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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치사회

조국의 시간 ch.1 : 먹먹함 주의(그리고 검찰과 언론에 대한 분노 주의)

by Caferoman 2021. 10. 21.

독서노트

장작불에 불을 붙이는 데 쓰다가 꺼져버린 ‘불쏘시개’이지만, ‘불씨’ 하나만 남아 있으면 족합니다. 이 불씨 하나를 꺼뜨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며 주어진 삶을 살겠습니다.

 

『검찰을 생각한다 - 문재인,김인회』에서 예고된 다음시리즈

마블 시리즈의 앤딩크래딧에 나오는 쿠키처럼,
2011년 겨울 책의 저자는 『검찰을 생각한다 - 문재인, 김인회』 의 출간기념행사에서 어쩌면 자신의 수년 뒤의 운명을 예견한 듯한 발언을 합니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공저 『검찰을 생각한다』 출간 기념행사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에서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법무부장관 뒤를 캘 가능성이 있거든요. 소문으로 흔들어서 이 사람을 낙마시킬 수도 있는 조직이라고 봅니다. (검찰개혁은) 정권 초반에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봅니다. 정권 초반에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분이 법무부로 들어가서 법무부 안에서 검찰을 개혁하고, 나가겠다는 분들은 빨리 보내드려야 합니다. (검찰이) 집단항명을 해서 사표를 제출하면 다 받으면 됩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이사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 약칭)의 필요성, 피의사실 공표의 근절, 법무부의 탈검찰화 등을 역설했다. 그는 검찰수사의 독립성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소신만큼이나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조정 등 검찰개혁이 필요하고 검찰권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소신이 확고했다. 사회자였던 나는 법무부장관 적임자와 관련해 문재인 이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관중에게 질문을 돌렸다.

“여러분, 우리 조국 교수님 어떻습니까?”
이 질문에 관중은 크게 웃었지만, 나는 당황했다.

 

이 장면은 당시 행사의 유튜브 영상이 있어 저도 보면서 "그런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구나"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당시 정치인이 아닌 문재인과 교수 조국의 대화를 약 10년이 지난 지금에서 되돌아 볼 때,
"운명이었나?"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고난이었을까?" 라고 되 묻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답을 해주는 듯 어느 자서전의 제목이 생각이 납니다.

 

운명이다 - 노무현재단, 유시민

 

안하무인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한 개인의 고군분투가 장엄하게 느껴지면서도 한 개인으로서 버텨내고 견뎌내는 저자를 보며 먹먹함과 함께 "(예전처럼) 또 한사람을 잃을 수는 없다."라는 결연함을 가지게 됩니다.

 

나 하나만, 가족만 생각하면 그만두고 싶었다.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여권 인사들과 여러 차례 상의했다. 이들은 나의 임명이 정무적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진 사퇴는 절대 안 된다고 조언했다. 검·언·정이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잡아 족쳤던 상황과 같다고 했다. 검찰의 문재인 정부를 향한 ‘무력시위’, ‘문재인 정부 군기(軍紀) 잡기’가 시작되었다면서 검찰의 공격에 무릎을 꿇으면 이후 누가 법무부장관으로 오더라도 검찰개혁은 무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국이 낙마하고 그 자리에 다른 후보자가 들어서면 지금의 광란적인 공세가 사라질까?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 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아마 더욱 기세를 올려 사법개혁 자체를 무산시키고 여세를 몰아 총선까지 내달릴 것이다. 온 가족의 신상과 사생활을 까발려서 조그만 의혹의 꼬투리라도 붙잡아 인신공격의 융단폭격을 마다 않는 지금의 무력시위는 잠재적인 대안 후보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과연 누가 지금의 광기를 버티면서까지 사법개혁을 위해 장관 후보자로 나서려고 할 것인가? 그래서 지금의 논란은 단지 조국 후보자 한 명을 둘러싼 대립이 결코 아니다. 행여 조국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한 개혁 의지를 가진 인물이 다시 후보자로 지명된다면 그때는 사돈의 팔촌까지 뒤지고 묏자리까지 아예 파헤쳐서라도 주저앉히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더 도덕적이고 더 개혁적인 후보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다. 이 광기의 살육을 나는 규탄한다. 그것이 적어도 지금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길이라 믿는다.” - 2019년 하반기, 건국대 이종필 교수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자진 사퇴했다면 국면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한번 뺀 칼을 도로 집어넣을 리는 없으므로. 장관 지명이 철회되었다면 어땠을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부를 정면으로 타격하는 수사를 벌이지 않았을까? 윤 총장은 보수진영에서 대권을 꿈꾸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역할만 수행했을까? 보수야당과 언론은 순순히 검찰개혁에 동참했을까? 검찰은 검찰개혁법안 통과를 입법자의 몫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을까?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식하고 건방졌던 기자들에 대한 일침

인터넷 상에 "외요?"라는 건방진 자세로 수많은 밈을 만들어 나름 유명해진 자칭 부수 1위 신문사의 기자의 문답이 책에서 소개되었습니다.

 

“기자: 위장전입 관련해, 영국에 살았는데 왜 전입이 부산으로 되어 있습니까? 거짓말한 것 아닙니까?
나: 영국에 부인과 딸이 유학 중이었고, 주민등록법상 주소를 영국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왜요?”- 2019년 9월 2일 국회 기자간담회

그때 못한 반문을 지금 하겠다.
"기자는 영국으로 유학 가면 한국 주민등록상 주소를 영국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정신나간 기자의 헛소리에 친절하게도 저자는 조금 늦었지만 본 저서를 통해 친히 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검찰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함께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선택적 정의가 가득한 언론의 민낮 또한 드러내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못 잊을 장면이 있다. 2019년 9월 23일 집 압수수색 후 기자들이 식당 배달원에게 질문을 던지며 희희낙락하던 장면이다. 이들이 킬킬대며 던진 질문은 이랬다.

