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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크레스(Cress) , 마리사 마이어 : 사실 라푼젤은 천재 해커였다.

by Caferoman 2022. 1. 1.

동화 라푼젤을 모티브로 한 SF 소설 크레스

독서노트

오래 전의 일이다. 태어나기도 전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레바나가 왕위를 찬탈하기 전, 채너리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얼랜드의 딸인 크레센트 문이 살해당하기 전이었고, 셀린 공주가 지구로 빼돌려지기 전이었다.

    

크레스, 원작 라푼젤을 SF버전으로 재구성하다.

사실 모든 패러디물, 재구성물이 그렇듯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그 원작이 되는 이야기(소설)의 내용을 잘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아이가 없는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임신한 아내가 양배추(독일어로 라푼젤)가 먹고 싶다고 했고 상추를 구할 수 없었던 남편은 옆집의 텃밭에서 양배추를 훔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상추를 훔치다가 집주인인 마녀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마녀는 양배추가 필요하다면 앞으로 계속 가져가도 좋지만 그 대가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자기에게 넘기라고 거래를 제안합니다. 이에 남편은 별생각 없이 약속을 하였습니다. 결국 부부 사이에서 예쁜 딸을 얻게 되었는데, 아내가 먹었던 채소의 이름을 따 이름을 라푼젤이라 지었습니다. 하지만 곧 마녀가 찾아와 약속대로 라푼젤을 데려가버리고 마녀는 라푼젤을 입구도 계단도 없는 높은 탑에 가두어 버립니다.

시간이 흘러 라푼젤은 아름답게 자랐고, 한 번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기 때문에 길고 아름다운 장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왕국의 왕자가 탑 아래를 지나치다 라푼젤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입구도 계단도 없는 탑이었기에 올라갈 방법이 없었으나 마녀가 라푼젤의 긴 머리를 잡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똑같은 방법으로 탑에 올라가 라푼젤을 만나게 됩니다.

왕자가 왔던 사실을 알아챈 마녀는 라푼젤의 머리를 잘라 쫓아내 버리고 마녀는 이후 자신이 잘라낸 라푼젤의 머리로 왕자를 유인한 후 높은 곳에서 그를 떨어뜨립니다. 왕자는 가시덩굴에 떨어져 눈이 멀게 되지만 라푼젤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고 라푼젤이 왕자의 모습을 보고 흘린 눈물이 왕자의 눈에 떨어지면서 시력을 되찾습니다.

 

(그림형제의 동화 기준)원작의 이야기에서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몇 가지 있습니다.

  • 부모에게서 마녀가 빼앗아 온 소녀
  • 입구가 없는 탑에 라푼젤을 가둔 것
  • 어느날 왕자가 그녀를 찾아오고 머리카락을 통해 그녀와 만나는 점
  • 라푼젤을 구하려다(만나려다) 마녀의 술수에 의해 눈이 먼 왕자
  • 라푼젤의 정성에 의해 시력을 되찾는 왕자

정도가 있는데요, 이러한 포인트들을 잘 살려서 SF 버전으로 재구성한 이야기가 바로 "크레스(Cress)"이기 때문입니다.

 

“마취총 화살. 메모해두겠다. 그리고 내가 카운트다운 시계도 만들어놨다. 도움이 되길 바란다. 황실 결혼식까지 앞으로 15일 하고도 아홉 시간 남았다.”

 

라푼젤을 모티브로 쓰여진 루나 크로니클 세 번째 작품 크레스는 전염병에 대한 백신을 볼모로 황태자 카이토와 루나 제국의 여왕 레바나의 결혼을 강행하게 되고 그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주인공들의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긴박함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됩니다.

 

인공위성에 갖힌 천재 해커 소녀, 그녀를 구하러 온 바람둥이 탈주범

“인공위성에 있다고?” 카스웰이 물었다. “네, 열여섯 시간 공전 주기의 극궤도 위성에요.” “얼마나 오래 인공위성에서 살았던 거야?” 크레스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7년 정도……?” “뭐? 7년? 너 혼자서?” “어, 네. 마님이 음식이랑 물을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네트워크에도 접속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심심하진 않아요. 하지만, 음…….” 카스웰이 크레스 대신 말을 맺었다. “하지만 죄수 신세잖아.”

