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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개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아류작 : 문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by Caferoman 2022. 3. 25.

개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다소 아쉬운 작품 : 문명, 베르나르 베르베르

항문을 가린 존재는 모두 진실한 감정을 숨기고 싶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고양이 피타고라스

 

자신의 전작 <개미>를 넘지 못하는 아쉬운 작품

전작 독서를 하게 되는 작가들 중에서 정말 100% 기대하는 마음으로 매번 출간되는 책을 찾아 읽게 되는 작가도 있지만 해당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임팩트가 강해서 후속작들이 기대에 못미쳐도 '이번에는 설마?' 하면서 다시 믿고-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저에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런 작가인데요, 소설 개미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게 되었지만 매번 실망을 반복하게 되는 그런 작가입니다.

 

솔직히 인간에게도 나름 장점이 있어. 알아 갈수록 괜찮은 구석도 발견되고. 물론 그들은 형편없는 외모의 소유자들이야.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몸에서 특이한 냄새도 나. 우리처럼 긴 꼬리가 없으니까 당연히 평형 감각은 제로야. 어둠 속에서는 전혀 보지 못해. 참 안됐지. 소리를 감지하는 예민한 귀도, 공간을 가늠할 수 있는 수염도, 뺐다 넣었다 할 수 있는 발톱도 없어. 그들은 뒷다리로 뒤뚱뒤뚱 걸어다녀. 게다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척추는 몸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늘어. 그래서 상당수가 허리 통증을 달고 사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심해진다더라. 이러니 어떻게 내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어? 성생활…… 이건 아예 말을 말자……. 이 부분에 특히 관심이 많은 내 눈에 인간들의 성생활은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으니까. 내 집사 나탈리는 좀체 교미를 하는 법이 없어. 가물에 콩 나듯 해도 고작 한 번에 수컷 하나야. 조심스럽기는 또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도둑질하듯 짧게 끝내고, 오르가슴을 느껴도 시원하게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앞발이 구멍에 낀 쥐처럼 낑낑거리는 신음을 낼 뿐이야.

 

더더군다나 비슷한 시기에 동일하게 고양이의 관점에서 쓰여진 의인화 기법을 사용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다보니 비교가 되지 않을 수 가 없었는데, 본 작품은 일본의 대문호 소세키의 한세기 전에 쓰여진 소설뿐 아니라 심지어 작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개미의 수준에 한참 못미치는 아쉬운 작품으로 보입니다.


사골처럼 우려먹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 소설에서는 USB 슬롯을 탑재하여 인간의 지식을 업로드 한 고양이(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동물들이 인간들의 정보를 한데 모아 놓은 인터넷이라는 곳에 접속할 수 있고 인간의 축적된 지식을 한번에 받아들였다는 <개미> 시리즈에서 인류 문명을 학습한 개미 컨셉을 재탕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 중에 우연히 에드몽 웰즈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 교수의 존재를 알게 됐어. 그는 인간이 가진 방대한 지식을 한데 모아 저장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Encyclopé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이라는 걸 만들었어. 줄임말로 ESRA라고 부르지. 나는 여기에 착안해서 ESRAC, 다시 말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Encyclopé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 des Chats』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고양이종이 보유한 지식을 집대성하는 거지. 내가 말하고 싶은 좋은 소식이 바로 이거야.」 「네가 만들겠다는 〈백과사전〉에는 어떤 내용을 넣을 건데?」 「고양이에 관한 모든 걸 다 넣을 거야. 당연히 내가 너한테 여러 번에 걸쳐 들려주었던 고양이 선조들의 역사가 들어갈 거야. 이 소중한 지식의 보고가 안전하게 보관만 된다면 우리가 죽더라도 훗날 자손들이 발견해서 읽을 수 있겠지. 그러면 우리의 기억은 불멸성을 획득할 거야.」

 

마찬가지로 작가는 개미에서 우려먹던 인간이 다른 문명(동물)과 비교되는 특질들을 언급하며 다른 문명(개미나 고양이)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 집사가 〈너희 고양이들〉이 인간 문명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개념이 필요하대.」
첫째, 사랑. 둘째, 유머. 셋째, 예술.

