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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윈터(Winter), 마리사 마이어 : 마지막 멤버 백설공주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by Caferoman 2022. 1. 3.

루나 크로니클은 윈터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독서노트

“전하의 부모님께선 좋은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아름다운 것에서 따온 이름이니까요. 전하에게 잘 어울립니다.”
“겨울(Winter)”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요. 우리 모두가 완벽하게 준비된다면 참 좋겠죠. 하지만 신더, 그럴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겁니다. 결국 언젠가는 작전 짜기를 멈추고 실행에 들어가야 해요. 그게 바로 지금입니다.”

 

주인공 모두의 행복한 결말을 향해서

“여자 친구가 사이보그인 것도 모자라, 수배 중인 범법자에, 약혼녀의 조카라니……. 이래저래 희한한 경험이겠습니다.”

 

이제 신데렐라와 빨간망토, 라푼젤과 백설공주가 모두 등장해 이야기의 결말로 향할 차례입니다.
루나 크로니클의 네번째 여주인공은 백설공주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윈터(Winter)입니다.
루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미모의 공주이지만 정신적인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여왕 레바나의 보호감찰아래 갖혀 지내게 됩니다. 크레스를 구출 시키는 과정에서 붙잡힌 스칼렛(빨간망토)은 애완생물로 윈터에게 주어집니다. 이로 인해 윈터와 신더일행은 단절된 정보의 파편을 조금씩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사냥꾼은 백설공주를 사랑해서 죽일 수 없었다.

“친애하는 클레이 근위병.”
레바나가 그의 절박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이 부탁이 네게 얼마나 어려울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자비를 베풀고 있는 거야. 너라면 공주를 빨리 죽여줄 게 아니냐? 공주는 고통받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겠지. 그러면 나도 걔 아버지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렇지 않느냐?”

 

윈터와 가까이서 윈터를 보좌하던 제이신은 소꿉친구를 넘어선 미묘한 기류가 감지됩니다. 결국 이 감정을 이용해 여왕 레바나는 이를 위한 조치를 취합니다.

 

“제이신, 그런데 레바나가 정말로 누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어요? 당신이 윈터 공주를 죽이지 않으면?”
“당연히 그랬죠. 그게 레바나가 늘 쓰는 수법이니까요.” 크레스는 가슴이 아렸다. 윈터도 안타까웠고, 목숨을 위협당한 그 사람도 안타까웠다.
“누군데요?”
제이신은 크레스에게서 몸을 돌리고 서랍장의 물건을 뒤적거렸다.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그는 서랍 안만 들여다보면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별로 중요한 사람 아닙니다.”

 

레바나 여왕은 자신의 부하들의 약점을 이용해 네가 A를 죽이지 않으면 B를 죽이겠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볼모로 살인을 강요합니다. 원작 백설공주에서 숲속에서 백설공주를 죽인 뒤 그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던 왕비의 내용과 잇닿아 있는 부분이지요.

 

능력자들 대결 들어갑니다.

신더는 시야에 일어나는 혼선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놔둬보기로 했다. 그녀의 뇌에 결합된 기계 장치가 시각 정보를 판별하고 조합할 수 있도록. 레바나의 마법은 생물학적 작용이다. 사람의 신체에서 발생하는 생체전기를 이용해 뇌에 미세한 전파를 일으켜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 생각과 행동 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반면 프로그램과 디지털 정보와 논리적 연산으로만 작동하는 신더의 사이보그 두뇌는 생체전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신더가 루나인의 마법에 노출되면 그녀의 자연적 두뇌와 인공두뇌가 서로 충돌했고, 시스템이 어느 쪽의 판단을 따를지 결정하느라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였다.

스칼렛에 대한 울프의 감정이 그의 동물적인 본능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저 병사들을 보니 그들에게도 울프와 비슷한 종류의 본능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방금 혁명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해서, 살인마들이 갑자기 한 소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이타적인 욕망을 느낄 수도 있단 말인가? 어쩌면 너무나 오랫동안 폭력과 어둠의 갑옷을 뒤집어쓰고 살아왔기에 변화가 더욱 급격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더 의미 있는 것을 절실히 갈구하게 된 것이다.