“곤경에 빠진 숙녀라고 불러주는 쪽이 더 좋아요.”
“좋아, 곤경에 빠진 아가씨. 그리로 갈 테니 좌표를 보내줘.”

 

이 소설에서 신더 드림팀에 가장 처음 합류한 남성인 카스웰이 바로 크레스를 구하는 백마 탄 왕자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물론 크레스를 구하러 가는 경위가 단순히 크레스에게 반했거나 호감에서 시작한 구출작전은 아니지만 이 둘은 동고동락을 통해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비련, 비극, 사랑. 결론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자유보다도, 숙명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제2시대 노래에 흔히 나오는 ‘진정한 사랑’. 영혼을 충만히 채우고, 극적인 몸짓을 자아내고, 희생을 요구하고, 저항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

"아, 그러네요. 치료를 해야, 어……." 그러고 보니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키스하면 되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느 이야기에서건 긴박한 죽음의 위기를 함께 넘긴 두 사람은 늘 키스를 하지 않던가? 물론 그런 걸 제안이랍시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으니 솔직히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에게 몸을 기대고, 그의 셔츠에 코를 파묻고 깊이 숨을 들이쉬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상한 여자애로 취급받겠지. 아니면 크레스가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는 걸 들켜버릴지도 모른다. 카스웰은 친구들과 떨어지고 부상까지 당한 채 조난당해 부서진 인공위성 안에 있는데, 그런 상황이 크레스에게는 평생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라니.

   

벌어지는 게 아니라, 벌일 거예요. 그리고 끝낼 거고요.

“음…… 공주는 화재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출됐잖아요. 몸이 불타서 많이 망가졌어요. 손이랑 발도 일부 없어졌고, 피부도 녹아버려서 이식해야 했고…… 그래서…… 상태가 온전하지 못해요.”

카이토가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뜻입니까? 공주가 혼수상태인가요?” “한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정신을 차렸어요. 하지만…… 사이보그예요.” 신더는 카이토의 반응을 각오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카이토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신더를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시선을 주변으로 미끄러뜨릴 뿐이었다. “그렇군요.” 카이토가 천천히 신더의 눈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거죠?” 그 질문에 허를 찔린 신더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럼요. 아주 잘 지내죠. 음, 전 세계의 절반은 그분을 죽이려 하고 또 절반은 그분을 루나의 왕좌에 올려버리려고 애쓰고 있긴 하지만, 뭐 괜찮아요. 공주님은 그런 상황이 딱 맘에 든대요. 그래서 자긴 무진장 행복하대요.” 카이토는 신더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뭐라고요?” 신더는 눈을 질끈 감고 마음속에서 치미는 공포를 억눌렀다. 그리고 두 손을 쫙 펼치고서 우물쭈물 눈을 떴다. 신더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카이토를 마주 보고 입을 열었다. “카이토, 저예요. 제가 셀린 공주예요.”

 

원작에서는 왕자가 라푼젤과 약속한 탈출에 실패하고 탑에서 추락하면서 눈이 머는 장면이 이야기의 절정이지만 "크레스"에서는 그 탈출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이 "크레스"의 특징인데요, 인공위성에서 지구로 추락하고, 카스웰의 눈이 멀고,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조난되면서부터 함께하는 크레스와 카스웰의 여정은 우리가 듣지 못했던 라푼젤의 그 뒷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 합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 속 주인공인 신더(신데렐라), 스칼렛(빨간망토) 그리고 크레스(라푼젤)은 이제 한 팀이 되어 네 번째 여주인공인 윈터(백설공주)에게 그리고 그들의 공동의 적인 여왕 레바나를 향해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며 이야기는 윈터(Winter)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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