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인문학

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재

by Caferoman 2022. 11. 2.

소학에 대한 다산의 해석을 해석한 책 : 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재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중 소학편

博學不敎 內而不出(박학불교 내이불출)
많은 것들을 폭넓게 배우되 설익은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
지식과 덕은 마음에 쌓아 갈무리하는 것이지,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논어, 대학 편에서 학문에 임하는 자세와 더불어 입신양명과 군자가 되기 위한 이정표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루었다면 소학편에서는 앞서 올바른 한 인간으로 바로 서기위한 가르침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소학은 남송 시기 사람인 주자(朱子)와 그의 제자 유청지(劉淸之)가 함께 만든 책으로 주자가 쉰이 넘은 나이에 펴낸 아동교육서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자는 책의 서문인 〈소학서제〉에서 책의 취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 아동 교육에서는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고 대답하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예절과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스승을 존경하고 벗과 친하게 지내는 도리를 가르쳤다. 이것은 모두 《대학》에서 가르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근본이 된다. 어릴 적에 배우고 익히도록 한 까닭은 배움이란 지혜와 함께 자라고, 가르침은 마음과 함께 이뤄지게 해서 그 배운 것과 실천이 서로 어그러져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근심을 없게 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소학이라는 책을 대하는 독자 중 하나로서의 마음가짐은 내가 어떻게 배우고 성장할 것인가를 넘어 자식을 어떻게 가르치고 성장하게 할 것인가를 동시에 주목해 보게 됩니다. 

 

幼子 常視無誑 立必正方 不傾聽
(유자 상시무광 입필정방 불경청)
아이들에게는 항상 속이지 않는 것을 보이며, 바른 방향을 향해 서며, 비스듬한 자세로 듣지 않도록 가르친다.
《예기》, 〈곡례曲禮〉

 

위의 예문은 자녀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세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요, 먼저 본을 보이는 것, 바르게 행동하는 것, 바르게 듣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올바른 행위를 하는 것(또는 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본을 보이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고전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니 눈길에서는 함부로 걷지 마라. - 이양연

 

자녀교육에 있어 음악교육의 중요성

곧은 자는 반드시 온화함이 부족하므로 온화하고자 하고, 너그러운 자는 반드시 그 엄숙함이 모자라니 한쪽으로 편벽될까 염려하며 보충하는 것이고, 강한 자는 반드시 오만함에 이르므로 그 오만함을 없애고자 하니, 그 지나침을 막아서 경계하고 금지하는 것이다. 주자冑子(고관대작의 맏아들)를 가르치는 자는 이같이 하되 그 가르치는 바의 도구는 오로지 음악에 있으니, 음악은 사람에게 중화의 덕을 길러서 그 기질의 편벽됨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학》 의 주석서 《집해》 에서는 균형잡힌 인성을 기르는 데에 무엇보다 음악이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조들이 육예(禮樂射御書數(예악사어서수)로 “예절, 음악, 활쏘기, 말타기, 글쓰기, 셈하기”를 말함)라고 하여 다른 실용적인 학문과 함께 글쓰기와 음악을 강조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단순히 음악이 악기 하나를 다룰 줄 아는 교양을 갖추는 정도의 의미를 넘어 한 인격의 조화를 완성시키고 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興於詩 入於禮 成於樂
(흥어시 입어례 성어락)
시에서 감성을 일으키고 예를 통해 바로 서고 음악으로 완성한다.
《논어》, 〈태백泰伯〉

 

시와 음악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行有餘力 則以學文
(행유여력 즉이학문)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그때 학문을 닦아라.
《논어論語》, 〈학이學而〉

 

소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글와 음악은 단순히 예술적인 소양을 쌓고 이를 표현하는 수준에 그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무릇 올바른 생각에서 올바른 글과 음악이 나올수 있으며, 행함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기지 않은 글과 음악은 예술의 본질을 충족시키기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장이란 무엇일까? 학식이 안으로 쌓여 그 아름다움과 멋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몸에 윤기가 흐르고, 술을 마시면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어찌 갑자기 이룰 수 있겠는가?  ··· 지금부터 문장학에 뜻을 끊고 서둘러 돌아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라. 안으로 효우의 행실을 돈독히 하고, 밖으로는 경전 공부를 부지런히 함으로써 성현의 바른 말씀이 언제나 몸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과거시험도 준비해서 앞길을 열고, 임금 섬기기를 바라도록 하라. 그리하여 태평한 시대의 상서로운 인물이 되고, 후세의 위인이 되어야 한다. 경박한 취미로써 천금 같은 몸을 가볍게 버려서는 안 된다. 진실로 자네가 고치지 않는다면, 차라리 노름질이나 술집에서 노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 다산 정약용

