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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인도 우화 모음집 :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by Caferoman 2022. 1. 20.

인도 우화를 엮은 우화집 :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진리와 이야기가 만났을 때

어느 마을에 두 여인이 살았다. 한 여인은 아름다운 데다가 옷을 잘 입어서 가는 곳마다 관심을 집중시켰다. 모두가 그녀와 얘기하고 싶어 하고,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또 다른 여인 역시 매력적인 면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난한 그녀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초라한 옷차림을 한 그녀는 좋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모두에게 주목받는 모습을 외롭게 쳐다보았다. 그녀에게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느 날 가난한 여인은 용기를 내어 아름다운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아름다운 여인이 친절하게 물었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가난한 여인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좋은 옷을 입어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하고 초라한 옷차림이어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해요. 하루만 당신의 옷을 빌려 입고 당신과 함께 거리를 걸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온 사람들이 나에게도 관심을 가질 것이고, 나도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 줄 수 있거든요.” 아름다운 여인은 그녀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었고, 다음 날 두 여인은 매력적인 옷을 입고 함께 거리를 나섰다. 평소처럼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찬사를 보냈으며, 그 옆의 멋진 옷을 입은 가난한 여인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함께 거닐면서 아름다운 여인은 가난한 여인과 대화를 나눴고, 그녀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가난한 여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그 여인이 매우 지혜롭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날 이후 두 여인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으며,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둘은 함께 세상을 걸어가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초라한 옷을 입은 여자의 이름은 '진리(truth)’를 상징하며 매력적인 옷을 입은 여자는 ‘이야기(story)’를 상징합니다. 이야기는 진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과 같으며 진리 역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이기에 우리는 생명력이 넘치는 이야기를 ‘진실한 이야기(true story)’라고 부른다는 점을 저자는 서문에서 언급하며 30년 인도여행을 통해 모아 온 인도 우화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예화를 들려주며 스승은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이야기이다. 그대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진리를 그대의 이야기에 담아야 한다. 그대의 진리를 곧바로 주장하면 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고집 세고 에고가 강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대의 진리에 그대만의 이야기로 옷을 입혀라. 그때 그 진리는 설득력을 지닐 것이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대는 먼저 삶을 경험해야 한다. 이야기는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가바드기타와 숯 바구니

늙은 농부가 산속 농장에서 어린 손자와 단둘이 살았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 식탁에서 오래된 경전 『바가바드기타』를 몇 장씩 읽었다. 손자는 할아버지를 닮고 싶어서 모든 것을 따라 했다. 하루는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처럼 매일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려고 노력해 왔어요. 하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에요. 이해한다 해도 책을 덮으면 금방 잊어버려요. 그러니 『바가바드기타』를 읽는 것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난로 속에 숯을 던져 넣던 할아버지가 손자를 돌아보았다. 조용히 소년을 바라보다가 난로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대바구니를 건네며 말했다.
“이 숯 바구니를 들고 강에 가서 바구니 한가득 물을 떠 오너라.”
소년은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강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물을 떠서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바구니 틈새로 물이 다 새어 나가 버렸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며 빈 바구니를 보여 주자 할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소년을 다시 강으로 보내며 말했다.
“바구니가 새니까 좀 더 빨리 뛰어야 물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소년은 다시금 강으로 내려가 바구니 한가득 물을 떠서 재빨리 뛰었다. 하지만 문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바구니는 다시 텅 비고 말았다. 자신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바구니를 손에 들고 가면서도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이 일을 시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일이에요!”
노인이 애정 어린 눈길로 어린 손자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너는 이것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 바구니를 잘 보거라.”
할아버지의 말에 소년은 바구니를 살펴보았다. 늘 숯을 나르는 데 사용해 온 바구니였다. 그때 처음으로 소년은 바구니가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언제나 숯 검댕이로 더럽던 바구니가 어느새 안과 밖이 햇빛에 빛이 날 만큼 깨끗해져 있었다. 그동안 바구니 안에 남아 있는 물만 생각하느라 바구니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았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바가바드기타』를 읽을 때 일어나는 일도 이와 같다. 너는 내용을 이해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읽은 것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경전 내용이 너의 마음 틈새로 다 빠져나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행위가 너의 안과 밖을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꾸준한 수행이나 명상이 우리 삶에서 하는 일이다.”

