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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치사회

보수의 품격, 표창원 : 진정한 보수라면, 친북 좌빨 주장은 집어치워라

by Caferoman 2021. 9. 8.

독서노트

면제의 대물림을 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의무를 지킨다. 의무를 넘어서 자신을 희생한다.
위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권력으로 치부를 가리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하다. 부끄러움을 알고 공익을 위하는 것이 보수다.
입을 막고 종북과 좌빨을 외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비판에 당당하다. 자신의 길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것이 보수다. 권력의 그늘에서 시민의 피를 빠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수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과거를 엄정히 평가하고 화해로써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보수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누구?

우리는 지금껏 보수를 몰랐다. 보수의 정신은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그저 보수라는 이름만을 들었을 뿐이다. 보수는 무엇인가? 보수(conservatism)는 ‘전통, 현 체제와 구조, 문화와 규범을 가치 있게 여기고 지키려는 사상’이다. 그 사상은 엄중하고 엄정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기득권은 스스로를 보수라 외친다. 보수의 정신과 품격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보수는 합리적이다. 보수는 정의롭다. 그런데 ‘친일주의자’, ‘사대주의자’, ‘전체주의자’, ‘파시스트’들이 보수를 도용하고 있다. 폭력, 생떼, 억지 주장, 집단 난동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 또한 대한민국 보수가 아니다. ...누구나 두려움 없이 할 말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권리다. 이를 침해하고 억누르려는 자는 절대 ‘보수’라고 할 수 없다. - 보수의 품격, 표창원

우를 유일하게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자존심이라고. 그게 없으면 그냥 동물이야.
우파가 자존심이 없으면 우파라고 하면 안 돼. 겁먹은 동물이라고 해야지 - 닥치고 정치, 김어준


앞선 포스팅에서 살펴본 <닥치고 정치>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은 보수(우파)가 가지고 있어야 할 자존심, 품격입니다. 현 체제와 규범을 수호하는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그 대상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명분이 없다면, 그 가치에서 나오는 품격과 자존심이 없다면 보수는 그저 빈 껍데기뿐인 허울을 지키려고만 하는 무의미한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대한민국의 보수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리고 싶은 치부가 많아 과거를 조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을 비판하면 먼저 입을 막으려 한다.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위협한다. 그렇게 이 땅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권력을 연명했다. 사회와 문화, 국가, 지역에 따라 보수의 가치와 이념은 달라지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보수의 특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품격’이다. 보수는 근대 이래로 시대의 승자요, 주류였다. 정정당당한 승자로서의 태도를 갖춰야 한다. 자유와 민주, 인권의 가치에는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겠다는 자세와 신념이 있어야 보수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문제는 보수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 그저 그들의 권력과 소유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품격이 있어야 할 곳에 치부를 가리기 위한 이데올로기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자신들 외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보수라는 가치가 퇴색되어 보일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네요.

 

진정한 보수라면, 친북 좌빨 주장은 집어치워라

‘영국의 당당한 보수당과 민주자유당처럼, 보수의 진정한 가치인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무한 보장하는 것이 당당하고 떳떳한 ‘진정한 보수’입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 현 체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적 경제 기반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보수 아닌가?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서 벗어나는 관행과 행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고쳐야 하고,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것도 고쳐나가는 것이 보수라고 나는 본다. 그런데 흔히들 자신이 보수라고 하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을 보수라고 하면서 보수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개인의 인권을 유린해왔다. 그러면서 국가권력의 권력자들에게는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이것은 보수의 모습이 아니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무기는 이른바 "색깔논쟁"입니다.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이를 모두 종북 좌빨로 보는 이분법적 색깔론인데요, 저자는 보수의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의 경제기반,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지 색깔론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종북 좌빨론’을 깨뜨리려고 그런 거다. 나를 봐라. 난 철저한 반공주의잔데, 내가 봤을 때 야당은 좌빨이 아니다. 그냥 보수다. 보수끼리 서로 싸우는 건데 왜 상대방에게 좌빨이라고 하나? 이건 공정한 경기가 아니다. 서로 깨끗하게 누가 더 실효성 있고 더 좋은 정책을 내는지, 누가 더 국민들에게 나은 세상을 줄 건지, 누가 더 좋은 인물을 내세웠는지를 보자는 건데 자꾸 그런 것들을 희석시키는 색깔론을 얘기한다. 그게 아주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반공주의자다’라고 한 거다.