 

아울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근심과 문제의식이 없는 시와 음악은 시가 아니고 음악이 아니라고까지 강하게 말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관점에서 선조들이 생각한 시와 음악은 훨씬 더 사회참여적이고 실천이 뒷받침되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음을 다산의 서신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시대를 상심하고 세태를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찬미하고 풍자하고 권면하고 경계하는 뜻이 없다면 시가 아니다. 뜻이 서지 않고 배움이 순수하지 않으면 큰 도를 듣지 못하니, 임금에게 미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할 마음을 지니지 못한 자는 능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 너는 힘쓰도록 해라.
- 다산 정약용

 

敎人 未見意趣 必不樂學 且敎之歌舞
사람을 가르칠 때 그 의지와 취향을 알지 못하면 학문을 즐기지 못한다.
이때에는 잠시 노래와 춤을 가르쳐야 한다.
《이정전서二程全書》

 

기본으로 돌아가라 : Back to the Basic

凡內外 鷄初鳴 咸盥漱 衣服 斂枕簟 灑掃室堂及庭 布席 各從其事
(범내외 계초명 함관수 의복 렴침점 쇄소실당급정 포석 각종기사)
모든 안팎의 사람들은 첫닭이 울면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을 입는다. 베개와 대자리를 걷고 방과 마루, 뜰에 물을 뿌리고 청소한 다음 자리를 펴놓는다. 그런 다음에 각자가 맡은 일을 한다.
《예기》, 〈내칙〉

 

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 불협장 불협귀 불협형제이우 우야자 우기덕야 불가이유협야 벗을 사귈 때는 자신이 연장자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신분이 높다는 것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며 형제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벗이란 그 사람의 덕을 사귀는 것이기에 그 사이에는 어떤 것도 개입하면 안 된다. _《맹자》, 〈만장 하萬章下〉

 

급선무(急先務)의 어원

급선무急先務라는 말이 있다. ‘서둘러서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뜻으로 요즘도 곧잘 쓰이지만 알고 보면 2,300여 년 전 인물인 맹자의 말을 기록한 《맹자》 〈진심 상〉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전문을 보면 이렇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르는 것이 없지만 눈앞에 닥친 일은 서두른다. 인仁한 사람은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친족과 현자를 사랑하는 일을 서둘러 먼저 한다. 요순의 지혜로도 만물을 두루 알지 못한 까닭은 먼저 해야 할 일을 서둘렀기 때문이고(堯舜之知而不徧物 急先務也), 요순의 인으로도 두루 사랑하지 못한 까닭은 친족과 현자를 사랑하는 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급선무라는 말이 맹자의 말에서 유래된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를 포함해서요.) 맹자는 군자가 가장 먼저 서둘러 해야 할 일을 설명하며, 아무리 지혜롭고 인자한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까닭은 시급히 먼저 알고, 시급히 먼저 사랑해야 할 것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급선무라는 표현이 오늘날에는 업무에 신속한 대응을 요청하는 용도로만 퇴색되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공자에게도 제 자식 교육은 쉽지 않았다

孔子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無以言 鯉退而學詩
(공자상독립 리추이과정 왈 학시호 대왈 미야 불학시무이언 리퇴이학시)
공자가 일찍이 뜰에 홀로 서 있을 때, 아들 리鯉가 종종걸음으로 지나가자 공자는 
‘너는 시를 배웠느냐?’ 하고 물었다. 리가 ‘아직 못했습니다’ 하자, 공자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들과 말을 할 수 없다’라고 가르쳤다. 리는 물러나 시를 공부했다. 
《논어》, 〈계씨〉 

 

원래 이 예문은 공자의 제자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리)와 나눈 대화라고 합니다. 진항이 “당신은 아버지께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백어가 대답한 말을 각색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항은 공자가 아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라는 기대와, 그 가르침을 자신도 알고 싶다는 의도에서 질문을 한 것인데, 이 대화를 통해 진항은 기뻐하며 “하나를 물어서 세 가지를 알게 됐다. 시에 대해 듣고 예에 대해서 들었으며, 군자는 자기 자식에게 거리를 둔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공자가 또 홀로 뜰에 서 있었는데 리가 종종걸음으로 지나가자 공자는 ‘너는 예를 배웠느냐?’ 하고 물었다. 리가 ‘아직 못했습니다’ 하자 공자는 ‘예를 모르면 몸을 바로 세울 수 없다’ 하므로 리는 물러나 예를 공부했다.”

