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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치사회

386 세대유감, 김정훈 외 :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by Caferoman 2021. 9. 9.

독서노트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 프리드리히 니체

 

386세대 :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 1960년대생
  • 이들이 50대가 되었을 때 586세대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86세대라고 불린다.
  •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일부 베이비부머 세대와 겹치기도 한다.
  • 민주화운동을 이끌었으며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세대로 노력을 통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386세대의 정의는 8,90년대 당시 30대인 80년대학번의 60년대 생을 말합니다.

80386이라는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되던 당시 주축 세력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구요.

 

죽창을 들고 맞선 386세대

잠시 시계를 돌려 1980년 5월 18일과 1987년 6월 10일로 거슬러 가보자. 우리가 그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무자비하게 시민을 짓밟는 계엄군에 대항해 총을 들고 싸울 수 있을까? 독재에 맞서 짱돌이든 죽창이든 들고 거리로 나설 수 있을까?

1980년대 군부독재의 긴 장막 속에서 젊음이 한창이던 386세대도 그랬을 것이다. 독재정권과의 싸움에서 언젠가 승리하리라 믿었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에 내 젊음과 목숨이 먼저 소멸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들이 느꼈을 공포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고서는 감히 그들의 번뇌를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런 386세대의 경우 민주화에 있어 끝에 불합리와 불의에 대항해 투쟁끝에 승리한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입니다. 누구보다 진보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던 세대는 이제 사회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386세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86세대와 서태지와 아이틀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거 자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거짓된 너의 가식 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매 다니네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 날이 오늘 바로 올 것만 같아 ─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유감〉(1995) 중에서

 

90년대에 서태지는 전 세대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하나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컴백홈〉(1994)을 듣고 가출 청소년들이 귀가하는 사례가 뉴스로 보도되기도 하고 음반산업에 있어 사전심의제도로 인해 가사 전곡을 통으로 삭제해야 했던 노래 <시대유감>과 이를 전세대의 거센 항의로 정부를 압박해 결국 사전심의제도가 〈시대유감〉 발표 이듬해에 폐지되기도 하는 등 서태지는 당시 예술문화 산업의 변화를 주도해 갔습니다.

 

"노래 한 곡으로 집 나간 청소년들을 귀가시키고, 앨범만 나오면 밀리언셀러가 되고, 옷 한번 갈아입으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패션이 바뀌는 이유. 입시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목적의식-자유에의 도전과 희망을 안겨준 이 시대 청소년들의 전도사 서태지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듣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에 몰두하게 만든다" - 조병도, 1995, 월간조선

 

꼰대가 되어버린 386

“입만 놀리고 손발은 까딱 안 하는 월급루팡.” “신입은 컴퓨터활용자격증에 토익도 만점인 사람만 찾으면서 정작 영어 한마디 엑셀 한 줄 쓸 줄 모르는 무능력자.” “스펙만 높고 일은 할 줄 모른다고 후배들 야단치면서 일 터지면 정치권 동창에게 전화 돌려 처리하고 법카로 생색내는 구악.” “거악(巨惡, 독재)과 싸운 과거 팔아먹고 살면서 생활 속 소악(小惡)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이중인격자.” “자기들은 꿀 빨아먹고 헬조선 만든 이들.”

추억으로 운동을 이야기하는 사람 많다 운동한 기간보다 운동을 이야기하는 기간이 더 긴 사람이 있다 몸으로 부닥친 시간보다 말로 풀어놓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운동 현재가 없는 운동을 현재로 끌어오는 그들의 공허함 ─ 도종환, 「운동의 추억」(1998)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퇴근 후에 넥타이를 풀고 찾아와 옛 추억에 잠겨 노래 한 곡 워어어어 케케묵은 노래들을 불러대며 울어대네 아름다운 젊음이여 흘러간 내 청춘이여 너희들이 정녕 민주화를 아느냐 이 손으로 일군 민주주의 대한민국 요즘 어린 것들은 몰라도 한참 몰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밤섬해적단, 〈386 sucks〉(2010) 중에서

 

저자는 한때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불의와 불합리에 투쟁하던 그들이 어느새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고 꼰대가 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들 전후세대로부터의 평가가 그닥 호의적이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 조지 오웰

븅신이 븅신인걸 알면은 븅신 아냐
븅신은 븅신이 븅신처럼 븅신인걸 몰라야 븅신
븅신 눈엔 모두가 븅신
또 모두에겐 모두가 븅신.
- P-Type, 동전한닢 Remix verse

 

용이 날수 있는 개천에 살던 386, 먼지가 되어버린 뒷세대

대치동에 직접 가서 보니 괴상한 풍경이 많았어요. 어린아이가 큰 가방을 매고 한 손에는 신용카드를 들고 돌아다녀요.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식당에 아이들이 우글우글 들어와서 먹고, 또 어딘가로 공부하러 가요. 이렇게 대한민국이 굴러가고 있더라고요 - 조현탁〈스카이캐슬〉감독