반공주의자인 내 눈에 저 사람들은 절대로 빨갱이가 아니다. 지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각종 위원회 등에 참여해서 다 봤다. 봤지만 저 사람들은 절대로 좌빨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지키고 수호하려는 사람들인데, 왜 저 사람들을 보고 좌빨이라 하는가? 그것을 설득하기 위해서 일부러 나를 극단적인 반공주의자라고 선언한 거다. 물론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그런 것을 설명하려면 많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단순하게 ‘나는 반공주의자다. 난 공산주의가 싫다’고 한 거다.

보수주의자인 제가 영국에서 받았던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거긴 진짜 공산주의자들이 마음껏 떠들며 활개 치고 다니고 우리나라에서는 ‘종북 좌빨’로 불리는 노동자당, ‘노동당’이 보수당과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집권 통치해도 전혀 무너지지도 않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영국의 보수당과 민주자유당 등 ‘보수 정당’ 들은 당당했습니다. 노동당에 대해 이념 공격하지 않았고, ‘저들이 집권하면 나라가 결딴난다’고 국민을 겁박하지도 않았습니다.


저자의 입장은 우리가 흔히 진보라고 구분하는 현재 여당 역시 본질적으로는 보수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현시대에 (군소정당을 제외하고) 극단적인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자들로부터) 노동자의 해방 등 주장하는 정당은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죠.

민주당은? 문재인이나 안철수 후보는? 저보다 더 전문가들도 계시겠지만 제 경험과 학식에 기반해 말씀드리자면 이들은 절대로 좌파가 아닙니다. 보수 우파, 그것도, ‘너무 보수 우파’입니다. 새누리당과 똑같이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주장합니다. 영국식, 유럽식, 미국식 사회ㆍ정치ㆍ경제 시스템 갖추자는 내용들입니다. 문재인과 안철수에 대해 만약 ‘종북, 좌빨’ 입에 담는 사람은 그 사상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오히려 국정원과 경찰청 보안 수사대에서 내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 호도하고, 불안 조장해서 ‘공정 경쟁’ 저해하는 때 묻은 ‘이념론’, ‘색깔론’ 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보수주의자로서’ 너무 화나고 부끄러워서 제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 글과 다른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강남 좌파’라고 말하는 조국 교수는 하나의 블랙코미디라고 본다. 그분이 과연 진보의 대표일 수 있을까? 그분이 정말 좌파일까? 나는 그분도 사실은 보수주의자라고 본다. 그분은 헌법을 수호하는 법학자고, 그중에서도 형법학자다. 형법이란 것 자체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최첨단 도구다. 체제를 지키고 연구하는 형법학자다. 형법의 올바른 모습을 지켜내는 분이 무슨 좌파인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이미 우리 현대사가 왜곡되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분이 보수라고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보수는 전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반공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에 보수인 조 교수가 진보로 위장하고 있는 거다. 한국 현대사상사로 봤을 때 민족주의, 항일, 민주주의는 진보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좀 화가 난다. 보수의 가치를 가져가서 진보라 위장하고 주장한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정체성을 주장해.’노동자들과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내걸고, 다수가 스스로를 규율하고 지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자유보다 평등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라는 거다. 그렇게 해서 진보도 제대로 된 모습과 정체성을 갖추어 노동자들과 다수의 국민을 향해 ‘우리가 당신들을 대변하니까 우리를 지지해주시오.’ 이렇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나처럼 ‘당신들 못 믿겠어. 혁명을 해도 우리가 더 힘들고 고단해질 것 같아.’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다수의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무조건 지지해주지는 않는 것이 보수 심리다. 그렇게 되는 순간, 진보도 순화될 거다. 더 이상 급진 혁명을 추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어떻게 현실적으로 조금 더 진보적인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책이 쓰여진 시점이 2013년인지라 이 책에서는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과 안철수를 예시로 들며 이들 또한 정치관을 통해 볼 때 좌파이기보다 보수우파로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이념과 색깔에 의한 이분법으로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수주의자인 저자는 다시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는 개혁 진영이나 진보 진영을 ‘종북 좌빨’이라고 공격한다. 이런 거친 언어의 구사가 결국 스스로 한국 보수의 천박함이나 허약함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보수주의자 자베르

