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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종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 ch.1 : 철학

by Caferoman 2021. 8. 8.

진리의 역사

인류는 진리의 속성을 분명히 알고 있다 :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함

불가지론은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는 초월적 진리를 추구했던 고대 그노시스파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그노시스파는 1세기 무렵에 민중 사이에서 유행한 종교로, 그리스 사상부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동양 사상까지 다양한 종교가 혼합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그노시스(Gnosis)는 ‘지식’을 뜻하는 말인데, 진리로서의 신의 본질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그노시스파는 개인이 이러한 본질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이 절대적 진리에 닿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반대하던 입장을 아그노시스(Agnosis)라고 불렀다. 이들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로는 그노시스에 결코 닿을 수 없다고 보았다. 불가지론이 영어로 ‘agnosticism’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각해보면 진리가 뭐가 되었든 무슨 상관인가? 신이 있다고 해서, 혹은 아인슈타인이 우주 전체를 단칼에 설명할 대통일 이론을 찾았다고 해서 나의 삶이 달라질 것은 없다. 나는 내일도 출근해서 김 부장 얼굴을 봐야 하고, 마무리된 프로젝트의 성과 분석을 해야 하며, 학자금 대출 이자납기일 전에 통장에 잔고를 남겨둬야 한다.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 진리 같은 건 필요 없다. 이러한 생각을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번역해서 실용주의라고 한다.

수학 :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 제1불완전성 정리 : 적어도 하나의 자연수 이론이 포함된 형식적 체계 안에는 결정 불가능한 공식, 즉 그 자체로 증명이 불가능한 공식이 존재한다.
  • 제2불완전성 정리 : 적어도 하나의 자연수 이론이 포함된 형식적 체계의 무모순성은 해당 체계 안에서는 증명될 수 없다.

하나의 특정 수학 체계는 자기 스스로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음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에 우리가 수학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적어도 하나의 명제는 증명할 수 없고, 이것은 수학 체계가 완벽하게 증명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리학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불확정성 원리는 현대 양자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다. 이 이론은 단적으로 말해 그 전까지의 근대 거시물리학의 한계를 선언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점차 극도로 작은 소립자의 세계를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이곳에서는 더 이상 거대한 세계의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현대 물리학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물리학의 기본은 특정 물체를 위치와 속도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미시 세계에서는 더 이상 기존 물리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물리학의 실패나 포기를 말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불확정성 원리 이후 과학은 더 발전해왔으며, 소립자의 불확정성은 무질서가 아니라 확률 안에서 유의미하게 제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다만 불확정성 원리가 당시를 충격에 빠트리고 물리학이 완벽하게 세상을 예측할 것이라는 확신을 무너트렸다는 점에서, 불확정성 원리는 이성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던 근대 합리성의 시대를 변화시키는 데 공헌했다.

철학 : 파이어아벤트의 인식론적 무정부주의

20세기에 활동한 파이어아벤트는 근대 이성중심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과학적 지식과 방법론만이 진리를 검증해줄 유일한 수단이라고 여기던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거부하고, 과학적 지식이 다른 모든 형태의 지식과 구분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파이어아벤트의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합리적 이성의 기초가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충동에서 기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 합리성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작업을 ‘해체’라고 한다. 해체는 포스트모던의 대표적 특징이다.
근대를 끝내고 현대 포스트모던의 탄생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해라.”

철학

본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자들

중세 철학 : 교부 철학, 스콜라 철학

① 보편이 실제로 존재한다. 개별적인 것은 보편의 모사, 모방이다. - 실재론, 실념론(플라톤)
② 보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것만이 실제로 존재할 뿐이고, 보편은 단지 언어이고 이름일 뿐이다. - 유명론(아리스토텔레스)

근대 철학 :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니체

중세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싸움이 보편논쟁에서의 실재론과 유명론에 있었다면, 근대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합리론

  • 합리주의, 이성주의라고도 한다. 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입장
  •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이성을 제시
  • 프랑스나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했기에 ‘대륙 합리론’이라고도 부른다.
  • 대표적인 철학자 : 데카르트, 가상디,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방법적 회의

  • 모든 것을 의심하다 보면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이것이 발견된다면 그때부터 이 단단한 기반을 토대로 모든 학문 체계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렇게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의심하라

이렇게 극단적인 가정으로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가 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사실 이 말은 후에 데카르트에 의해 수정되어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가 되었다. ‘고로’를 뺀 것이다. 이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고로’를 넣을 경우 마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실로부터 나의 존재함이 발생되는 것처럼 보인다. 데카르트가 생각하기에 ‘생각한다’와 ‘존재한다’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독립해 있는 것이었다.

인간에서 출발한 신의 증명

내가 생각하고 존재하는 것은 증명되었다. 그런데 내 생각 속을 들여다보면 독특한 관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에 대한 관념이다. 이 관념이 독특한 것은 신은 개념상 완전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 자신도 의심하고 세계도 의심할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인데, 나에게는 이미 '완전함'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질서에서 무질서가 도출될 수는 있어도 무질서에서 질서가 도출되지는 않듯,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함은 도출될 수 없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사유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모든 세계를 증명하기 시작한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나의 의심과 회의를 통해서 발견되고, 나의 존재 증명이 신과 세계의 존재 증명보다 앞선다. 즉, 인간의 이성이 우선이고, 신과 세계는 이로부터 파생되어 증명된다. 데카르트가 아직도 '신'을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험론

  • 자연 세계에서의 감각적인 경험만이 지식의 원천이 된다고 보는 입장
  • 변화하는 경험 세계를 토대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경험론은 상대주의적인 측면이 강함
  • 개별적인 개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중세의 유명론과도 연결됨
  • 대표적인 철학자 : 프랜시스 베이컨
  • 경험론은 주로 영국에서 발전되어왔기 때문에‘영국 경험론’이라고도 부른다.

경험론과 합리론의 대립 그리고 칸트의 등장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은 근대 서양 철학의 흐름을 이끌었다. 두 관점은 상이한 방향과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고, 간극은 좁히기 어려워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체계를 종합함으로써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서양 철학을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한 인물이 등장했다. 그가 바로 임마누엘 칸트다. 우리는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봤고 무엇인가 대단하다는 말도 들어왔는데, 단지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했다는 점에서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철학사를 탐구하면서 알게 된 것은 철학 전체는 핵심적인 두 가지 전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절대주의-실재론-합리론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축과, 상대주의-유명론-경험론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축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했다는 것은 사실 철학 전체의 두 사조를 종합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칸트는 2,000년 넘게 이어져오던 거대한 철학 논쟁을 종결지은 것이다.

 

칸트는 세상을 둘로 분리했다. 내 눈앞에 드러난 세계를 ‘현상’이라고 부르고, 현상 너머의 진짜 세계를 ‘물자체’라고 불렀다. 칸트에 따르면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고, 사물의 실체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합리론자들이 말하는 이성은 주관적인 독단에 빠지기 쉬워서 위험하고,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경험은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으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사고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고의 형식을 분석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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