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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치사회

추미애의 깃발 : 조국의 시간에서 이어지는 검찰개혁 3부작

by Caferoman 2021. 9. 17.

독서 노트

가장 어려운 시기, 가장 어두운 시기에 들었던 촛불이 과거의 어둠을 밝혀 오늘의 길을 냈다면,
이제 촛불은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의 준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촛불시민이 꿈꾼 정의로운 나라는 진실이 힘을 가지는 나라일 것입니다.
촛불시민이 바라는 자유도 진실의, 진실을 위한, 진실에 의한 자유여야 하는 것입니다.

촛불시민이 꿈꾼 정의로운 나라

저자인 추미애와 김민웅의 대화를 통해 구성된 이 책은 도입부 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시작한 촛불혁명을 언급하며, 그 촛불정신은 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대한민국이 걸어온 민주주의 역사가 증명하는 위대한 시민정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촛불의 힘은 누가 기획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더 위력적입니다. 이 성과를 부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열등감·열패감을 느끼게 하며 지치게 하는 작전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날카롭게 경계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들었던 촛불마저도 회의하게 하는 대중 세뇌작전이 틈을 타고 스며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김민웅 그렇게 끊임없이 좌절시켜서 역사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전략을 쓰는 거지요. 대동사회를 꿈꾸는 공동체적 연대를 무너뜨리겠다는 겁니다. 한나 아렌트 하면 대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떠올리잖아요. 사유하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조차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경고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렌트는 무엇보다도 파시즘의 전략을 날카롭게 정리한 정치사상가입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아렌트는 ‘반유대주의’를 거론합니다. 반유대주의의 본질은 누군가를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어서 고립시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뭉치는 대동의 연결고리를 끊어서 하나하나 개별적인 원자처럼 만들어 무력화하는 겁니다.  


또한 책의 상당부분을 저자는 법무부장관 부임 당시 하극상을 보이던 윤석열과 정치검찰에 비중을 두어 다루고 있습니다. 진정한 개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과한 권력이 집중된 검찰조직의 개혁이 불가피하며 이를 법조계에 몸 담고있는 저자와 전임 장관 조국 모두 각자의 저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촛불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겠어요? 군사독재로 성장한 세력과 그 후예들에게 촛불시민은 단지 진압대상이었습니다. 수백만이 나와 있으니 겉으로는 강하게 보여도 총칼 앞에는 연약하다고 본 거지요. 역사에서는 저항이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을 때가 많았어요. 졌다면 거기에 몰아칠 광풍은 상상을 초월했을 겁니다. 촛불혁명은 그가 누구든 어떤 정치인의 이해타산의 대상이거나 거래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에요. 촛불혁명은 21세기 우리 정치사의 깃발입니다.

역사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촛불혁명이 실패로 끝났다면, 박근혜가 원하던대로 계엄령을 선포하여 이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면, 그 뒤로 그와 같은 운동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 권력은 더더욱 앞선 성공을 계기로 더욱 확신에 차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보니 정말 촛불혁명은 역사의 결정적인 기로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검언유착의 현실

언론은 검찰이 뿌려주는 내용을 기대로 받아쓰며 특종이네, 단독이네 하면서 검찰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고 있는 검언유착은 한동훈, 이동재 합작의 고발사주 행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사건에서 이동재 기자만 기소하고 한동훈 당시 검사장과 채널A 본사는 재빨리 빠져 나갔는데 딱 꼬리 자르고 몸통은 살아남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동재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의 지인을 만나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을 팔아 회유와 협박을 한 범행 장소 중 하나가 채널A 본사인데, 이 압수수색 대상인 범행장소는 전혀 건들지 않았습니다.)

인권보호 책무에 소홀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하는 검찰총장이 청문회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고 말했을 때 여론은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환호했습니다. 권력을 남용해 탄핵당한 대통령을 경험했기에 그의 말을 대통령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좋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고는 경직된 검찰주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조직에 충성한다’는 말속에 숨겨진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요소를 간과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라는 말이 얼마나 소름돋는 말인지 이제서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조직인 제식구만을 포함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일 줄은 몰랐던 것이지요.

제 마음속에서 뭔가가 자꾸 끓어올라요. “검찰을 독립시켜주었더니 막상 검찰 스스로 중립을 지키지 않더라”고 한탄하신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면 검찰개혁을 대충하거나 멈추거나 하면 안 되잖아요. 그걸 제대로 못 해서 한명숙 전 총리가 당하고 조국 전 장관이 당한 것 아닙니까. 검찰권력은 비대해졌고 이걸 제3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비겁하고, 의리 없고, 소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검찰의 만행을 겪은 저 자신도 분노가 치밀어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는 검찰의 행태는 관련서적 <검찰을 생각한다 - 문재인, 김인회> - <조국의 시간 - 조국> - <추미애의 깃발 - 추미애, 김민웅>로 이어지는 검찰 개혁 3부작을 통해 꾸준히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날의 검찰권력이 가진 문제는 윤석열의 지난 발언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사람을 고쳐서 될 것이 아니라 조직(시스템)을 고쳐야 될 문제"로 보입니다.