"자베르 경감은 결국 자살한다. 이것은 더 이상 법 집행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건 자아의 붕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자베르는 철저하고 원칙적으로 오로지 법과 진실만을 정의라고 봤다. 그 위에 있는 메타적인 얘기나 광범위한 정의 부분은 모른다. 이것이 어떤 정치적 타당성이나 역사성을 가졌는지는 모른다는 거다. 자베르는 눈앞의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 범죄를 저질렀느냐 안 저질렀느냐, 이것만 본다. 그것이 자베르의 삶이고 자베르의 정의다. 그런데 그런 그가 혁명군에게 잡혔다가 장발장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자베르는 ‘나는 정의롭다. 나는 정의를 수행한다. 다른 것은 묻지 마라.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가 내 모든 기준이고 잣대며 정체성이고 가치다.’ 이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그는 장발장을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사람, 영원한 범죄자’로 규정했다. 그런 장발장이 아무런 이익과 이해도 없이 자기를 풀어줬다. 자베르를 풀어주면 자기한테 불리할 텐데도 풀어줬다. 그것은 악의 모습이 아니다. 자베르는 거기서 첫 번째로 흔들렸다. 그전까지 자베르는 ‘법을 어긴 자, 범죄자’를 악인으로 규정했다. 때문에 그들을 잡아서 어떤 무거운 형벌을 내려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어떤 연민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장발장이라는 존재가 그런 자신의 모든 신념을 뒤집어버리고 흐트러뜨린 거다. 범죄자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범죄자가 자신보다 더 선을 잘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자베르의 신념을 확 흔들어버린 첫 번째 사건이다."

그다음 자베르는 또다시 장발장을 잡을 기회를 맞는다. 지하 하수구에서 마리우스를 업고 나오는 장발장을 발견한다. 체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때, 장발장이 호소한다. 청년을 바로 의사에게 보여야 하니 잠깐 시간을 달라고. 그리고 주소를 말할 테니 그리로 와달라고. 자베르는 거기서 얼어붙어 버렸다. 본래 자신의 모습이었다면 돌아볼 필요도 없이 수갑을 채워 끌고 갔을 거다. 그게 자베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 자기가 빚을 졌으니까. 자기가 저 사람 때문에 목숨을 건졌으니까. 자신의 신념과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기본 양심이 있다. 첫 번째 정체성의 붕괴는 일단 고민거리로 남겨둘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장발장을 바로 체포하지 않은 행위는 스스로의 원칙을 깬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범죄자를 놔줬으니까.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그것도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이익, 개인적인 보은에 의한. 그것은 부패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고 나쁘다고 보는, 법을 어기고 양심을 어기고 원칙을 어기는 범죄자의 모습을 따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거다. 그러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자기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없게 된 거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했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거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의 자베르 경감이 바로 보수주의자의 전형이라고 볼 때 그의 원칙과 행동에서 드러난 갈등과 딜레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원칙을 지켰을 때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룰을 정했으면, 헌법이라는 룰을 정했으면 그건 어떤 순간에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 보수의 정신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다 보면 손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질 수도 있고, 우리의 어두운 면이 드러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정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 근원에 일제 강점기가 있다. 친일파에게는 친일의 과거를 반민특위가 끝까지 파헤치도록 한다면 우리는 절단 난다는 공포감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다음에 독재로 이어졌다. 탈법과 범법, 결탁, 비리와 부패 등이 끝까지 파헤쳐진 적이 없다. 그러니 한국의 보수라고 하는 분들은 주로 과거에 얽매여 있다. 드러내기 싫어하는 과거의 어둡고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것들, 역사적인 죄들을 안고 있다. 그런데 룰을 지킬 경우, 즉 헌법에서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한다면 누가 불편해질까? 불편한 걸 넘어서 한국의 보수는 다 절단 날 수 있다는 극한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보수 정신은 멸사봉공이다. 사(私)를 멀리하고, 공(公)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비 정신이다. 그런 엘리트가 있기 때문에 엘리트 중심의 지배 구조가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인데, 지금 자칭 한국의 보수라는 분들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기 것을 먼저 챙긴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측근들이 모든 걸 나누어갖는다. 모든 공적 자리에 자기편을 앉히고, 사법권력을 장악해서 수사를 피한다. 결국 임기 말이 되면 비난받거나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혹 죄 값은 안 치를지 모르지만, 국민 모두에게 지탄받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보수의 정신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보수의 가장 큰 멋 중 하나가 바로 이 "원칙을 사수하려는 품위"인데 과연 이 시대 보수에게 그런 멋이 있는가를 저자는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묻는 듯합니다. 이 시대에 그러한 멋을 가진 보수주의자가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일단 묻고 싶다. 과연 한국에 진정한 보수가 있는가? 그 의문은 아직도 여전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주 불행하게 탄생했다. 자력으로 광복을 쟁취하지 못하다 보니 임시정부의 적통을 그대로 잇지도 못하고 국민 다수의 자유의사나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부가 형성된 것도, 헌법이 채택된 것도 아니었다. 북한의 존재와 국제적 정세 때문에 보수가 건강하게 형성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냉전 시대의 틈바구니를 이용한 권력주의자들은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고, 능력도 없었다. 그러면서 힘을 가지고 권력을 휘둘렀고, 돈을 챙겼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의 사회구조를 많이 왜곡해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도 불법적으로 영득한 것이다. 그들은 권력의 남용을 통해 얻은 것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수란 이름을 이용했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파헤치려고 하면 그들을 빨갱이라고 낙인찍는다. 그게 아주 편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알아서 ‘쟤네 빨갱이야.’ 하며 다 제거해준다. 그것이 지금까지 흘러왔다. 대한민국의 대단한 불행이며 또한 현실이다. 이번에 분노하게 된 배경에도 그런 것이 있다. 새누리당이 정말 보수인가. 저들이 내가 속한 경찰 집단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의혹을 가지면서 이건 보수가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보는 다수가 소수의 압제에서 벗어나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보수는 그게 아니다. 똑똑하고 도덕성 있고 철학을 가진 소수가 사회를 운용할 때 다수가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그 소수에게 똑똑함과 도덕성과 정직함과 정의로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약한 자와 없는 자를 위해 자기 것을 나누는 기본 정신이 없다면 이미 보수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린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자들은 절대로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한다. 물론 자기들도 안 가고, 세금도 가급적 안 내려 하고, 재산은 해외로 빼돌린다. 그게 무슨 보수인가? 그들이 도대체 뭘 지킨다는 것인가? 그러면서 힘없는 대중한테는 ‘당신들이 일선 전방부대에 가서 우리나라 지키고, 직접세는 안 되고 간접세가 포함된 담배 많이 피우고 술 많이 마셔서 세금 내라’는 것 아닌가.