 

이 우화를 소개시켜줄 때 저는 뭔가 소년이 오며 가며 길가에 흘린 물로 꽃과 풀이 자랐다거나 작은 물줄기가 생겼다거나 하는 생산적인 이야기 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할아버지가 숯 바구니 새척을 시킨 이야기였네요.(그럴 거면 그냥 씻어오라고 하지 뭔 X고생을 시키는지... 아무튼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색적이고 오묘한 인도 우화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오늘이 길일, 내일은 오지 않는다

“길일이란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도록 ‘오늘이 바로 그 일을 하기에 길일’이라고 말해 온 것입니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곧 라마 왕자의 즉위식을 거행하십시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라마 왕자의 즉위식은 "길일을 찾아 자꾸 미루지 말고 하고자하는 일을 즉시 하라"라는 현자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해 내일 내일 하다가 결국 라마 왕자의 즉위식은 14년이나 미뤄지고 왕은 그 즉위식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자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수라발발타가 들려주는 무아지경

힌두교 경전에 등장하는 세 명의 아수라들은 처음에는 생명과 기운을 관장하는 선한 신들이었으나 차츰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신들에 밀려 이들과 대립하는 악신으로 여겨지게 되는데요, 인도 신화에서는 이 신들과 아수라들의 전쟁이 중요한 줄거리를 이룬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수라계에 사는 귀신들의 왕이기도 한 이 세 아수라들은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무적의 전사들로, 누구도 그들을 무찌를 수 없었다. 세 명이 합체하면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이 되어 백전백승이었다 그들은 싸울 때는 완전히 몰입해 싸움 그 자체가 되었다. ‘나’가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전적으로 행동 그 자체가 되었다. 싸우는 사람은 사라지고 싸움만이 남아 상대방과 싸웠다. 거기 ‘내가 한다.’는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이것이 누구도 그들을 이길 수 없는 승리의 비밀이었다.

‘내가 한다.’ 라거나 ‘나는 우월하다.’라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아 스스로 에고의 감옥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신적인 존재가 작은 자아로 바뀌었다. 그러자 그들을 이기고 붙잡아 가두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즉시 그들은 패배했으며, 그 즉시 포로가 되었다. 마지막 전투가 끝난 뒤, 승리를 거둔 아군 쪽 전사들은 승리의 진정한 공로자인 현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들을 맞이하며 현자가 물었다. “이제 그대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전사들의 지휘관이 말했다. “승리를 즐길 시간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가지고 온 선물은 도로 가져가고, 가서 그대들의 승리를 즐기게나. 나한테 감사해할 필요는 없네. 내가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네.” 그렇게 말하고 현자는 오두막 안으로 사라졌다.

 