추-윤 갈등이 아니다, 윤석열의 하극상 사건이다.

‘추·윤 갈등’이 아니라, 검찰의 항명이었습니다. 갈등은 비교 대상이 동등할 때 할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인종갈등이다 하면, 흑인이건 백인이건 인간으로서 같은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갈등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법무부와 검찰을 같은 위치로 본다는 전제부터가 틀린 거예요. 지휘체계의 문제도 있고요. 검찰은 법무부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법무부의 외청(外廳)입니다. 검찰의 비대해진 권력을 법무부가 통제하자 조직적으로 반항한 것입니다. 검찰이 지난 70년간 수사·기소·영장청구·공소유지 같은 막강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윤석열 세력의 집단항명/하극상 사건에 대해서 저자는 조직적인 문제를 자꾸 추,윤 두 개인간의 갈등으로 프레임을 씌우려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는 상사의 명령에 불복하는 하극상에 불과할 뿐 윤석열 자체가 그의 상급자인 추미애한테 비빌만한 "끕"자체가 되지 않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추미애 ‘추·윤 갈등’은 검찰개혁에 대한 조직적 저항을 개인 간의 갈등으로 덮어씌우기 한 것입니다. 검찰은 70년간 누구도 흔들지 못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민주적 통제하에 두려 하자 개혁주체를 상징하는 법무부장관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조직을 대표하는 검찰총장이 대립하게 된 것이지요. 이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과제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개인 간의 갈등, 대등한 기관 간의 갈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나 엉뚱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프레임입니다. 이를 넘어서지 않으면 개혁은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추·윤 갈등’이라고 폄훼하며 개인 대 개인의 성격문제로 몰아가려는 것은 개혁에 대한 저항세력의 욕망입니다. 그들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패착이며, 그들의 욕망에 백기 투항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프레임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은 필연적으로 완수해야 하는 역사적인 과제임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론과 정치권은 장관과 총장의 갈등으로 구도를 잡고 승부에 내기를 걸었으나 그것은 제 관심 밖이었습니다. 저는 누구를 상대로 이기고 지는 것에 저를 걸지 않습니다. 초지일관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에 저의 소신을 분명히 하고 책임을 다할 뿐입니다.

교실 벽 교훈같은 김대중, 가슴 속에 있는 노무현


이 책에서 저자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에게 영향력을 미친 두 인물,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해 언급합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그가 정치인이 되기까지 벽에 걸린 교훈같은 존재(김대중)와 가슴 속에 있는 존재(노무현) 두 분이 영향이 있었음을, 저자가 그들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그 옆자리를 지킨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1909년에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일으키고 100년이 지나서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어요. 두 분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평화주의자, 인권주의자인데 단순히 주창만 하지 않고 제도화를 꿈꿨어요.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은 평화를 제도화해 이웃 국가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며 부족한 건 이끌어주고 넘치는 건 나눠주자는 내용이지요. “동양 평화를 제도로 구축합시다” “함께 상생·공영합시다” “이게 서구열강에 맞서는 방법입니다. 침략적·약탈적으로 무장할 것이 아니라 선진 문명국가로 갑시다. 같이 번영합시다”를 주장한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남북관계를 동아시아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보셨습니다. 평화적 공존·교류·통일이라는 3단계로 평화의 제도화를 실현하자는 구상과 함께 4자회담과 같은 다자협력을 제안했지요. 동아시아 평화의 구조를 만들고자 하신 거예요. 햇볕정책에 담긴 철학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그러한 언론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당하셨어요. 그래서 국민을 믿는다고 하신 거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면으로 맞서 치고 나가셨어요. 대단한 용기셨지요.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굉장한 인내로 견디시는 것 같아요. 결국 국민이 알 거라는 신념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저는 이 모든 게 형태만 다를 뿐이지 용기라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거짓에 대해 진실의 힘을 믿고 가는 것, 그게 용기 있는 마음이자 자세가 아닐까 해요.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검찰을 생각한다 - 문재인, 김인회> - <조국의 시간 - 조국> - <추미애의 깃발 - 추미애, 김민웅>는 시간 순으로 검찰개혁의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각기 다른 저자가 바라보는 검찰과 검찰개혁을 다룬 책입니다. 아직 세 권 모두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앞에서 부터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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