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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학

이탈리아어의 모체가 된 14세기 작가 : 클래식 클라우드 - 단테

by Caferoman 2022. 1. 28.

단테의 삶과 신곡을 통해 살펴보는 단테의 세계 : 클래식 클라우드 단테, 박상진

 

21세기에 단테를 읽는 것은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방문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위용에 압도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곳으로 기꺼이 들어간다. 그곳은 집처럼 편안하지는 않지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대성당을 찾은 이와 단테의 독자는 곧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 번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움직일 수 없는 확고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처럼 완전한 질서가 무한하고 오묘하며 놀라운 어떤 힘 그 자체인 신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책 -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크리스티아네 취른트>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 단테 편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유명한 아티스트, 소설가, 철학가, 음악가 등의 생애와 족적을 따라가 보는 시간여행이자 랜선 여행의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니체를 예로 들면 그가 교수로서 강단에 선 독일의 바젤대학교에서 시작하여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쓰인 스위스 질스 마리아까지 오늘날의 그 장소들을 방문하며 "그 당시 그는/그녀는 이곳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라며 회고해보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테의 경우 워낙 그의 작품 신곡(Divina Commedia)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어서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단테가 곧 신곡, 신곡이 곧 단테인 관점에서 그의 작품과 삶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The Classic : 신곡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편

고전. 사람들이 칭찬은 하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
Classic. A book which people praise and don’t read.
마크 트웨인(Mark Twain)

 

사람들이 칭찬은 하지만 정작 읽지는 않는 책이라는 클래식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정의처럼 신곡이라는 작품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음에도 정작 이 작품을 완독해 본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클래식 중 클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저 역시도 연옥편 부터는 제대로 읽지를 못해서 조금 찔리네요.)

 

우리 인생 여정의 중반에 나는 어두운 숲에서 갈 길을 잃고 말았다.
Midway on our life’s journey, I found myself In dark woods, the right road lost.

 

신곡은 고대 로마 최고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젊은 시절 짝사랑했었던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지옥편」에서 시작해 「연옥편」, 「천국편」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곡에서 ‘3’이란 숫자는-삼위일체를 뜻하는 성스러운 숫자로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3부는 각각 한 권으로 되어 있고 각 권은 다시 33개의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서곡을 포함하면 1+ 33 + 33 + 33 = 100으로 총 100개의 곡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옥, 연옥, 천국은 각각 아홉 단계로 나뉘며 3행이 하나의 연을 이루는 시의 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정도면 거의 강박 수준...)

 

작년 쇼미더머니 결승 무대에서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가 아래와 같은 벌스를 쓴 데에는 다 이런 작품 구조를 반영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서는 자에게 우리의 신곡
시작부터 지옥 마치 단테의 신곡
<가리온 - 조광일 중 최자 Verse>

 

단테, 지옥에 들어서는 문 앞에 서다

단테의 신곡의 경우 천국, 연옥의 내용에 비해 지옥의 내용이 압도적으로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이 행복하고 잘살고 있는 이야기보다는 남들이 고통받는 이야기를 더 흥미로워하는 우리의 본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통의 도시로 가는 길이 나를 통하고,
영원한 고통으로 가는 길이 나를 통하며,
영원히 버려진 인간들에게 닿는 길이 나를 통한다.

정의가 조물주께 호소했나니,
나를 창조한 이는 신성한 권위이시며, 최고의 지혜이시며, 태고의 사랑이시니.
영원한 존재들 이외에 나보다 먼저 창조된 것이 없나니, 나 또한 영원히 지속된다.
여기 들어오는 자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니라.


Through me the way into the suffering city,
Through me the way to the eternal pain,
Through me the way that runs among the people lost forever.

Justice urged on my high artificer;
My maker was divine authority, The highest wisdom, and the primal love.
Before me nothing but eternal things were made, And I endure eternally.
Abandon all hope, ye who enter here.

 

사실 단테의 본래 이름은 처음에는 외할아버지 두란테 델리 아바티의 이름을 따서 ‘두란테Durante’라고 불리다가 1266년 3월 산 조반니 세례당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단테 Dante’라 줄여졌다고 합니다.. 어려서 잠시 불린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어로 ‘지속하다’ ‘견디다’의 뜻을 지닌 ‘두란테 Durante’는 단테의 삶을 정의하는 데 딱 맞는 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테의 청신체, 현대 이탈리아어의 모체가 되다

청신체(淸新體, dolce stil novo)는 글자 그대로 ‘맑고 새로운 문체’라는 뜻으로 ‘돌체 dolce’의 함의는 깊고도 넓지만, 사랑의 태도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가슴속에 들어온 사랑이 부드럽고 달콤한 말을 속삭일 때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쓰면 그것이 곧 시가 된다는 관점입니다.

 

결국 그가 주도한 청신체파 시인들은 이 같은 주제를 세련된 이탈리아어로 담아냈고, 결국 단테가 라틴어에 비교하며 ‘고귀한 속어’라 부르는 차원까지 오르며 현대 이탈리아어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단테는 중앙의 라틴어 대신 지역의 이탈리아 속어가 우수하고 고결하며 선택된 언어라고 선언했다. 그 선언에는 언어의 소통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실질적인 요청이 깔려 있었다. 단테는 무엇보다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그 스스로 “더 많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다중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그것은 지식인의 근본 임무였다. 이 생각은 단테의 모든 글과 삶에 반영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단테는 훗날 19세기에 일어난, 계몽주의와 결합한 낭만적 민족주의의 분위기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 그의 모습은 한 시대의 요구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과 연대라는 언어의 본질적 기능과 관련하여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에게 언어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실천의 문제였고, 실천은 곧 사회적 소통과 연대를 뜻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라틴어를 비판적이면서도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다른 속어들과의 경합을 이겨낸 언어가 단테의 ‘고귀한 속어’였다.

 

스페인어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있다면

이탈리아어에서는 단테의 신곡이 있기에 그 언어가 더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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