 

삐딱한 두꺼비
두꺼비들은 매년 산란지에 가서 알을 낳고 다시 서식지로 돌아오기 위해 대이동에 나선다. 그런데 그사이에 고속 도로가 생겨 늘 다니던 길로는 서식지에 되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군집 본능을 가진 두꺼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함께 고속 도로를 건너다 차에 깔려 죽기도 한다. 물론 두꺼비들이 고속 도로 때문에 왔던 길을 통해 다시 서식지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알 리 없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지나다닌 길을 이용해 돌아가려 할 뿐이다. 그렇다면 도시화 이후 두꺼비는 멸종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일종의 집단 지성 덕분이다. 다수의 두꺼비가 익숙한 길로 가려 할 때 다른 길을, 다수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는 소수의 두꺼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는 두꺼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삐딱한 기질을 가진 이 두꺼비들이 조상들의 길을 따르지 않고 무모해 보이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직 두꺼비라는 종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12권

 

인간의 조건 : 사랑, 유머, 예술

내가 웃었다는 건 유머를 이해했다는 의미야. 그렇다면 이제 예술과 사랑, 이 두 가지를 체득하는 일만 남은 거야. 사랑에 관해서는 피타고라스가 투덜대지 말고 협조해 줘야 할 텐데. 

 

USB를 탑재한 사이보그 고양이들은 인류의 문명을 학습하면서 인류의 예술과 유머 사랑을 조금씩 이해해 가기 시작합니다.

소설 개미에서 개미문명과 인간문명의 각기 다른 개성과 정체성을 균형감있게 다룬것과 달리 이 소설에서는 관찰자 입장의 고양이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가벼운 풍자와 희화수준에서 끝나는 점은 이 소설의 또다른 아쉬운 부분입니다.

 

「누구를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존중부터 해야 한다는 걸 네가 알았으면 해. 인간들은 그걸 〈예의〉라고 부르지.」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네가 나한테 조금 무례하게 구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 예의라는 개념은 내가 잘 알아. 그건 아주 주관적인 거야.」
「〈안녕하세요〉, 〈잘 가요〉 하고 인사를 주고받으면 좋지 않아? 수시로 〈고맙습니다〉, 〈부탁드려요〉 하면 좋지 않냐고?」
나는 집사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다가간다. 나란히 걸으면서 그의 옆구리에 머리를 비벼 댄다.
「고양이들의 방식으로 이미 다 하고 있는 건데 뭘 그래.」
「일상화되진 않았어. 그리고 이건 특별히 너한테 하는 말인데, 민망한 얘기지만 음식을 너무 지저분하게 먹어. 씹지도 않고 게걸스럽게 쩝쩝 소리까지 내가면서.」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네가 남한테 매너 운운할 입장이야? 식사를 끝내는 순간 트림을 하는 네 행동은 예의 있는 행동이냐고?」
「그건 고양이한테는 예의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행동이야. 음식 섭취로 인한 공기 배출이니까.」
우리는 고양이 세계에 인간식 매너를 도입해야 하는지를 두고 계속 토닥거리며 싸운다.
「네 말은, 식사 전에 꼭 〈맛있게 드세요〉 하고 말해야 한다는 거야?」
「물론이지. 〈식도를 활짝 여세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그러고 나서는 또 〈어때요?〉라고 묻는 게 예의지.」
「그건 무슨 의민데?」
「〈소화는 잘되고 있어요?〉라는 의미야.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음식은 잘 내려가나요? 똥은 좋아요? 변비는 없고요?〉와 같은 뜻이지.」
「그런 게 예의고 매너라고?」
「그럼. 인간들은 그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가까워지거든. 아, 한 가지 생각나는 게 더 있어. 누가 재채기를 하면 〈몸조심하세요〉 하고 말해 주는 게 예의야.」

 

이쯤되면 이제 더이상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개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다른 작품들과 비교되면서 아쉬움이 많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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