사실 가까운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과도 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바로 정치이야기 일텐데요,
군부정권에 관련된 입장과 민주화운동에 관련된 입장과 같이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의견을 좁힐 수 없기에 그 대화가 감정적으로 격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우익 보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이승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승만, 박정희와 함께 형성된 경제, 산업화 주체들의 대부분은 친일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일본의 한국 지배가 우리 역사 속에서 연착륙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초기에 있었던 강한 항일 감정이 희석되어갔다. 대신 가장 무서운 종북 좌빨, 북한을 이기는 방법을 찾았다. 그에 따라 역사 인식은 근대화의 영웅 박정희, 그 이전의 영웅 이승만을 알아야 하는 것으로 소급된다. 그들에게 달린 친일의 꼬리표를 떼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친일이 어쩔 수 없었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 숙명이었다.’ 이런 논리를 펴게 된 것이다.

 

정의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접근

평균적 정의 : 법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

법과 정치의 영역에서의 동일한 기회와 권리를 말한다.
법 앞에서 공평한 처벌과 제재가 가해져야 함을 말한다.

일반적 정의 : 사회와 구성원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 무엇인가? 옳고 그름인가, 아니면 이해관계인가?
소외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돕는 의미에서의 정의

분배적 정의 : 기여하고, 공헌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세상

존 롤즈 분배적 정의에 대하여 "일단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고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그 나머지는 능력대로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정의고, 민주주의적 정의인 것이다. 또한 이것이 공산주의적 정의가 아니고, 보수주의적 정의다.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해 봤을 때 현재 대한민국의 정의의 수준은 부끄러운 수준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전무죄, 나부터 잘 먹고 잘살자라는 극단적 개인주의가 상식이 되는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이죠.

보수와 진보가 화합할 길은 있는가 : 박정희와 광주

건전한 보수가 존재한다면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꼭 필요한 것만 바꿔나가자는 보수적 진영과의 경쟁에서 진보가 이길 수도 있다. ‘지금 당신들 그럴 때야? 지금은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좀 더 빠르고 강한 변화가 필요해.’ 이런 진보적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 진보 정당이 집권하는 거다. 하지만 진보가 집권해도 나라가 뒤집어지지 않고, 절단 나지 않으며, 부자들도 빼앗기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을 주는 진보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가 균형을 이뤄 대한민국이 앞으로 멋지게 날아갈 수 있다. 지금은 날개가 없다. 날개가 꺾였다. 날개가 아닌 이상한 꼬챙이 같은 게 나와서 아주 기이한 행동을 하며 제자리에서 맴맴 돌고 있는 아주 괴이한 모습이 한국의 현재 상황이다.