이코가 소파 위를 다 차지한 신더의 발을 밀어내고는 옆자리에 앉았다. “안드로이드는 원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들어졌잖아.” 신더는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말했다. “너 아직 안드로이드였어? 나는 가끔 까먹어.” “나도 그래.” 이코가 고개를 움츠렸다. “왕궁 발코니에서 네가 뛰어내리는 걸 생중계로 봤을 땐, 너무 겁이 나서 전선에 불이 붙는 줄 알았어. 그리고 딱 이런 생각이 들더라. ‘신더를 구해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거야.’” 이코가 카펫에 굴러다니는 나사 몇 개를 걷어차고는 말을 맺었다. “인격이 아무리 정교하게 발전해도 기본적인 프로그래밍은 어디 안 가나 봐.” 신더는 잼이 묻은 손가락을 핥으면서 씩 웃었다. “그건 프로그래밍이 아니야, 바보야. 우정이지.” “그럴 수도 있겠다.”

크레스는 암호를 뚫으면서 동시에 프로토콜들 사이를 누비고 나아갔다. 마치 안무가 정해진 춤을 추는 것처럼, 근육은 지쳤을지라도 몸은 스텝을 기억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단편 단편일줄 알았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이고 주체할 수 없이 커진 판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에 네번째 시리즈 윈터는 분량이 앞선 시리즈 3권보다 훨씬 많습니다. 단순히 백설공주에 대한 결말만 낼 수는 없는 입장이거든요.
이 시리즈를 통해서 그동안 미완의 과제이던 신더와 스칼렛, 크레스의 결말을 위해서 네 여인의 어벤저스 팀은 각자의 결말을 향해 갑니다.

 

공주의 생존을 확인하고서 직접 공주를 죽이러 나선 여왕

윈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새콤한 사과맛 사탕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제과점 진열장 안에서 막 꺼낸 것처럼 매끈하고 예쁜 사탕이었다. “어머나, 맛있게도 생겼네.” 노파가 고개를 빼고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도 어렸을 때 먹어봤어요. 사과맛이지요?” “맞아요.” 윈터는 그녀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할머니도 하나 드세요. 이걸 제게 전해주셨으니 감사의 뜻으로 드리고 싶어요.” 노파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정 그러시다면…… 한입 먹어도 죽지야 않겠지요. 그럼 저는 이걸 먹을게요. 봐요, 요건 껍질에 금이 가 있잖아요. 공주님께 이런 못난 걸 드릴 수야 없지요.” 노파가 사탕을 집어 들면서 과감한 눈빛으로 윈터를 마주보았다. “공주님과 간식을 나누어 먹다니. 아름다운 윈터 공주님께서 직접 하사하신 사탕이라니! 이런 영광이 또 있을까.” “할머님은 정말 친절하시네요.” 윈터는 나머지 사탕을 집어 들고 텅 빈 상자 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제이신이 남긴 단서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윈터는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탕 때문이 아니라, 비록 멀리서라도 제이신을 보았고 그가 무사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윈터는 사탕을 이 사이에 물었다. 노파는 윈터를 지켜보면서 똑같이 행동했다. 둘은 동시에 사탕을 깨물었다. 윈터의 혀 위에서 파삭파삭한 껍질이 깨지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잼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노파는 이 사이에 빨간 사탕 조각이 끼어 있는지도 모른 채 벙긋 웃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흡족하군.” 윈터는 사탕을 삼켰다. “저도 기뻐요. 할머님 덕분…… 에…….”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말꼬리를 흐렸다. 노파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쩐지 낯익었다. 히죽 웃는 저 입매가 특히 그랬다. 은근한 경멸감이 배어나는 저 도도한 웃음이.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위기의 절정을 꼽으라면 바로 마녀로 분장한 여왕이 독이든 사과를 백설공주에게 먹이는 장면일텐데요. 이 소설에서도 근위병에게 암살을 요청했음에도 버젓이 공주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뒤 레바나 여왕이 직접 나서서 공주를 처리합니다.

 

윈터를 마주보는 에이머리의 얼굴에 순수한 증오가 서렸다. 윈터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당신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를 받아들였어야 했어.” 윈터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봤자 그 관계는 거짓이었을 거야. 나를 괴롭히는 환각과 다를 바 없는 가짜가 됐겠지.” “그래서 대신 선택한 게 겨우 저 덜떨어진 근위병인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 제이신은 내 삶에서 유일하게 진짜인 사람이야.”

 

과연 네 여인의 결말은

윈터는 이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그동안 등장한 네 여주인공에 대한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소설 레바나는 외전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혹시 이 소설을 정주행 하실 분이라면 아래 부분 내용은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딱히 결말에 어떤 반전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 우리가 알던 이야기대로니까요.

