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0세기 말에는 동네마다 도서/만화책 대여점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동네는 행정상 구분만 서울이지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 거의 한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가야 했던 구리시립도서관일 정도로 멀었습니다..
그 외에 주변에서 책을 빌릴 수있는 곳은 그나마 작게 도서 대여서비스를 하던 동네 동사무소가 있긴 했지만 운영종료시간이 동사무소 업무시간과 비슷하게 일찍 끝나서 정작 책을 빌리고 싶어지는 시간대(하교시간이나 주말)에는 이용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원하는 책을 원하는 시간에 구해서 읽기 위해 사설 동네 도서 대여점을 이용했어야 했는데요, 아무튼 동네 도서 대여점에서 빌려서 읽던 시절, (우리 동네 기준) 내 또래에 비해 수준이 높은 책을 즐겨 읽던 11살 꼬마에게 책방주인이 이문열의 삼국지(전 10권) 다음으로 읽을 책을 권해주신 것이 바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들여는 놨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비인기 서적을 호구 초딩에게 추천해 준 것이 아닐까 싶네요.)
11살에게 데미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너무 음산하고 답답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 만일 그렇다면, 너 자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한 대로 살아 보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야. 그건 좋지 않아. 우리가 삶으로 실천하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너의 〈허용된〉 세계가 단지 반쪽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어. 그리고 목사님이나 선생님처럼 나머지 반쪽 세계를 숨기려 했지. 그걸 숨길 수는 없어! 누구든 일단 생각을 하게 되면 절대 숨길 수 없어.」
그 당시 내게 데미안이라는 소설의 느낌은 어둡고 무섭고, 유리 멘탈의 싱클레어가 남일 같지 않았던 겁 많던 제게는 꽤나 불편한 소설이었습니다. 그저 소설을 읽고 있는 것 뿐인데도 뭔가 어두운 골목에서 못된짓을 하는/당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차라리 삼국지는 아무리 이문열씨의 문체가 당시 11살에게는 어려울 수는 있어도 내용 자체가 싸우고 땅 따먹고 하는 영웅 호걸들의 이야기인지라 (또한 코에이 게임을 통해 접한 배경지식이 풍부했던 터라) 매 권 3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한권 한권 읽어나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200페이지를 조금 넘던 이 책은 어찌나 진도가 안나가던지...
참고로 제가 가장 좋아했던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는 삼국지3 였습니다.
지금이야 '저 나이대 쪼꼬미들은 저런거에 심각하고 진지할 수 있지'라며 관조하는 자세로 볼 수 있지만
당시 어린 저에게는 또래 간 괴롭힘이나 폭력, 협박 등은 그저 소설 속 허구의, 남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시작부터 불량친구들에게 협박당하는 초반부터 감정이 이입되며 책의 페이지 페이지는 넘기기에 너무 무거운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대출 기한을 상당히 넘긴 뒤에 책을 반납했구요.)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삶의 요구와 주변 세계가 가장 가혹하게 갈등을 빚는 지점, 앞을 향한 길을 가장 혹독하게 쟁취해야 하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체험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평생 단 한 번 겪는 운명이다. 어린 시절이 바스러지면서 서서히 붕괴된다. 모든 정겨운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려 하고, 우리는 돌연히 우주의 고독과 치명적인 냉기에 에워싸인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그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으며,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잃어버린 낙원의 꿈, 모든 꿈들 중에서 가장 고약하고 가장 살인적인 꿈에 일생 동안 고통스럽게 집착한다.
'싱클레어가 운 좋게 만난 데미안 같은 존재는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거야'라며 11살 독자는 부조리한 삶을 구해주는 슈퍼맨은 현실에 없다고 빠르게 포기했습니다. 어쩌면 그 때 11살 독자는 전혀 이 소설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서른 중반즈음이 되어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읽었던 이 소설이 자꾸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심각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것 같았는데 또 뭐가 이리 음산하고 답답했을까?
거진 25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우연히 다시 읽게 되면서... 예전엔 그냥 훑고 넘어 갔던 저자의 서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저자의 서문 첫 구절을 읽었다
나는 오직 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소설에서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데,
소설 '데미안' 역시 이렇게 아름다운 서문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그 땐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줄탁동시 : 새가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올 때 어미 닭이 같은 시간에 밖에서 쪼아서 깨야 한다.
동시에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깨어져야 하는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 책을 읽었던 시점의 저는 제 자신을 가두고 있던 껍질을 깨려는 의지도, 깨고 나와야 할 의미와 껍질로 구분되어진 바깥 세상의 존재도 잘 알지 못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렸던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시기상조였을지 모를 조금 이르게 접한 이 책이 어른이 되어갈 제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하나의 암시를 던져주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고,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하나의 좁은 길에 대한 암시〉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데미안의 페이지 페이지는
여전히 무겁습니다.
다만 어린시절과 다른 점은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섬세한 문장들이 보이면서 곱씹게 되는 무게감이 소설에서 조금씩 느껴진다는 점이 아닐까요?
함께하기 좋은 것들
음악 : 이적 2집 <2적> 그리고 그 앨범에 수록된 곡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10대때 읽었던 이소설을 30대에 다시 읽으면서 20대 때 즐겨 듣던 이적의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물론 이 곡은 성장소설인 데미안과는 주제를 달리하지만 논리와 플롯을 넘어서 어울리는 뭔가가 있는 것 같네요.
이 곡의 어투가 불안하고 방황하던 데미안을 닮아 있어서일까요?
그땐 아주 오랜 옛날이었지 난 작고 어리석은 아이였고
열병처럼 사랑에 취해 버리고 심술궂게 그 맘을 내팽개쳤지
내가 버린 건 어떠한 사랑인지 생애 한번 뜨거운 설렘인지
두번 다시 또 오지 않는건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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