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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개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 한 때 참신하고 기발했던 작가의 베스트셀러

by Caferoman 2021. 9. 27.

개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 개미

세계의 끝을 정복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끈질기게 조금씩 나아가는 이 정책은 개미들의 일반적인 철학, 즉 〈천천히 그러나 항상 앞으로〉에 딱 들어맞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인간에 버금가는 집단지성과 문명을 이룩해낸 개미사회를 빗대어 인간 문명을 빗대어 보는 소설로, 기존 인간이 가지고 있던 공동체와 사회화의 개념을 뒤집어 보는 참신한 발상의 작품입니다. 덕분에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고, 특히 한국에서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게 됩니다.

(다만 그 이후로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는지 전작의 아성을 넘는 것이 무리였는지 사골장인처럼 진부한 자기복제를 보여주는 모습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요.)

 

창세기 개미 문명은 어떻게 건설되었을까? 그것을 이해하자면, 수억 년 전 지구 위에 생명이 처음으로 출현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구 최초의 거주자들 중에 곤충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세계에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작고 연약한 그들은 모든 포식자(捕食者)들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이였던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곤충들은 메뚜기처럼 번식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알을 아주 많이 낳아서 그것들 중에 꼭 살아남는 자가 생기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어떤 곤충들은 말벌이나 꿀벌처럼 독을 선택했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그들은 독침을 갖추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무서운 존재로 만들어 갔다. 어떤 곤충들은 바퀴벌레처럼 포식자들이 먹기에 부적합하게 되어 가는 쪽을 선택했다. ...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초기의 정글에서는 많은 곤충들이 살아남기 위한 〈비결〉을 찾아내지 못한 채 소멸할 운명을 맞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불리한 처지에 놓인 곤충들〉 중에서 가장 먼저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흰개미이다. 땅거죽 위에 모습을 드러낸 지 1억 5천만 년 가까이 된 곤충으로서 나무를 쏠아 먹고 사는 이 종은 불운하게도 종의 영속성을 유지할 만한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 포식자는 너무나 많은데, 그들에게 저항하기 위한 천연적인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흰개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흰개미들이 죽어 갔고, 살아남은 자들은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리다가 하나의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부터는 혼자 싸우지 말고 똘똘 뭉쳐 집단을 만들자. ... 그 방법은 가장 확실한 생존 방법의 하나였다. 이 곤충은 작은 세포들이 모인 것처럼 살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족 단위의 사회를 이루었다. 알을 낳는 어머니 흰개미 주위에 모두가 모여 살았다. 그러다가 가족이 촌락이 되고 촌락이 커져 도시가 되었다. 모래와 흙 반죽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도시가 곧 지구의 모든 표면에 솟아오르게 되었다. 흰개미는 영리한 곤충으로 최초의 사회를 형성한 우리 행성 최초의 주인이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인간과, 개미라고 생각하는 개미와의 만남, 이 소설은 두 문명의 조우와 충돌로 인해 확장되어 갑니다..

 

참신한 하지만 갈수록 진부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 소설은 크게 인간의 관점, 개미의 관점, 그리고 에드몽 웰즈 박사의 백과사전에 대한 기술 이렇게 3가지의 관점에서 병렬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지하실에 들어갔다가 행방불명된 인간들과 그 사건을 파해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이야기와 병정개미 출신인 어느 불개미의 관점에서 바라본 개미 문명의 이야기, 그리고 시시때때로 뜬금없이 등장하는 백과사전의 내용이 번갈아 가며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향해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사회성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미는 사회성을 타고난다. 새끼 개미는 너무 약해서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고치를 혼자서 깨뜨릴 수가 없다. 사람의 아기도 혼자서 걷거나 영양을 섭취할 수 없다.개미와 인간은 둘 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종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혼자서 터득할 줄도 모르고 터득할 수도 없다. 어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약점이다. 그러나 그 의존성이 또 다른 진화를 가져온다. 지식 추구가 그것이다. 어린 개체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터에, 생존 능력을 지닌 성숙한 개체들이 곁에 있으니, 어린 개체들이 처음부터 성숙한 개체들에게서 지식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개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지식을 말하는 이 백과사전은 처음에는 이색적인 또다른 문명(개미)에 흥미를 더하는데에 감초같은 역할을 합니다. 적어도 이 개미 3부작에서는요.

 

개미는 지구 상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문명을 이루고 있습니다. 에드몽 삼촌은 말하자면 콜럼버스 같은 분입니다. 우리의 발가락 사이에서 신대륙을 발견한 거죠.

 

이 소설이 던지는 첫번째 질문 : 과연 인간문명은 다른 종보다 우월한가?

이따금 어떤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모래 도시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혹시 이게 우리의 도시는 아닐까? 혹시 우리는 어떤 어항 안에 갇혀 있고 다른 거대한 존재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무대 장치를 만들어 아담과 이브를 넣어 놓고, 실험용 흰쥐를 관찰하듯 〈구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은, 단지 갇혀 있던 어항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노아의 대홍수라는 것도 기껏해야 신이 조심성이 없거나 호기심이 많아서 그저 물 한 컵 쏟은 걸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시겠지요? 글쎄요……. 개미집과 우리가 사는 지구가 차이가 있다면, 개미들은 유리벽 안에 갇혀 있고 우리는 물리적인 힘, 즉 지구의 인력에 의해 갇혀 있다는 점뿐입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오래된 영화라 기억하는 분이 있으실까 싶긴 하지만 SF 코미디 액션 물이었던 맨인블랙(Man In Black)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계속해서 줌아웃 하더니 결국 그 우주는 하나의 작은 구슬에 불과했고 어느 외계인이 그 구슬을 가지고 구슬치기를 하다가 가지고 놀던 구슬을 다른 수많은 구슬(우주)이 담긴 주머니에 담는 장면으로 끝이나는데요. 소설 속 개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세상의 끝에 대한 관념이 인간에 비해 제한적인 모습들을 보며 느끼는 인간의 감상처럼 인간의 인식범위를 벗어난 세상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가 존재하지 않을까?(그것이 신이든 외계인이든) 라는 질문을 이 소설은 던지고 있습니다.

 

56호가 기다린다. 몸 안에 들어 있는 도시가 시나브로 깨어나고 있다. 그 도시의 이름을 무어라 지을까? 우선 여왕의 이름을 지어야 한다. 개미 세계에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자율적인 실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개미, 병정개미, 생식 개미는 출생의 순서에 따라 붙여지는 숫자로 이름을 대신한다. 그러나 알 낳은 여왕개미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서 의식(意識)이 끝납니다. 무의식 안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5권으로 나뉘어진 이 소설의 첫번째에서는 그렇게 비슷한듯 다르게 각자의 문명을 이루어 낸 인간문명과 개미문명을 각각 살펴봅니다. 과연 이 두 문명이 충돌하게 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라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며 소설은 2권을 향해 갑니다.

 

개미 《〈사랑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인간 「우리가 같은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게 아마 사랑한다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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