 

“문제가 뭐냐면…….” 카스웰은 신발을 신은 채 침대 위에 올라와 그녀 곁에 털썩 누웠다.
“나처럼 감옥이나 들락거리는 도둑놈에게는 네가 너무 아깝다는 거야.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해. 나도 인정하는 사실이고. 그런데도 너는 내가 네 절반만큼이라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카스웰은 크레스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맺었다.
“언젠가는 네가 결국 진실을 깨닫고 나를 떠날까 봐, 그게 가장 무서워.”
“카스웰…….”
“걱정하지 마.” 그가 크레스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범죄의 천재인 내게는 다 작전이 있으니까.” 카스웰이 헛기침을 하더니, 허공에 빗금을 긋는 시늉을 했다.
“첫째, 제대로 된 직장 구하기. 완료. 둘째, 법적으로 내 소유인 우주선 갖기. 진행 중. 셋째, 신더가 세상을 구하는 걸 도와서 내가 영웅이라는 걸 증명하기. 아, 이것도 이미 했네.” 그는 윙크했다.
“그리고 이제 도둑질도 그만둘 거야. 네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네 꿈을 모두 이루어주고. 하지만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겠지.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내가 네 생각보다 가치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네가 깨달을 때쯤이면, 나는 지금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카스웰은 씩 웃으며 우쭐거렸다.
“그래, 말이라는 게 이렇게 나와야지.”
“멋진 연설이었어요.” 크레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알아.” 카스웰이 그녀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
“함장님.”
“크레스.”
이 순간 크레스는 카스웰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말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처음 사막에서 그에게 이 말을 했을 때보다 훨씬 더 두려웠다. 지금 이건 현실이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카스웰이 조용히 웃더니, 그녀에게 고개를 기울여 관자놀이에 키스했다.

“여기, 주고 싶은 게 있어요.”
“약혼반지는 아니길 바라요.” 카이토는 멈칫하며 입술을 오므렸다. 자신이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 했는지 후회하는 눈치였다.
“장갑도 곤란해요. 지난번에도 장갑 선물은 잘 안 먹혔잖아요?” 카이토는 웃음 띤 얼굴로 한 발짝 다가오더니,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신더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신더…….”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날뛰었다.
“잠깐만요.”
“이걸 주려고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카이토…….” 카이토는 정치 문제를 다루듯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등 뒤에 숨겼던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작은 금속 발이 들려 있었다. 관절 부분에 기름때가 덕지덕지 끼고, 부러진 발목의 구멍 안에서 끊어진 전선들이 삐죽삐죽 솟아나와 있는 발. 신더는 참았던 숨을 내쉬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많이 실망하셨나요? 루나의 커다란 보물 창고에 한 자리를 비워두고 내 선물만 기다리고 있었다거나…….”
“시끄러워요.” 신더는 금속 발을 받아들고 손 안에서 뒤집어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는 항상 이걸 없애려고 했는데 결국 내 품으로 돌아오고야 마네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갖고 있었던 거예요?”
“이 발이 맞는 사이보그를 찾게 되면, 우리가 운명이라는 뜻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카이토가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작은 발은 여덟 살짜리 아이한테나 맞겠더군요.”
“정확히는 열한 살 때 맞춘 발이에요.”
“그 정도면 제 예상 범위 안이네요.” 카이토는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게 당신과 이어질 수 있는 유일한 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가 두 번 다시 못 볼 줄 알았으니까요.”

카이토가 비로소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한 팔을 둘렀다. 그의 품에 기대면서 신더는 구태여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아르테미시아 호수와 백색의 도시, 그리고 별들에 둘러싸인 행성 지구가 펼쳐져 있었다. 신더는 거추장스럽고 징글징글한 기계 발을 손 안에서 굴려보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평생 동안 이 발은 골칫거리였다. 자신이 쓸모없고 무가치한 사이보그에 지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되새기게 했던 애물단지. 신더는 기계 발을 호수에 떨어트렸다.

윈터는 제이신에게 바싹 붙어 앉아서 팔짱을 꼈다.
“우리 재밌는 놀이 하자. 내가 너를 사랑 안 하는 척하는 것 그만두기 놀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을 때부터 나는 너를 사랑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놀이.” 제이신이 윈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쩌면 모든 독자들이 기대하고 예상했을 결말일 것입니다.
루나 크로니클 4부작은 처음에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그 흡입력에 순식간에 정주행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나머지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신더(Cinder)부터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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