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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독일문학 알아보기 :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홍진호

by Caferoman 2022. 5. 6.

독일문학의 고전들을 소개하다 -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홍진호

고전(Classic)의 매력은 무엇일까?

콘텐츠의 빠른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오늘날 활자라는 고전적인 방식의 고전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영화나 TV드라마, 유튜브와 수많은 쇼츠에 비했을 때에 고전들은 오늘날의 소비자(독자)에게 쉽게 다가가기 부담스러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빠르고 재미있고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매체에 익숙해진 우리는 읽고 본 것에 대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빨리, 많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 익숙한데요, 이에 반해 고전은 충분히 곱씹으면서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우리 가운데 생존하고 있는 고전들의 오랜 생명력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책은 독일 문학을 중심으로 수세기 독자들을 사로잡은 고전들을 살펴봅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성찰을 담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인간의 지식이 3단계에 걸쳐, 즉 “종교의 시대–철학의 시대–과학의 시대”를 거쳐 발전하며, 인간에 대한 연구 역시 자연과학적 방법론, 즉 구체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법칙에 도달하는 귀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철학사적 측면에서 실증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유럽 문화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온 인간 이해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을 자연과학적 방법에 따라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 역시 절대적인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현상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우리 내면의 가치를 발견하다

내 책상 위에는 니체의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나는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고, 그를 쉼 없이 몰아친 운명의 냄새를 맡았으며,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토록 가차 없이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뜬금 없이 니체를 언급합니다. 니체 외에는 다른 실재하는 인물의 이름이 이 작품 속에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더 눈에 띄는 부분이라는 점을 저자는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데미안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종교적 세계관과 인간관, 가치체계가 힘을 잃은 시대에,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분명해진 외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 안에서 가치체계의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당신 안에 세계가 있다” 이렇게 시대적 맥락에서 출발하여 『데미안』을 읽으면, 우리는 헤세가 의도한 바를 최소한 큰 틀에서는 대체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데미안의 세계관에 대한 해석은 다소 거창한 감이 있지만 우리가 심오한 철학적인 이해 없이도 이 소설을 통해 감동을 느낄수 있는 이유는 시대를 넘어 젊은 이들이 공감하는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미안』은 구체적인 ‘내면’의 뜻과 무관하게, 삶의 의미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모든 이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데미안』을 읽고 감동하는 시기가 보통 사춘기이자 방황의 시기, 즉 모든 가치를 부정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상실했음에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를 아직 찾지 못한 시기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1774년에 발표된 이 오래된 소설의 독일어 원제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이다. 그리고 이를 한글로 옮기면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된다. 우선 ‘Werther’라는 이름은 실제 발음으로 봐도,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어말의 [r]와 ‘-er[∂r]’는 ‘어’로 적는다”에 따르더라도 ‘베르터’가 맞다. 또 ‘Leiden’은 ‘고통’을 뜻하니 원제의 올바른 번역은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소설의 제목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번역되었을까? 아마도 ‘베르테르’는 외래어 표기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통용되던 일본식 표기 관습에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슬픔’은 영어 번역(“The Sorrows of Young Werther”)을 따른 것 같다. 이 작품은 또 ‘젊은 베르테르의 번뇌’,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 등으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어 번역(“若きウェルテルの悩み”)의 영향으로 보인다.

 

괴테의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경우 그 제목의 번역이 적절하지 못함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헤리포터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 Hermione을 원어 발음인 "헐마이오니"라고 읽지 않고 헤르미온느라고 부르는 것 처럼 본디 베르터로 발음해야 하는 Werther에 대하여 일본식 번역/표기법을 따르다 보니 베르테르로 오용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무튼 제목의 번역과 관계 없이 괴테의 이 소설은 데미안과 마찬가지로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나는, 물론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탓에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뒤로 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그런데 지난 밤 꿈속에서 그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더 강한 사람들이 살아남는 거야.”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증오했다.
-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나, 살아남은 자Ich, der Überlebende」

 

또한 우리가 고전을 접할 때에 그 고전이 쓰여진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요, 위 시 또한 자체만 놓고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싶지만, 이 시가 나치의 집권기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게 된다면 이 또한 달리 읽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시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소설로 남은 것은 무엇보다도 베르터의 이야기가 괴테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정성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정성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에 한 번이라도 휩싸여본 적이 있는 모든 시대, 모든 나라 독자들의 경험과 공명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낸다. 1774년에 쓰인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명작으로 꼽히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짝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진정성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 또한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쓰여진 시대상을 감안하면 왜 그렇게 전개가 빠르지 않고 곱씹어야만 그 의미를 알수 있도록 쓰여졌는지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의 책은 오늘날처럼 쉽게 빌려읽고 또 다른 작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오늘과 달리 매우 비싸고 귀한 상품이었기 때문이죠.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인쇄문화가 발명되고 보급되기 훨씬 전인 18세기에 책은 고가의 문화상품이었다. 종이도 비쌌고, 한 글자 한 글자 수작업으로 활자를 채워 넣은 판을 종이 위에 대고 수작업으로 찍어 넣어 한 쪽씩 인쇄를 해야 했던 시절에 책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불가능한 고가의 미디어였다. 이는 책을 빌려주는 대여도서관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문고판 책이 일반화된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책이 매스미디어로서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더 쉽게 이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너 시간 만에 다 읽고 책꽂이에 치워두게 되는 책은 가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고작 서너 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책은 너무 비싼 상품이었다. 따라서 당대의 문학은 한 문장, 한 문장 다시 음미해서 읽을 수 있을 만큼 언어적 아름다움과 내용적 깊이를 갖춘 것이어야만 했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였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의 마지막 장면은 짝사랑에 고통스러워 하던 주인공이 끝내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장면으로, 이 장면을 통해 "과연 인간다운 연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한 개인이 죽었을 때 함께 슬퍼해주는 것은 아이들의 심성이지 종교는 그렇지 않음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늙은 정무 집행관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베르터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뒤를 이어 곧 그의 큰 아이들이 걸어서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드러내며 침대 옆에 쓰러져, 베르터의 손과 입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베르터가 항상 가장 사랑했던 맏아들은 베르터가 죽고 사람들이 억지로 떼어놓을 때까지 그의 입술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베르터는 낮 12시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 일꾼들이 유해를 운반했습니다. 성직자는 한 명도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와 괴테 외에도 이 책에서는 카프카와 호프만스탈의 작품들을 다루면서 독일어 문학들을 다루면서 우리에게 고전 읽는 재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가가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빠져들면 오랜 새월 사랑받은 분명한 이유가 있는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는 고전들을 이 책과 함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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