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중요해 보이는 것을 남과 소통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관점을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을 때 느낀다.” - 칼 융
외롭고 고립된 사람일수록 극우주의자가 된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대다수는 우리는 각자가 소외되고 원자화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고립된 사람들이 어떻게 극단적인 극우주의와 포퓰리즘에 쉽게 빠지는지 그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소외된 사람과 극우주의자 간의 상관 간계는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조사 결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2016년 미국 선거와 민주주의 연구 센터는 미국인 3,000명에게 육아, 금전적 지원, 관계에 대한 조언, 차 얻어 타기 등 다양한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가장 의지하느냐고 질문했다. ...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에게 투표한 유권자에 비해 이웃이나 공동체, 친구를 언급하지 않고 ‘그냥 스스로 해결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층은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더 적다고 응답하거나 일주일간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짧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15년간 17개 유럽 국가의 6만 명을 관찰한 연구 결과에서도 자원 활동가 집단이나 마을조합 등 ‘시민 모임’의 회원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낮았다.
이 결과를 통해 저자는 더 넓은 공동체에 얽혀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 비해 고립되고 소외된 쪽이(그렇다고 느끼는 쪽이) 우파 포퓰리스트가 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소외와 극우주의자 사이의 인과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우리가 지역 모임에 가입하고, 봉사 활동을 하고, 공동체를 이끌거나 단순히 참여하고, 친목을 다지는 과정에서 포용적 민주주의를 연습할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우리는 단지 함께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적절히 조율하고 조화시킬 방법을 배운다. 반대로 우리는 사회적으로 덜 연결되어 있을수록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차이를 적절히 조율하고 서로를 시민답게 협력적으로 대하는 연습이 부족해지며, 동료 시민을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고, 그 결과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형태의 공동체에 매력을 느낀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타자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를 통해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집회에서 수천 명이 찬송가를 부르듯 외치는 말 ‘벽을 세우자’는 구호 역시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전략적인 인종적·종교적·민족적 배제라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이 극우주의자들의 포퓰리즘이 무서운 점이라고 지적합니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외롭고 버려진 느낌을 받는 사람을 모아 민족이나 인종에 기반한 공동체를 조성하면서 종족주의를 무기화하고 타자를 적으로 만든다. 미코 살멜라Mikko Salmela 교수와 크리스티안 폰 셰베Christian von Scheve 교수는 배제되고 뒤처지고 외로운 사람들, 남과의 차이를 조율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며 전통적인 정체성의 원천(계급, 일자리, 교회)이 전보다 약하거나 불안정해진 사람들에게 “국적, 민족, 언어, 젠더 같은 사회적 정체성이 삶의 의미나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한층 더 매력적인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알아챈 것이라고 썼다.
노숙자를 위한 벤치는 없다 : 포용을 상실한 시대
가나 아크라에서는 다리 밑에 커다란 바위들을 가져다 놓아 노숙자가 쉬지 못하게 했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노숙자가 쉬는 평지에 매끈한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했다. 나중에 시애틀 시정부는 이 조치가 자전거 이용자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노숙 행위를 막으려는 비상 대응의 일환”으로 “해당 구역이 다시 야영지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인정했다.6 노숙 인구가 2004년 이래 3배로 늘어난 홍콩에서는 노숙자나 부랑자를 쫓아내기 위해 공공장소에 앉을 만한 자리를 의도적으로 거의 만들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사악한 사례는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성모마리아 대성당에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성당 입구에서 자고 있던 노숙자들에게 물을 뿌린 굉장히 비기독교적인 행동일 것이다(당연히 대중의 거센 반발을 낳았다).
'공동체가 다양성을 띨수록 구성원이 서로를 덜 신뢰한다' 사회학의 미신과는 달리 공동체에 속한 작은 집단들 간의 교류가 없을 때는 구성원들 간의 신뢰도도 크게 저하되며 인종적으로 다양한 집단이 서로 자주 접촉하는 경우 사회의 응집력은 더욱 강화되었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저자는 사회의 구성원의 다양성보다 면대면 상호작용이 구성원들간의 신뢰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의 일상적인 면대면 상호작용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 잘 보게 만든다. 이 외로운 세기에 덜 외로우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이 접촉해야 한다.
