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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신더(Cinder) , 마리사 마이어 : SF장르로 재해석된 신데렐라 이야기

by Caferoman 2022. 1. 4.

독서노트

신더 (Cinder) - 마리사 마이어

“기계는 때리면 고쳐지기도 하거든요. 얼마나 잘 먹히는지 알면 놀라실걸요.”
황태자가 어색하게 키득 웃었다.
“린 신더 씨 맞긴 한 거죠? 수리공 아가씨?”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시작 신더(Cinder)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한 SF소설입니다.
신더(Cinder) > 스칼렛(Scarlet) > 크레스(Cress) > 윈터(Winter) > 레바나(Levana)
로 이어지는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시작으로 '사이보그 신데렐라? 참신하네'라며 가볍게 시작했다가 어느새 윈터를 넘어 모든 시리즈를 완독하게 된 저를 보게 됩니다.
(위의 시리즈는 각각 신데렐라 , 빨간모자 , 라푼젤 , 백설공주 를 상징합니다. 레바나는 백설공주의 계모(?)이구요.)

  • 신더(Cinder) - 신데렐라 (Cinderella)
  • 스칼렛(Scarlet) - 빨간 망토 (Le Petit Chaperon rouge / Red Riding Hood)
  • 크레스(Cress) - 라푼젤 (Rapunzel)
  • 윈터(Winter) - 백설공주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게다가, 황태자님이 무도회에서 신붓감을 찾는다는 소문 쪽이 다른 소문들보다 훨씬 낫다고.”
“다른 소문들은 뭔데? 황태자가 사실은 화성인이었다? 아, 아니다. 시녀 안드로이드랑 사고를 쳐서 사생아를 가졌대지? 맞지?”
“시녀 안드로이드가 임신도 할 수 있어?”
“아니.” 피어니가 씩씩거리자 눈썹에 드리워진 곱슬머리 한 가닥이 흩날렸다.
“그것보다 더 나쁜 소문이야. 황태자님이…….” 피어니가 거친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레바나 여왕이랑 결혼한다잖아.”
“레바…….” 신더는 우뚝 멈춰 서서 장갑 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혹여라도 쓰레기 더미 뒤에서 누군가 숨어서 듣지는 않았나 휘휘 둘러보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피어니. 정말이지, 너 그 타블로이드 신문들 계속 읽다간 뇌가 썩을 거야.”

신더의 발목에 박힌 나사는 녹슬었다.

재능이라고는 미련한 부지런함과 작은 발, 그리고 황태자에게 먹히는 외모가 전부였던 전통적인 신데렐라와는 달리 마리사 마이어가 재창조한 신더는 걸크러시 사이보그 만능 수리공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그가 가진 먼치킨스러운 능력이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이 정도만 언급했습니다.)
그런 SF판 신데렐라가 동료 빨간망토와 라푼젤과 함께 백설공주를 찾아가 세상을 구하는 기상천외한 스토리의 소설입니다.

아름다운 장갑이었다. 평생 가져본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오랜 세월 정비공으로 일해온 신더는, 기름때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설정이 PC(Political Correctness)를 고려한 듯한 설정으로 보입니다.
사이보그 미소녀 신더를 사랑하는 카이토 왕자님은 신베이징에 사는 동방연합출신이고
백설공주는 정신착란 증상이 있는 유색인종이며
루나인으로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크레스는 천채 헤커로 등장합니다.

SF철학 : 사이보그에서 바라본 인간의 정체성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황태자 앞에서 또 쩔쩔매다가 뇌의 네트워크 연결이 끊어져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사이보그로 등장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통해 저자는 단순히 패러디의 수준을 넘어서 인류와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에서의 인간성과 그 정체성에 대한 고찰들을 가볍지 않게 다룹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판단이 맞는지도 모른다.
일반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 사이보그로서의 의무일 수도 있다.
수명을 무리하게 연장한 자들부터 실험에 활용하는 게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SF철학에서 주로 논의되는 '로봇과 인공지능과 구분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의 오묘한 경계선상에 있는 사이보그 소녀를 시작으로 루나 크로니클은 흥미진진하게 참신한 동료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여왕이 내 딸을 죽였습니다.” 저 말은 사실이었다. 신더는 움찔 물러났다.
“무엇보다 끔찍한 점은, 나조차도 그 애가 내 딸이 아니었더라면 당연히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는 겁니다.”
“네? 왜요?”
“껍데기였으니까요.”
박사는 책상에서 모자를 집어 들고는 괜히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박사의 손이 모자의 헤링본 무늬를 이리저리 훑었다.
“옛날에는 저도 껍데기들이 위험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법에 찬성했지요. 껍데기의 생존권이 허락되면 사회가 무너질 거라고. 하지만 내 딸은…….” 박사가 비죽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갓 태어난 딸을 데리고 지구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나보다도 더 여왕에게 충성스러웠던 사람이라……. 그래서 초승달같이 작고 예쁘던 그 애는 끌려가고 말았지요. 다른 껍데기들과 마찬가지로.”
박사가 모자를 다시 쓰고 신더를 바라보았다. 신더 역시 의자에 돌아와서 앉았다.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신더 씨 또래였을 겁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지구인과 루나인(달나라 사람들)의 대조를 통해 상대적으로 보여지는 환영에 취약한 인간의 이성을 조명하면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까요?
무튼 다소 허무맹랑할 수 있는 현대판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독자들을 흥분시킨 루나 크로니클이 시작됩니다.

함께하면 좋은 것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루나 크로니클에서 등장하는 5명의 여주인공은 모두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옛날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마리사 마이어에 의해서 재창조된 인물입니다. 어찌보면 패러디 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패러디 물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원작을 제대로 읽어보는 것이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을거라고 모두들 생각하지만 의외로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고 있는 동화들.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림형제의 동화전집 - 그림 형제에 의해 수집된 아이들과 가정의 민화』 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물론 『신더(Cinder)』의 뒤를 잇는 루나 크로니클의 두번째 작품 『스칼렛(Scarlet)』은 굳이 제가 추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펼쳐보지 않을까 싶어 따로 추천을 드리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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