“사장님, 어떤 메뉴를 먹었나요? 몇 그릇 시켰어요? 그것만 말씀해주시면 안 돼요? 찌개류를 먹었나요, 아니면 짜장면·짬뽕 같은 걸 먹었나요?”

기자들의 속마음과 진면목을 본 듯했다. 검찰에게 나와 내 가족이 사냥감이었다면, 기자들에게는 동물원의 원숭이였다.

 

"왜"냐고 묻는 "왜"구들

일본 극우파의 논리를 한국에 전파하는 책 『반일종족주의』의 공동저자로 「강제징용은 허구」라는 글을 쓴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의 최대 월간지 『문예춘추』 특별판 ‘저주받은 한일관계’에 「징용공(徵用工) 판결은 역사 날조다」라는 글을 실었다. 분노가 일어났다. 통상적으로 ‘우파’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법인데, 한국에서는 정반대다. 이러한 사람들을 ‘토왜’(土倭)가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다음은 저자의 민정수석 당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SNS에서의 발언입니다.

 

“법학에서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다.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해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률보좌가 업무 중 하나인 민정수석으로서(그 이전에 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법학자로서), 이하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를 받았지만,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그러므로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이 아니다.
  2.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는 ①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자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포함되어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②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 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했다.
  3. 2012년 대법원(제1부, 김능환 대법관 주심)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파기 환송해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린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으나, 2018년 확정된다.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비난·왜곡·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경제전쟁’을 도발하면서 맨 처음 내세웠던 것이 한국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이었다. “1965년 일본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 아니냐”라는 식의 표피적 질문을 하기 전에, 이상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의 한국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가 모든 사안의 뿌리다.

 

이에 스스로를 보수라고 여기는 언론과 정계인사들은 찔리는 게 있었는지 아니면 그들의 자국을 옹호해야겠다는 애국심이 들었는지 발끈하면서 저자의 언동에 대한 비난을 서슴치 않게 됩니다.
경제보복 이후 2년, 과연 조중동의 걱정과 우려처럼 대한민국이 망조에 이르렀는지 2021년이 끝나가는 이시점에서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가 ‘무역전쟁’을 개시했을 때, 야당과 언론은 한국의 패배를 예견하고 대법원 판결과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4개월밖에 못 버틴다” 운운한 『조선일보』 기사가 생각난다. 야당과 언론은 내가 ‘반일선동’을 한다고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일본 언론은 나를 ‘대일 초강경파’라고 불렀다.

 

2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가 망했는가? 전혀 아닌 것이 확인되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핵심인 불화수소 가운데 액체불화수소는 100% 국산화에 성공했다. 오히려 일본 기업이 타격을 받았다는 일본 내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의 길은 멀다. 무역을 포함해 일본과의 관계도 더 개방적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주권을 흔드는 일본의 행태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이 없어야 한다. 감히 말하자면, 되돌아보아도 당시 나의 ‘대일 강경노선’이 명분과 실리 모두에서 오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개혁이 왜 중요한가?

검찰개혁이 왜 중요한가?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체 두 가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① 주권자가 정치권력을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②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정파적 발호(跋扈)를 억지해야 한다.

‘1987년 헌법체제’ 수립 이후 ①은 충분히 실현되었다. 한국의 주권자는 아무 제약 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표자를 뽑고 있다. 심지어 뽑힌 대표자를—대통령이건 국회의원이건—마음껏 비판하고 조롱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빨갱이' '독재자' '중증 치매환자' 등 극단적 표현을 쓰며 공격도 한다.

그런데 ②는 어떠한가? 1987년 헌법체제는 ②에 대해 철저한 제도적 준비를 하지 못했다. 특히 검찰은 권위주의 체제 수호의 첨병이었다. 과거 수많은 공안사건에서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떠올려보자. 검찰은 국정원·기무사·경찰 등과 협업해 수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좌경·용공·불순분자’로 몰았다.

 

여기서 핵심은 검찰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검찰개혁을 피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국민의 검찰론'이라는 프레임은 반헌법적일 뿐 아니라 자신들을 선출한 리더십에 대한 정당성을 간과한 오만한 어리석음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윤석열 총장은 검찰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일어나자, 2020년 11월 이후 ‘국민의 검찰론’을 꺼냈다. ‘국민의 검찰론’의 요체는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수권(授權)했기에 국민에게만 ‘직접’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검찰이 형식적으로는 대통령 산하 행정부의 일부지만, 검찰은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의 통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 또는 받을 필요가 없다는 함의가 숨어 있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느낌을 주는 ‘검권민수설’(檢權民授說)이다.

 

이는 극히 위험한 반(反)헌법적 논리다. 대한민국 헌법체제에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직접’ 받은 사람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밖에 없다. 그 외의 사람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 검찰권은 애초에 국민으로부터 직접 부여된 적이 없다. 국민은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은 적이 없다. 그는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검찰총장의 정당성은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에서 파생했을 뿐이다. 따라서 검찰총장은 국민에게 책임지기 이전에,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에게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

 

함께하기 좋은 것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이 책을 읽고나서 잠시 읽다 접어두었던 <검찰을 생각한다 - 문재인, 김인회>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호빗 - 반지 원정대 - 두개의 탑 - 왕의 귀환"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라면 어쩌면 검찰개혁에 관련된 서사는 <검찰을 생각한다 - 문재인, 김인회> - <조국의 시간 - 조국> - <추미애의 깃발 - 추미애> 로 이어지는 시리즈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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