그렇기에 코로나라는 팬데믹에 처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갑작스럽지만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닌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더더욱 공동체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공포가 장기적으로 도시의 형태를 결정해선 안 되며, 우리 시대의 질병에 대한 대가를 미래 세대가 치러서도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외로운 세계를 구축했을지 모르지만, 서로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의무를 다시 설정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기회가 우리에게 있다. 그 심장부에는 포용과 공동체가 자리해야 한다.
스마트폰에 갇혀버린 세대
미국 아이비리그에서는 면대면 대화가 불가능한 학생들을 위해 ‘표정 읽는 방법’이라는 수업을 개설했다. 하루 221번, 1년에 1,200시간 스마트폰에 연결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오히려 파국을 향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 221번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매일 평균 3시간 15분, 1년에 거의 1,200시간을 스마트폰을 바라보는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성인의 3분의 1이 아침에 눈을 뜬 지 5분 이내로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한밤중에 깼을 때도 5분 안에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우리의 모습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경고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페이스북·스냅챗·인스타그램 사용량을 플랫폼당 하루 10분으로 제한한 결과 외로움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후속 연구들의 표준이 된 또 다른 연구는 두 달간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수행되었다. 이 연구에서 참가자 절반은 페이스북을 평소처럼 사용했고 나머지 절반(소위 ‘치료’ 집단)은 페이스북 계정을 전부 비활성화했다. 연구 결과 페이스북 계정을 비활성화한 집단은 전에 페이스북에 쓰던 시간을 다른 웹사이트에서 쓰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인터넷 자체를 덜 사용했고 친구나 가족을 직접 만나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행복감은 더 크게, 삶에 대한 만족감도 더 크게, 불안감은 더 적게, 그리고 외로움은 그리 현저하게는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도로 더 적게 느낀다고 응답했다. 주관적 웰빙을 증진시키는 문제에 관해서라면, 페이스북 삭제는 심리치료를 받는 것과 최고 40%까지 동일한 효과가 있었다.
FOMO(Fear Of Missing Out) 그리고 BOMP(A Belief that Others are More Popular(남들이 더 인기 있다는 믿음)
소셜 미디어는 우리를 ‘좋아요’, ‘팔로’ 등 온라인에서의 사회적 인정을 맹렬히 좇는 불안한 장사꾼으로 만든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가 우리에게 장려하는 또 다른 행동이 있으니 온라인에서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이번 주말 내내 잠옷 차림으로 <프렌즈>를 보면서 호브노브스 비스킷을 열 통이나 먹었다”라고 쓰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우리 삶에서 자랑스럽고 빛나는 장면, 행복한 순간, 파티, 축하, 하얀 백사장,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푸드 포르노따위를 잘 큐레이션해 온라인에 공유한다. 문제는 이렇게 포토샵으로 꾸며지고 필터링된 우리 자신은 우리의 진정한 자아와 근본적으로 단절되어 있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나는 누구일까?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항상 행복하고 사교적이며 성공한 그 사람이 나일까, 아니면 때로는 실패하고 주저하고 자신 없는 누군가가 나일까? 내 친구들이 ‘가짜 나’를 더 좋아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우리의 소셜 미디어 인생을 신중하게 큐레이션하면 할수록 프로필 뒤에 가려진 ‘진짜’ 나를 아무도 모르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낄 위험성은 그만큼 커진다. 이것은 고립감이고 단절감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은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상징과도 같은 코로나 시기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인간성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단지 "이 모든게 (일시적인) 코로나 때문이야"라고 치부할 수 없는 군중 속의 소외와 고립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다보니 Next의 노래 증오의 제국이 떠올랐습니다.
빈곤과 절망이 결혼을 하매
그들 사이에 증오를 낳으사
그가 뿜어대는 독한 연기 속에
편견이 분열의 춤을 추도다
- N.EX.T 666 Trilogy Part I : 증오의 제국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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