1980년대 대학생에게 학점관리, 영어성적, 자격증, 어학연수를 준비했는지 물어본다면, 당신은 필시 개념을 탑재해야 할 계몽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민족, 민주, 통일의 고담준론이야말로 대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으며, 이 특권은 곧 낭만이었다. 386세대가 낭만적일 수 있었던 이유의 8할은 걱정 없는 취업 환경 덕분이라 할 수 있다. 386세대가 20대 후반을 달리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반도는 하늘이 열린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가고 싶은 회사에 골라서 갈 수 있었고, 대학 졸업장은 대기업으로 향하는 프리패스 입장권이었다. 기업은 아무런 증명서 없는 자를 인재라 부르며 극진히 모셨다. 스펙 경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중반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던 이들에게 “그땐 회사를 골라서 갔다면서요?”라고 물으면 대개는 멋쩍은 웃음을 흘릴 것이다. 달러와 유가, 금리가 모두 낮았던 ‘3저 호황’의 시대에 취업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쏟아지는 듯한 축복조차 모두에게 내려지지는 않는다. 경제가 나아졌다지만 대학 졸업자의 수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모든 이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늘 열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 세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재자가 허용한 효율과 성장의 과실을 맛보며 10대를 보내고, 두 번째 독재자가 교육의 평등을 설파하며 내건 교육개혁조치의 수혜로 20가 되었으며, 반(半)독재자가 내민 200만 호 아파트 건설 카드와 청약통장 덕에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어 중산층에 진입한 386세대가 과연 이후 세대들이 겪은 취업난과 주택문제, 결혼과 출산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386은 그저 운이 좋아서 좋은 시기를 타고 난 것은 아닌지? 태생적으로 불운한 환경속에서 이후 세대에게 ‘우리는 안 그랬다’며 ‘노오력’을 강조하는 386의 경험담이 과연 유효한지?를 고민해봐야합니다.

 

3포 세대 5포 세대 그럼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 왜 해보기도 전에 죽여 걔넨 enemy enemy enemy ─ 방탄소년단, 〈쩔어〉(2015)

 

먼지 같은 일을 하다 먼지가 되어버렸어. ─ 윤태호, 웹툰 〈미생〉

 

386, 공성의 시대를 지나 수성의 시대로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이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지적합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특정한 경향성을 보이는데, 이를 연령 효과(age effect)라 한다. 이러한 연령효과와 더불어 동일한 시기 특수한 경험을 공유하며 세대가 동일한 특질을 공유하는 효과를 코호트 효과(동년배 효과) 라고 하는데 이러한 효과의 조합으로  386세대는 한때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진보적인 청년들이 이제는 "라떼는 말이야"를 남용하는 보수주의자가 되어갑니다.

 

코호트(cohort: 동년배) 효과

코호트는 고대 로마 군대의 세부 조직 단위에서 유래한 단어로, 이들이 함께 훈련하고 생활하고 전쟁하는 과정에서 높은 내부적 동질성을 가졌듯이 같은 시기를 살아가며 특정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들의 집합을 뜻한다. 젊은 시절 특수한 경험을 공유한 세대는 그만의 고유한 특징을 평생 안고 간다. 한창 정체성이 형성되던 때에 일제의 식민 지배를 겪었던 세대는 일본에 대한 반감과 익숙함을 동시에 품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게 된다. 한국전쟁을 치렀던 세대라면 누구라도 전쟁과 가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세대’라는 용어는 이런(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종종 세대 담론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것이 ‘역사성’과 ‘공간성’이라는 구체성을 추상성에 덧붙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우석훈ㆍ박권일, 2007).

 

 

오늘날의 386세대는 정리해보면,

  • 실패의 경험 없어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음
  •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고한 투쟁력을 가지고 있(었)음
  • 타협하기 어려운 상명하복의 교조적 문화
  • 다른 목소리를 포용하지 않는 적대적 계파주의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자나 깨나 민주주의를 원했던 386세대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남을 수 없는 한계는 이런 DNA 때문이었는지도, 이들은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챙취하려 노력했을 뿐, 민주주의를 즐겁게 향유하는 법을 익히지는 못했는지도 모른다며 386세대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던 첫 사업장,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노노(勞勞)갈등 양상이 계속됐다. 기존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건 없는 정규직 전환을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전교조 역시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한국지엠에서는 노사가 ‘인소싱(조직의 서비스와 기능을 조직 안에서 총괄적으로 제공, 조달하는 방식)’에 합의했는데, 이로 인해 비정규직의 일감을 정규직이 가져갔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꺼번에 공장 밖으로 쫓겨났다.
이런 밥그릇 쟁탈전이 또 있을까. 한발 앞서 더 단단한 밥그릇을 껴안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한발 늦게 ‘같이 살자’고 달려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뿌리쳤다. 때로는 그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숨통을 막는 데 정규직 노조와 사측이 손을 잡았다. 비정규직의 적(敵)은 정규직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한때 ‘대의’를 외쳤던 이들이 비정규직 계약서를 내밀고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는가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노-노(勞-勞)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면, 세대 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386세대는 이제 ‘수성(守城)’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1987년 전두환이 공고하게 세워놓은 ‘호헌(護憲)’의 성을 무너뜨리는 것에서 시작한 공성의 시대가 문재인 정부와 함께 이제는 수성의 시대가 되었는데요, 그렇게 사회의 기득권을 잡게된 386세대가 낡은 게임판의 주인공을 고수할 것인가, 새로운 게임판의 조력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이책을 읽고 난 뒤에서 계속 생각해 볼 문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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