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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겐지스 강에서 발견한 예수 : 깊은 강, 엔도 슈사쿠

by Caferoman 2022. 3. 17.

<침묵> 과 함께 엔도 슈사쿠의 임종을 함께한 책 : <깊은 강>

저자 약력 : 엔도 슈사쿠의 임종을 함께한 두 권의 저서 <침묵>, 그리고 <깊은 강>

엔도 슈사쿠는 1923년 도쿄 출생으로, 11세에 이모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955년에 발표한 "백인(白い人)"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였으며 1957년 발표한 《바다와 독약(海と毒薬)"으로 문학가로서 자리를 굳힌 일본을 대표하는 문인입니다.
한동안 "바다와 독약" 이상의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가 1966년 발표한 "침묵(沈黙)"은 그에게 다니자키 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오랫동안 신학적 주제가 되어 온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라는 문제를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을 배경으로 그려낸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1993년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완성한 저자의 마지막 장편소설 <깊은 강>은 갠지스 강을 무대로 사랑과 영혼의 구제를 소재로 하여, 신은 인간 내면에 살아 숨 쉬며,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1996년 9월 29일 사망하는데 생전의 유언대로 가장 아낀 작품 《침묵》과 《깊은 강》이 관 속에 넣어졌습니다.

 

책의 줄거리 :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네 여행객의 이야기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네 사람이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만난다.
이소베는 평범하게 살아온 가장이었다. 그러다 암 선고를 받은 아내가 투병 끝에 숨을 거두면서 꼭 다시 태어날 테니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긴다. 동화 작가인 누마다는 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맞았을 때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 준 구관조를 잊지 못한다.
기구치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얀마에서, 죽은 동료의 인육까지 먹어야 했던 처참한 상황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이소베의 죽어 가는 아내를 간호했던 미스코는 대학 시절 가톨릭 신자인 오쓰를 그저 장난으로 유혹했다가 버린 기억이 있다. 그녀는 신부가 된 오쓰가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네 사람은 저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 인도로 간 것이다.
불가촉천민부터 수상이었던 인디라 간디까지, 신분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품어 안는 갠지스 강과 그곳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이들은 강한 인상을 받는다.
- 민음사 깊은 강 책 소개 중

 

2020년 2월 19일 바라나시에서

이 소설의 배경이기도 한 겐지스 강의 풍경은 2020년 코로나가 발발하기 직전에 다녀온 마지막 해외여행지인 인도 바라나시에서 바라본 풍경이 연상되면서 오래된 소설임에도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바라나시에서 바라보았던 겐지스강은 단순 잘 꾸며진 강변도시를 넘어서는 세월의 무게와 압도하는 인간의 짧은 인생을 넘어서는 어떤 아우라가 있었거든요.

 

그녀는 인도에서 무얼 보고 싶은 건지, 실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선과 악, 잔혹함, 사랑이 혼재된 여신들의 모습을 자신과 겹쳐 보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또 한 가지, 그녀에게는 찾고 싶은 게 있었다.

 

저자는 (미스코가 대학시절 유혹했던) 한 가톨릭 신자 청년의 오쓰를 통해, 그리고 겐지스강에서는 신부가 되어 있는 그의 시선을 통해 저자는 갠지스강에서 보이는 신앙과 신의 자비를 그려냅니다.

 

오쓰의 얼굴은 귀까지 발개졌다. 필시 그는 술을 마시면 힘들어지는 체질인 게 분명했다. 미쓰코는 신도들에게 후미에를 밟도록 강요한 기리시탄 시대의 관리 이야기를 문득 떠올렸다. 한 인간에게서 그가 믿는 신을 버리도록 만들었을 때, 그 관리는 어떤 쾌감을 맛보았을까.

 

미스코가 대학시절 오쓰를 유혹하는 위 장면에서는 이전에 쓰여진 저자의 대표작 <침묵>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에서의 그리스도교 박해와 그리스도 성상을 밟고 가도록 강요했던 사건들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당신한테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인간에게 버림받은 그 사람의 고뇌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오라, 하는 목소리를. 오라, 나는 너와 다름없이 버림 받았도다. 그러니 나만은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 하는 목소리를."
"근데 그 신이라는 말 좀 그만 할래요. 짜증이 나고 실감도 안 나요. 나한텐 실체가 없단 말예요. 대학 때부터 외국인 신부들이 쓰던 그 신이라는 단어와는 인연이 멀었어요."
"미안합니다. 그 단어가 싫다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도 상관없습니다. 토마토이건 양파건 다 좋습니다."
"그럼, 당신에게 양파란 뭔가요?" ...
"신은 존재라기보다 손길입니다. 양파는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

 

신부가 된 오쓰와 미스코와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표현이 나오는데요, 바로 "신"이라는 표현이 거북하다면 그냥 "양파"로 바꿔 불러도 좋다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신을 양파로 비유하는 부분은 저자가 신이라는 존재를 소개하는 상징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すみません。その言葉が嫌いなら、他の名に変えてもいいんです。トマトでもいい、玉ねぎでもいい。
じゃ、あなたにとって、玉ねぎって何。 ...
神は存在というより、働きです。玉ねぎは愛の働く塊りなんです。

 

인도 갠지스 강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에서 기독교의 사랑을 묘사하는 과정은 꽤나 신선합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 강가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비치어지는 듯합니다.

 

2020년 2월 18일 바라나시에서

 

"이 세상의 중심은 사랑이며, 양파는 오랜 역사 속에서 그것만을 우리 인간에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세계 속에서 가장 결여된 것은 사랑이며, 아무도 믿지 않는 게 사랑이고, 비웃음 당하고 있는 게 사랑이므로, 하다못해 저라도 양파의 뒤를 우직하게 따라가고 싶습니다.

 

미스코와 오쓰의 이야기 외에도 다른 주인공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지만 저는 이 둘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게 와닿았습니다.

 

"갠지스 강을 볼 때마다 저는 양파를 생각합니다. 갠지스 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한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아무리 추한 인간도 아무리 지저분한 인간도 모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흘러갑니다."

 

2020년 2월 18일 인도 바라나시에서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수녀의 눈에 놀라움이 번지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그것밖에...... 이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게 없는걸요. 저희들은"
그것밖에 라고 한 건지, 그 사람 밖에라고 말한 건지, 미쓰코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 사람이라고 말한 거라면, 그건 바로 오쓰의 '양파'이다. 양파는 까마득한 옛날 죽었지만, 그는 다른 인간 안에 환생했다. 20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에도 지금의 수녀들 안에 환생했고, 오쓰 안에 환생했다. 들것으로 병원에 실려 간 그처럼 수녀들도 인간의 강 속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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