역사의 쓸모>를 정리하기엔 너무나 다양한 쳅터 속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역사의 몇 장면, 장면들을 나눠 올리기로 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하는 쳅터는 이 시대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태극기 부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나라입니다. 1953년 6·25 전쟁이 끝난 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프리카 50개국의 평균보다 못한 최빈국이었습니다. 외국의 석학들은 한반도가 구석기로 돌아갔다고 말했습니다. 사람하고 돌멩이만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 시대랑 비교될 만큼 우리나라가 가난했어요. 고작 60여 년 전의 이야기인데, 당시 사진을 보면 그처럼 가까운 과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지금 ‘못 사는 나라’라고 하면 어느 나라를 떠올릴까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그때 외국 사람들은 한국을 떠올렸습니다. 폐허에서 울고 있는 전쟁고아들과 거지꼴을 한 사람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모습이었습니다.

 

단순 생각과 입장의 차이로 편 가르고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그 어르신들은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전쟁 직후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요.

 

김일성, 박정희가 사망했을 때 진심으로 울던 자들이 있었다.

1994년 북한의 김일성이 죽었을 때 북한 사람들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뉴스로 접한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집단 주술에 걸린 것만 같았죠. “저기서 안 울면 잡혀간대”, “다들 연기하는 거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주변의 시선 때문에 우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죄다 배우도 아닌데,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이 서럽게 울부짖을 수 있었을까요? 김일성은 어버이 수령이라고 세뇌시킨 탓에 정말 자기 부모를 잃은 것처럼 느꼈던 걸까요? 저는 그들이 김일성의 죽음을 슬퍼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경험의 공유’라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이 끝난 뒤 북한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일성이라는 지도자와 함께 북한 주민들도 일어선 것이거든요.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먹고살 만한 나라로 만들었어요. 그 세대의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에 대해 갖고 있는 향수는 사실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역경을 극복한 자신들의 젊은 시절과 그 성공과 연대감에 관한 것이라고 봅니다. 내가 살아온 시대의 지도자 김일성을 부정하는 것은 곧 그와 함께 그 시대를 견뎌온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내가 살아온 시대의 지도자를 부정하는 것은 곧 그와 함께 그 시대를 견뎌온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유사한 감정을 박정희 시대를 향수하는 세대나, 박근혜 사면을 외치는 세대 또한 느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할 때, 혹은 미국 국기를 들고 흔들며 친미 구호를 외칠 때, 일부 젊은 사람들은 경악합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정희라는 지도자와 미국이라는 우방은 소위 ‘빨갱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주는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에 자신도 속해 있던 거예요. 그런데 젊은 세대가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고 우방국 미국도 부정해요. 그들은 마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그분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일으킨 나라인데!” 특정 대통령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의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온 세월, 내가 쏟아부은 노력, 그리고 그것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억울한 것이죠.

 

이 것이 역사의식과 함께 지난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데에 필요한 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시선이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헤아려보는 것 아닐까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겁니다.

 

개인적으로 군부 독재자와 그 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에 대한 불호와는 별개로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에 대한 추억 보정까지 하찮은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세대 간의 대화를 위해서는 '386세대는 군부독재정권의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 또한 베이비붐 세대 입장에서는 5/18 광주시민혁명에서 그릇된 색깔논쟁에서 벗어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에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라고 말한 표창원 씨의 주장과 같이 서로를 공감하는 이해와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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