모든 기술과 예술의 최정점은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

영국인들의 인도 식민 지배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인도를 손에 넣고 사업이 정착하자 영국인들은 식민지에서의 골치 아픈 생활도 잊고 여가도 즐길 겸 콜카타 외곽에 ‘로열 콜카타’라는 인도 최초의 골프장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골프를 칠 때마다 원숭이들은 골프공에 무한한 관심을 보이며 경기에 참가했다. 골퍼가 필드 안으로 공을 날려 보내면 나무에서 기어 내려온 원숭이들이 재빨리 필드를 달려가 공을 집어 들었다. 원숭이들은 골프공을 갖고 장난치다가 엉뚱한 곳에 던지고 달아나곤 했다. 당연히 경기가 지연되거나 무효화되고, 골퍼들 간에 시비가 붙기 일쑤였다. 그래서 매번 경기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수많은 원숭이를 잡아 먼 지역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방법도 영리한 원숭이들에게 통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골프를 즐기고자 했던 영국인들은 절망했다. 사람들이 작은 골프공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을 보고 원숭이들은 더욱 신이 나서 이리저리 공을 던지고 다니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원숭이들의 훼방에 골머리를 앓던 영국인들은 마침내 그 골프장에만 해당하는 특별한 규칙 한 가지를 만들었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자리에서 경기를 다시 시작한다.’ 더할 나위 없이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원숭이들로 인한 장애물에 화를 내고 경기를 포기하기보다 상황을 받아들여 새로운 놀이 규칙을 창조한 것이다. 그 결과 로열 콜카타 골프장의 골퍼들은 한층 재미있는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페어웨이의 잔디밭에 안착한 공을 원숭이가 집어 기다란 풀밭에 던지기도 했다. 정반대의 상황도 일어났다. 원숭이라는 예상 밖의 변수가 경기에 뒤지고 있던 사람을 승리하게 만들기도 했고, 이기고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을 무릎 꿇게 하기도 했다. 잘못 쳐서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공을 원숭이가 주워다가 홀컵에 정확히 떨어뜨리는 행운을 맛보는 사람도 생겼다. 원숭이들 덕분에 경기가 묘미를 더해 갔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 특별한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사람들이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좋은 운도 있고, 나쁜 운도 있다. 삶이라는 놀이의 결과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골프장에 난입해 공을 이리저리 옮기는 원숭이처럼 변수가 가득한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엮은이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구절을 언급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의 예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삶은 우리가 의도한 대로 진행될 의무가 없다. 기차는 지연되고, 차는 진창길에서 고장 나며, 면접 일정은 틀어지고, 멋진 계획은 엉망이 된다. 잘 나가고 있던 중에 갑자기 원숭이가 튀어나와 공을 홀컵에서 멀리 던져 버리고 그동안의 노력이 무효화된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하고,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며, 운명을 탓한다. 자신이 이 경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포기하려는 마음까지 먹는다. 그러나 삶은 우리의 계획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놀라운 일이 가능하다. 어느 소설가가 썼듯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할 때 더 나빠지고, 더 좋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할 때 더 좋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한다.

 

그쪽 업계도 먹고 살기 쉽지 않죠? : 붓다와 마라의 대화

붓다 : 마라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일은 잘돼 가는가?
마라 : 전혀 잘돼 가지 않아요. 마라로 살아가는 데 지쳤어요. 이제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요.
(아난다는 흠칫 놀란다.)
아난다 : (마라가 지쳤다니? 마라가 그동안의 악행을 참회라도 하러 왔단 말인가?)
마라 : 아실지 모르지만, 마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을 해도 수수께끼처럼 말해서 사람의 마음을 혼란에 빠뜨려야 하고, 무슨 행동으로도 유혹할 수 있어야 해요. 늘 그렇게 사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피곤해요. 하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한때 나에게 유혹당했던 내 제자들이에요. 그들은 이제 세상 분위기에 휩쓸려 사회 정의와 평화를 말하고, 평등과 해방과 비폭력 같은 것들을 주장해요. 이젠 그들을 방해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요. 그들을 당신에게 전부 입문시키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전성기도 이제 지났어요. 이제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요.
(아난다는 스승이 마라의 역할을 맡기로 결정할까 봐 겁이 나서 차를 우리는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붓다 : 그대는 부처로 살아가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대는 모르고 있다. 그들은 내가 전혀 하지도 않은 말들을 내가 한 말들이라고 선전한다. 큰돈을 들여 알록달록한 절들을 짓고 불단 위에 불상을 높이 세워 돈과 과일과 쌀을 끌어모은다. 모두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깨달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에고와 부를 위해 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내 가르침을 사업 용도로 이용한다. 마라여, 붓다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 어떤 것인지 그대가 안다면 그대는 결코 붓다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붓다와 마라, 서로 손을 잡고 한탄의 한숨을 쉰다.)

 

본래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믿는 신도들에 의해 종교의 본질이 퇴색하거나 변질되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종교에서나 있는 고민거리인가 봅니다. 위 이야기에서는 마라와 붓다와의 대화를 통해 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종교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저자는 인도에는 좋은 의미를 가진 인사말이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인도의 매력을 한껏 어필하고 있습니다.

 

나마스테 : 내 안의 신성이 당신 안의 신성에게 경배합니다.
하리옴 : 당신의 고통을 신이 제거해 주기를!
옴 나마 시바야 : 나쁜 일들을 시바 신이 파괴하기를!
마하데브 : 모두의 안에 있는 최고의 신
자이 람 : 당신이 승리하도록 신이 힘을 주기를!

 

인사가 아름다운 건 좋지만 그 전후로 오가는 호객행위와 야바위가 아름답지 못해서, 아직 인도는 짧게 한 번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그렇게 까지 미화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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