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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학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정반합 독서법 : 열한 계단, 채사장

by Caferoman 2022. 6. 14.

독서의 지평을 넓히는 좋은 독서법의 사례 : 열한 계단, 채사장

열한 단계의 변증법을 거치는 책의 구성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철학자인 세나카가 남긴 위의 구절로 이 책은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위의 구절은 단순히 오래 살았다고 해서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아니라는 따끔한 충고인데요, 이 책은 앞선 현인들의 다양한 관점을 통해 세상과 인생, 내면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하나의 주관적인 이정표와도 같은 인문학 서적입니다.


저자는 세상의 독서가는 익숙한 책을 선택하는 사람과 불편한 책을 선택하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하나의 책에서 자리 잡은 세계관이 다음 책에 의해 무너지며 더 큰 지평으로 도약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는 구조인 이 책은 제목처럼 열 한 단계의 정반합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1. 문학 – 죄와 벌
  2. 기독교 – 신약성서
  3. 불교 – 붓다
  4. 철학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5. 과학 – 우주
  6. 이상 – 체 게바라
  7. 현실 – 공산당 선언
  8. 삶 – 메르세데스 소사
  9. 죽음 – 티벳 사자의 서
  10. 나 – 우파니샤드
  11. 초월 - 경계를 넘어서

 

이렇게 정반합을 통해서 변증을 하는 방법의 원조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인데요, 저자는 헤겔의 변증법을 아래와 같이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상상을 해보자. 방금 하나의 어린 정신이 태어났다. 이 정신은 완벽한 하나의 세계로서 결함 없이 정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정신의 이름은 ‘정(正)’이다. ‘정’은 평화롭고 고요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어린 정신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기 안에서 자라난 질문들, 모순된 결론들과 대면하는 것이다. 이제는 공존할 수 없다. 정상적인 자기 자신과 모순된 자아상을 분리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반대되는 자아상을 이제부터 ‘반(反)’이라 이름 붙이고, 자아로부터 떼어내자. 이제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것과 대면하게 되었다. 자아와 반자아의 투쟁이 시작된다. 치열한 투쟁 결과 어린 정신은 모순된 자아상을 수용한다. 이제는 ‘정’도 아니고 ‘반’도 아닌 새로운 성숙한 정신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숙한 정신의 이름은 ‘합(合)’이다. ‘합’은 완벽한 하나의 세계로서 결함 없이 정상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이제 ‘합’은 동시에 ‘정’이 된다. 이 과정은 끝없이 반복되며 하나의 정신을 성장하게 한다.

 

열한 계단의 시작 :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2021.09.11 - [책/소설에세이] -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 사람은 그렇게 괴물이 되는 거야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 사람은 그렇게 괴물이 되는 거야

독서노트 병적인 상태에 있을 때 꾸는 꿈은 가끔 이상한 입체성과 뚜렷한 선명함, 놀랄 만한 현실과의 유사성을 그 특색으로 한다. 때로는 기괴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 꿈의 상

ddbook.tistory.com

 

《죄와 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의 무기력한 일상은 산산조각 났다. 무한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칠흑 같은 내 영혼의 골방엔 깊은 균열이 생겼다. 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저자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로 이 책을 시작하는 구성은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만약 이 변증의 계단이라는 구성에서 《죄와 벌》을 구성한다면 기독교 다음으로,

《죄와 벌》의 다음 계단으로는 니체와 그의 초인 사상으로 흐름을 잡았을 것 같은데, 아무튼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에 따른 순서이니 이 점은 감안하고 작가의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하면서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방법에서 로쟈와 소냐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로쟈는 다수의 선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소냐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다수의 선을 실현했다.

 

이 쳅터에서는 의무론적 윤리관과 목적론적 윤리관의 차이를 다루고 있는데요, 보편적인 도덕 법칙에 해당하는 의무론적 윤리관과 공리주의에 해당하는 목적론적 윤리관을 비교하면서 '각각의 사회와 개인이 중시하는 행복과 이익의 기준은 무엇일까?'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나는 종교적 구원에 이르는 두 가지의 길이 있음을 배웠다.
첫 번째 길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길이다.
두 번째 길은 붓다를 뒤에 두고 홀로 걸어가는 길이다.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길이 더 마음에 드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른으로 성숙해간다는 것은 세계의 복잡성을 초연하게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세계의 복잡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완전함과 충만함의 허구성을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완전함과 충만함을 내려놓은 사람에게 행복은 없다.

 

니체의 특성상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경우 기독교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비교되며 변증이 될 필요가 있는데 저자 역시 기독교와 불교에 이어서 니체의 사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개념 1 : 신의 죽음
니체는 자신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근대의 유럽인들이 병들었다고 진단했다. 병명은 나약함과 왜소함이다. 그에 따르면 중세와 근대의 2천 년을 지나오면서 유럽의 문화와 사상은 타락했고 퇴폐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러한 질병을 가져온 직접적인 요인은 바로 그리스도교와 이성중심주의다.

 

니체의 실존주의 철학은 근대 유럽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데요, 그는 기독교가 유럽을 병들게 했으며, 노예의 도덕, 원한과 증오의 도덕이 유럽인들을 잠식했으며, 신에 대한 순종, 복종, 겸손, 절제라는 도덕 가치가 인간을 초라하고 수동적이며 부정적인 존재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합니다.

 

주요 개념 2 : 초인
초인은 삶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기 자신을 극복한 존재를 말한다. 그는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세계에 사로잡히지 않은 존재다. 그는 대지에 속해 있으며 건강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존재다. 그리고 신이 죽은 세상의 허무를 긍정하는 주체적인 존재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사상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말하는 능동적인 허무주의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 다시 말해 고전적인 형이상학적 이분법을 버리고 내가 발 딛고 있는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고 바로 서라는 니체의 제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요 개념 3 : 영원회귀
신이 죽은 세계.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세계의 창조 목적이나 방향성이 사라진 이 허무한 세계는,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니체는 ‘영원회귀’의 세계를 제안한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팽창과 수축을 무한히 반복하는 세계. 영원회귀는 시작도 끝도 없이 똑같은 것이 그 상태 그대로 영원히 돌아가는 상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이전 우리가 가진 세계관은.영원히 지속하는 시간성을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의 세계관, 영원히 반복하는 시간성을 기반으로 하는 베다와 불교의 세계관, 단절된 시간성을 기반으로 죽음의 순간 모든 것이 단절된다는 과학과 유물론의 세계관,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니체는 여기에서 영원회귀를 제안하며 극단적인 허무주의 세계관을 제안합니다.

 

극단적인 허무를 인정하고 나의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 존재.
“이것이 인생이라면 그래, 한 번 더!”라고 외치며 허무의 깊은 심연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존재.
그가 바로 초인이다.

 

종교와 철학, 과학을 지나 이상과 현실의 접점에 이르다

기독교와 불교를 거쳐 철학의 사유를 지나 과학적인 접근법에 이르면서 저자는 장르를 초월하는 크로스오버를 통해 다양한 세계관들을 살펴봅니다.

 

과학이 진리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학이 자신의 방법론으로써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귀납으로서의 ‘경험’과 연역으로서의 ‘수학’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삶과 죽음의 의미, 이상과 현실의 의미 등을 다루면서 독서를 통해 앎의 지평을 넓혀가는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은 각각의 챕터에서 소개되는 주요 저서들의 개론과 요약이 아닌 그렇게 독서의 분야를 융통성 있게 유기적으로 확장해 가는 그 흐름이었습니다.

 

앞으로 책을 읽을 때에 참고하기에 좋은 독서활동에 대한 접근법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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