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과제를 마주하는 자세
개항기 사람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신분 해방이었습니다. 김득신의 「양반과 상민」이라는 그림은 신분제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줘요. 상민이 길을 가다가 양반을 만나면 땅에 얼굴이 닿을 것처럼 허리를 숙여 인사해야 했거든요. 제가 이 동작을 따라 해봤는데요, 굉장히 힘듭니다. 보통 사람은 그만큼 숙이지도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림에 등장하는 상민의 자세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양반을 만나면 자연스레 그런 자세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양반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기가 번거롭긴 했나 봐요. 아예 상민들이나 천민들만 다니는 길을 만들기도 했어요. 아직도 그 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어디냐 하면 서울 종로에 피맛골이라는 골목입니다. 양반들이 타는 말을 피해서 다니는 길이라 피맛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죠.
술과 안주하기에 좋은 동네로만 알고 있던 '피맛골'이란 지명의 어원이 이런 것인 줄은 이 책을 보면서 처음알았네요. 무튼 자신의 노력없이 가지고 태어나고 또는 없이 태어나는 신분이란 족쇄가 당시 선조들에게는 얼마나 불편한 일이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시대의 과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면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항기에는 신분 해방을, 일제강점기에는 조국 해방을, 현대에는 빈곤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고요.
각자의 삶에는 자신만의 궤적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비교와 소비. 쟤는 있는데 나는 없네? 다들 샀는데 난 안 샀네?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소비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나의 소비로 인해 누군가가 또다시 비교하고 또 소비하겠지요. 이런 식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겁니다.
이 책에서 인상이 깊었던 '올바른 관리'의 표본 중 하나인 이원익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감명깊었습니다.
보통 관리라 하면 탐관오리나 성추문을 일삼는 인물들이 옛날 이야기를 통해 먼저 생각나는데 아래 이야기는 네 임금 밑에서 여섯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인물의 마치 '권력이란 이렇게 쓰라고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예화입니다.
조선시대에 이원익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요, 이 사람은 산에 있는 오두막에 살았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는데 산지기가 웬 아이를 그의 집에 맡깁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너 여기에서 꼼짝 말고 있어라 하고, 집주인인 이원익에게는 아이를 놓치면 옥에 갇힐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가죠. 산지기가 떠나고 이원익은 아이에게 왜 잡혀 왔냐고 물어봤겠죠. 아이는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산지기에게 붙잡힌 거였어요. 그런데 그 사정이 무척 딱합니다. “저희 집이 너무 추워서 그랬어요. 어머니가 병들어 누워 계신데 집에 땔감이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한 거예요. 여러 번의 전쟁을 겪은 뒤라 백성들의 삶도 피폐하던 때였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이원익은 “알았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합니다. 아이는 못 간다고 해요. 산지기 아저씨가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으니 말이죠. 그러자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괜찮다. 가도 된다. 이 땅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임금님인데, 그다음이 나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거라.” 아이는 어안이 벙벙해져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튿날 산지기가 포졸을 데리고 와 맡긴 아이를 내놓으라고 횡포를 부립니다. 그때 가마를 멘 사람들이 옵니다. 베옷을 입고 돗자리를 짜던 오두막의 노인이 사실은 정승이었던 것이지요. 그의 말대로 임금 바로 다음 가는 높은 사람, 바로 영의정이었습니다.
"걱정마 임금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나야, 내가 책임질테니 어서 가봐"
이런 패기는 정말 그 직위와 신념이 동시에 갖춰진 자라야 나올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원익은 스물두 살에 과거에 급제해서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네 임금 밑에서 무려 여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한 번 되기도 힘든 영의정을 여섯 번이나 했다니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싶지요? 그런데 그는 오두막에서 일반 백성들과 다름없이 살았습니다. 영의정은커녕 양반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난했어요.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연달아 일어나 나라가 초토화된 상황이었습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영의정이라면 당연히 그 ‘일부’에 속할 것 같은데 이원익은 오로지 나랏일만 고민했습니다. 성품이 대쪽 같아서 주변의 미움을 살 때도 있었고 귀양도 많이 갔지만, 그만큼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 정치에 힘을 쏟았어요. 백성들을 위해 대동법을 제안했고, 모함에 빠진 이순신을 구명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순천의 팔마비, 사또 최석
아래는 그동안 너희가 알던 그 '사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 당대에 드문 청렴한 관리의 모습을 보여준 최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지금도 순천에 가면 볼 수 있는 팔마비八馬碑는 고려시대에 순천에서 일한 사또 최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든 비석인데요, 당시 순천에는 임기를 마친 사또에게 전별금으로 돈을 모아 말 여덟마리를 사주는 나쁜 관행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말 한 마리의 가격은 지금 자동차 한 대 값과 같았다고 하니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당시 사또 임기가 3년이니까 순천 사람들은 3년마다 한 번씩 그 돈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게다가 관리가 사또만 있는 건 아니니 '사또는 말 여덟 마리, 사또 바로 아래 관리는 몇 마리, 그 아래는 또 몇 마리……' 이런 식으로 서열에 따라 전별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큰 고역이었다고 합니다.
최석이 임기를 마쳤을 때에도 순천 사람들은 말 여덟 마리를 준비해 바치는데 최석은 이 말들에 짐을 싣고 개경으로 떠났다가 개경에 도착한 뒤에 순천으로 말을 돌려보냅니다. 심지어 여덟 마리가 아니라 아홉 마리를... 이는 자신이 처음 부임할 때 타고 왔던 말이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이 말은 순천의 녹을 먹을 때 생겨난 것이므로 순천의 재산이라면서 그 말까지 함께 돌려보낸 것입니다. 이에 순천 사람들은 몹시 당황했고, 이런 관리도 있네? 하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석을 기리는 팔마비를 세웁니다. (팔마비는 기록상 백성들이 세운 최초의 공덕비라고 하는 군요.)
순천 팔마비(順天 八馬碑)는 전라남도 순천시 영동 우리은행(구 승주군청) 앞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비석이다. 1980년 6월 2일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의 건립 배경에 대해서는『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고려사』권34의 열전 최석에 기록된 관계 사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승평부에서는 태수가 바뀌어 돌아가면 태수에게는 말 8필을 주고, 부사(副使)에게는 7필을, 그리고 법조에게는 6필을 주되 마음대로 고르게 하였다. 석碩이 갈려감에 미쳐서도 읍인들이 말을 바치고 좋은 것 고르기를 청하니 석이 웃으며 말하기를“능히 서울에만 이르면 족할 것이어늘 말을 골라서 무엇하겠는가.”라고 하며 집에 돌아간 뒤 그 말들을 되돌려 보내니, 고을사람들이 받지 않으므로 석이 말하기를“내가 그대들 고을에 수령으로 가서 말이 망아지를 낳은 것을 데리고 온 것도 이는 나의 탐욕이 된다. 그대들이 지금 받지 않는 것은 아마 내가 탐을 내서 겉으로만 사양하는 줄로 알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그 망아지까지(모두 9필) 아울러 돌려주니 이로부터 증마贈馬의 폐단이 마침내 끊어졌으므로 고을사람들이 그 덕을 칭송하여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 이름하였다. 이것이 곧 오늘날까지 순천지역에 널리 알려진 팔마비 의 유래이며, 이 비는 한국의 역사상 지방관의 선정 겸 청덕비의 효시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의가 있다. - 위키백과
한 사람의 본보기가 오랫동안 내려져오던 적폐를 청산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순천에 들를 때에 한번 이 비석을 찾아봐야겠네요. 현재는 마모도 심하게 되고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모르면 그냥 지나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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