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명(明)나라 때 이르러 누군가가 ‘삼십육계’란 말을 연역(演繹)하여 역사상 끊임없이 쌓여 온 금낭묘계 중에서 36종의 유형을 추출하여, 평이하고 선명한 성어(成語)로 만들어 묘사하면서 일목요연하고 명확한 뜻을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때부터 ‘삼십육계’는 추상적이고 심오한 모략(謀略)을 뜻하는 군사(軍師)들의 전문용어가 되었다가 차츰차츰 일반적인 개념의 말로 진화했다.
"삼십육계" 라고 하면 보통 우리는 "줄행랑" 또는 "주위상"으로 표현되는 마지막 36번째 계책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지 않을까 싶네요. 2015년 리디북스 Paper를 구매하면서 함께 구매한 패키지에 삼십육계 시리즈가 있어서 접하게 된 전 36권인데, 한권 한권 읽다보니 어느새 33계, 4권의 책만이 남았네요.
제1계 만천과해瞞天過海 | 하늘을 속이고바다를 건너가듯 은밀하게 내일을 도모하라
이 책은 진시황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여불위와 그의 아들이 황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36번째의 계를 한마디로 "튀어라"라고 정의한다면
이 첫번째 계는 한마디로 "속여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만천과해(瞞天過海)라는 말은 당나라의 장군 장사귀가 고구려 원정 당시 태종이 바다를 두려워해 승선을 거절하자 배에 흙을 깔아 육상처럼 꾸며 황제를 속여 승선시켜 바다를 건넜다는 고사에서 연유한 말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비유하자면 "눈가리고 아웅"인 셈이지요.
여불위에 대하여
한(韓)나라의 거상이자, 진(秦)나라의 상방이었던 여불위는 조(趙)나라에서 장사를 하다가 진나라의 왕족으로 조나라의 볼모로 잡혀있던 이인을 보고 "기이한 물건이니 사둘만하다(此奇貨可居)"라고 판단,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 '왕을 세우는 일은 그 이익이 대대로 남는 일이다'라고 아버지를 설득합니다.(전국책의 기록)
이인은 진 소양왕의 태자 안국군(훗날의 효문왕)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생모가 이미 안국군의 총애를 잃은 데다 스무 명이나 되는 형제들 사이에 끼어 변변찮은 대우를 받으며, 왕이 될 가능성도 별로 없이 타국으로 인질로 보내진 소위 버린 자식의 신세였습니다.
그런 이인을 여불위는 사들인 여불위는 진으로 들어가 안국군의 총비였던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 이인을 화양부인의 양자로 들일 것을 제안하고, 이 때 화양부인은 안국군의 총애를 받고는 있었지만 그 사이에 자식은 없었기에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단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이인을 양자로 삼는 것은 서로가 윈윈이 되는 전략이었기에 화양부인은 여불위의 제안을 수락하고 안국군도 이 이야기를 승락해 이인은 화양부인의 양자가 됩니다.
이후 이인은 인생역전을 이뤄준 여불위를 자신의 후견인으로 삼고 훗날 이인이 귀국하여 드디어 진의 왕이 되는데 이가 바로 장양왕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이때 여불위가 자신의 애첩이었던 조희를 마음에 들어하던 자초(장양왕)에게 바쳤는데, 조희는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그 아이가 바로 훗날 진의 왕으로 즉위하게 될 정, 훗날의 진시황제였다고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록을 토대로 한다면 여불위는 듣보잡 왕자를 한나라의 왕으로 세우고 자기 자식의 핏줄을 속여 훗날 중국을 통일하는 황제의 자리에 세운 역사상 유례가 없는 킹메이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은밀하게, 위대하게 계를 도모하라
‘세상을 압도하는 업적을 세우려고 하면 반드시 평범한 사람들의 세속적인 의론과 반대에 부딪친다.
또 독창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일반 지식인들의 불만에 부딪친다.’
여불위의 이야기를 통해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그 계획을 도모해야 함을 저자 "마서휘"는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불위가 말 그대로 세상을 속이고 천하를 얻는 데에는 그의 안목과 개인의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요.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이런 얘기가 있다. 송(宋)나라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비방(祕方)이 있었다.
이 비방으로 만든 약을 손에 바르면 겨울에 손을 물에 넣어도 트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탁업에 종사했다. 손이 트지 않으니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여러 대에 걸쳐 모은 재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황금 100냥을 가져와 이 비방을 사갔다.
그는 이 비방으로 만든 약을 전쟁 중 도하작전에 사용했다.
병사들의 손발이 트지 않아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봉후(封侯)가 되었다.
이때, 그가 받은 봉후와 황금 100냥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 차이라 하겠다.
이처럼 멀리 볼 수 있는 안목과 단천(短淺), 소질(素質)의 좋고 나쁨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되는 것이다.
반등 가능성이 있는 대상에게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계를 도모하다
물건을 보는 즉시 화살을 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먼저 그 물건을 관찰한 후에 화살을 쏘는 것은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물건을 자세히 관찰한 후에 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현인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취할 만한 것입니다. 소자가 활을 쏘지 않은 까닭도 황구가 암컷이고, 게다가 새끼를 배고 있어 차마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소자 부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여불위가 지목 후원했던 자초가 본국 진나라로 돌아가 후계자로서의 신임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여불위는 그 배후에서 조용히 천하를 얻기위한 과감한 계획들을 도모합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과는 반대로
조용히 불어가는 거대한 물결처럼
큰 일을 달성하기 위한 움직임은 그렇게 묵직해야 함을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온천하를 속이고 비할 데 없는 권력을 향유한 여불위의 말로는 그리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결국 자신의 혈통(일지도 모르는) 진왕에게 다른 나라와 모의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를 받아 촉지(蜀地)로 귀양갈 것을 명받고, 자신의 최후를 깨달은 여불위는 절망한 나머지 이듬해, 스스로 독을 마시고 목숨을 끊게 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은밀하고 위대한 속임수"는 삼십육계의 첫번째 계책이 되었습니다.
'책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십육계 제4계 이일대로 以逸待勞 : 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상대방을 지치게 한 후 공격하라 (0) | 2021.09.04 |
---|---|
삼십육계 제3계 차도살인 借刀殺人 : 적의 칼을 빌려 수장을 무너뜨린다 (0) | 2021.09.03 |
역사의 쓸모, 최태성 :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는 것 (0) | 2021.08.31 |
삼십육계 제2계 위위구조 圍魏救趙 : 정면 공격보다는 우회하라 (0) | 2021.08.29 |
역사의 쓸모, 최태성 : 역알못에게도 술술 읽히는 역사책 (2) | 2021.08.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