국정원 사건 강연을 한 뒤 질문 시간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하느냐. 그는 악의 화신이다. 다카키 마사오로 개명한 친일이고, 원조 빨갱이다.’ 그러면서 내게 그런 의견을 바꾸라고 요구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답해주었다. ‘당신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제 의견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말 순수악일까요? 그분은 오로지 악을 실행하기만 한 걸까요? 그분의 마음속에는 정말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정의는 무엇일까요? 그분을 그렇게 순수악으로 몰아붙이고 ‘우리가 승리하면 너는 절단 날 거야.’ 이런 태도로 정의가 구현될까요?’ 그렇게 반문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당당하게 주장하되 상대방의 가치와 주장 역시 존중해주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내가 저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끝장날 거야.'라는 두려움 대신 '저들의 주장도 좋지만 우리가 더 좋다. 한번 해보자. 우리가 더 좋은 모습을 보이자.'라는 의연한 태도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그 출발점을 '박정희'와 '광주'에서 찾고 있습니다.

박정희와 광주는 각각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이다. 내가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순간, 민주화세력 쪽에 있는 분들은 ‘그것만 빼면 다 너를 인정해주겠는데 그거 때문에 도대체 너를 못 믿겠어.’ 이렇게 나온다. 그다음에 광주 민주화운동이라 하고 광주가 성지라 하면 ‘네가 전라도 놈이야? 너 결국 DJ 똘마니구나. 노빠구나.’ 이렇게 말한다.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라 부르는 사람들로부터 ‘저놈도 우리를 현혹시켜 놓고는 결국 박근혜에게 달라붙을 놈일 거야.’ 하는 시선과 공격을 다 받겠다. 그리고 광주의 실상을 알리고 왜곡된 이야기를 헤쳐나가면서 광주는 분명 우리 민주화의 아픈 상처지만 자랑스러운 민중 항거의 역사고, 광주만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전 세계에 민주화의 상징으로 알릴 가치가 있다고 얘기하면 영남 쪽이나 보수 쪽에서는 ‘저 새끼 빨갱이 아냐?’ 이렇게 나올 거다.

‘박정희? 저 사람 말에 도대체 어떤 의도가 있는 걸까. 내가 볼 때는 박정희가 완전히 악의 화신이고, 나쁜 짓만 했고, 사람 죽인 살인마 같은 존재인데 왜 저 사람은 존경한다고 할까? 그것이 알고 싶다.’ 이렇게 된다. 그러면 이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광주의 경우도 똑같다. 영남에서도 교사들이 광주의 역사를 가르치고, 아이들이 5ㆍ18 행사에 참석하고, 광주에 수학여행 와서 5ㆍ18 묘역에 참배하고. 또한 호남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했지만 그가 우리의 산업화를 일군 업적은 존중하고, 기념관이 생기면 참관도 하면 좋겠다.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독재자다. 독재자라는 것은 뺄 수 없지만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는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비교하면 우리가 낫잖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역사의 화합을 이룰 수 있고, 많은 문제들을 쉽게 풀 수 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극한의 대립과 갈등을 풀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진정한 보수는 생각보다 괜찮은 것이다

끝으로 저자는 한국의 보수가 올바르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보수 안에 있는 친일 매국 독재 세력을 떼어내야 함을 강조합니다. 거기서 품위와 자존심이 나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상대에게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진보도 마찬가지로 그 안에 북한에 동조하는 진짜 종북을 도려내고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도려낼 건 도려내고 깨끗하게 경쟁하고 시작하자'라고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역시 소통능력, 즉 대화와 설득이다. 지금 한국 보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그거다. 자신들에게 대화와 설득 능력이 없고, 상대방을 설복시킬 자신이 없고, 자신을 변호할 능력이 없으니까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런 대화의 자리에 나오기 싫으니까 제일 쉬운 게 ‘말 잘하면 빨갱이’라며 자꾸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자들을 백안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는 분명히 강점이 있다. 누누이 말했지만 보수는 근대의 승자고, 현세를 이끌어낸 승리자다. 그런 당당함에다 보수의 주장과 이념, 사상, 경험을 설파해내면 분명히 다수를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고 설득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을 가지라는 거다. 그렇게 되면 반칙을 쓸 필요가 없다.

 

함께하기 좋은 것들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은 뒤이어 다양한 후속 도서들을 추천하게 합니다.
우선 보수주의자를 언급하면서 나왔던 소설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가 있고요.
보수와 진보의 본질과 현재 한국 진보, 보수의 한계에 대한 내용을 좀 더 보고 싶다면 "닥치고 정치, 김어준", "서가 명강 :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강원택"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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