 

저는 이 예문에서 특히 군자에게도 자식 가르치는 것은 꽤나 버거운 일이겠구나 라는 점이었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대화에서도 공자가 아들에게 예를 배웠냐고 묻고 아직 못했다고 하자 (직접 가르쳐주지 않고) 얼른 가서 공부해라 라고 하는 공자의 모습을 보며 공자 역시 평범한 부모인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자식 교육을 부담스러워 했던 모습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맹자 역시 그의 제자와의 대화를 통해 군자가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며 차라리 아들을 서로 바꾸어 가르치는 것(古者易子而敎之)이 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니... 예나 지금이나 자식교육은 늘 쉽지 않은가 봅니다.. 

 

제자 공손추公孫丑가 “군자가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까닭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묻자, 맹자가 대답했다.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른 도리로 가르칠 텐데,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감정이 상하게 된다. 아들도 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나에게 바른 도리를 가르치지만 정작 아버지의 행동은 바르지 않은 것 같구나’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부자간에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는데 이는 옳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자로의 장점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먼저 소송에서 판결을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그의 남다른 판단력과 표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을 간략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그다음 소송을 묵혀두지 않고 즉시 실행하는 힘은 결단력에서 나온다.

 

敎小兒 先要安祥恭敬 今世 學不講 男女從幼便驕惰壞了 到長益凶狠 只爲未嘗爲子弟之事 교소아 선요안상공경 금세 학불강 남녀종유편교타괴료 도장익흉한 지위미상위자제지사 아이가 먼저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사물을 자세히 살피며, 공손하고 경건한 태도를 가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학문을 배우지 않아 남녀 할 것 없이 어릴 적부터 교만하고 게을러졌으며 자라서는 더욱 흉포해지고 사나워졌다. 이는 어렸을 때 해야 할 일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_《장자전서張子全書》

 

아이 교육에 천자문은 바람직하지 않다 - 정약용

다산은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천자문》이 아이를 교육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는데요, 그 이유에서 다산이 주장하는 학습법/교수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천지天地의 글자를 배우고 나면 일월日月, 성신星辰, 산천山川, 구릉丘陵 등 비슷한 종류를 다 알기도 전에 그것은 그만두고 오색五色을 배우라고 하고, 현황玄黃의 글자를 배우고 나면 청적靑赤, 흑백黑白, 홍자紅紫, 치록淄綠의 다른 점을 분별하기도 전에 우주宇宙를 배우라고 하니 이 무슨 가르침의 법인가? ··· 대체로 문자를 가르침은 맑은 청淸으로 흐릴 탁濁을 깨우치고, 가까울 근近으로 멀 원遠을 깨우치며, 가벼울 경輕으로 무거울 중重을 깨우치고, 얕을 천淺으로 깊을 심深 을 깨우쳐야 한다. 두 글자씩 들어서 대조해 밝히면 두 가지의 뜻을 함께 알게 되고, 한 자씩 들어서 말하면 두 가지의 뜻을 함께 모르게 된다. 특출한 두뇌가 아니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 다산 정약용

 

즉 다산의 교수법은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배우는 연관학습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한글자를 더 익히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식견識見(학식과 견문.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열어주는 것에 있음을 다산은 말하고 있습니다.

 

대기만성의 어원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지고, 큰 소리는 듣기 어렵고,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
《도덕경》 41장

앞서 소개드린 급선무와 마찬가지로 대기만성이라는 표현 역시 많이들 사용하지만 그 어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아는 이들은 (저를 포함해) 많지 않습니다. 원문을 보니 그 의미가 더 기하학적으로, 음향학적으로 와 닿는 비유인 것 같네요.

 

스승으로서의 다산

待人春風 持己秋霜
(대인춘풍 지기추상)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하라.”

이렇듯 소학에서 말하는 진정한 교육, 배움이란 우선 나 자신이 바로 서고 바른 본을 보이여 바른 자세로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다산이 제자 황상을 가르치며 주고받았던 대화가 나오는데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스승으로서 다산의 깊은 뜻을 해아려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황상은 다산의 수제자로 아전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제약에도 훗날 훌륭한 문인이 되는데요, 황상이 처음 다산을 찾아왔을 때 “선생님, 저에게는 세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너무 둔하고, 앞뒤가 꽉 막히고, 사리분별을 못합니다.” 라고 말하자 다산은 이렇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 번 보고 척척 외우는 사람은, 그 뜻을 음미하지 않아 금세 잊어버린다. 둘째, 제목만 던져 줘도 글을 짓는 사람은, 똑똑하지만 오히려 글은 가볍다. 셋째, 한 마디만 해도 금세 알아듣는 사람은, 곱씹지 않아 깊이가 없다.
- 다산 정약용

 

우리가 장점이라고 자만하는 것들이 때로는 배움에 있어 독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되려 배움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다산의 경구는 배움에 있어서 무엇보다 겸손한 자세가 중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