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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치사회

시민의 교양, 채사장 ch.2 인문서적 계 도란검 : 직업, 교육, 정의

by Caferoman 2021. 9. 1.

시민의 교양 - 채사장

독서노트

내가 선택한 직업 안에서 발생하는 인간적인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갈등은 우연적이라기보다는 직업군의 관계 양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직업 선택에서 고려되는 세 가지 : 보람, 수익, 리스크

오늘날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과 노동에서 보람과 성취를 느끼기 어려운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대부분의 성취와 보람은 사업가와 투자가가 향유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보람에서 배제된 노동자에게는 수익과 리스크가 남는데요, 이에 노동자는 배제된 성취와 보람 대신 임금으로 이를 보상 받고자 하나 이 역시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수익에 의한 보상에서도 소외되곤 한다고 말합니다. 사업가와 투자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레버리지를 통해 극대화 된 수익률은 오직 사업가와 투자가 만이 향유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동자가 그나마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만족스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리스크의 회피인데 이 마저도 최근의 노동시장 유연화 때문에 이마저도 박탈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비정규직의 확대는 단순히 노동시장의 유연화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를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동시에 리스크까지 높이는 제도는 불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노동자가 비정규직의 확대에 저항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서 매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일로 볼 수 있으며, 만약 특정 정부가 노동자의 임금 인상 없이 규제 완화를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만을 추구한다면, 그 정부는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객관주의 인식론에 기반한 대한민국 교육체계

오늘날 학교라는 형식에서 우리가 실제로 교육받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에 대한 이념’과 ‘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체화한 채로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나온다.

 

객관식 평가는 몇 가지의 보기 중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보기 중에 정답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맞다, 틀리다’의 채점 과정, 이에 따른 교사와 부모의 감정적인 반응은 학생으로 하여금 정답에 대한 환상을 강화하게 한다. 세상에는 맞는 것이 있고, 틀린 것이 있다. 결국 12년 동안 객관식 평가에 노출된 개인은, 진리는 실재하는 것이며 세상은 옳음과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세계관을 뿌리 깊게 내재화한다.

 

서술식 시험을 생각해보자. 질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하나의 글로 서술하는 형식이다. 단순히 정답을 맞혔는지가 아니라, 평가자를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형식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로서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세계에 고정되고 불변하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은 ‘맞거나, 틀리거나’의 문제도,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니다. 사회 문제의 본질은 이익의 대립에서 발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서로가 얻고자 하는 이익과 감수할 수 있는 손해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공립교육을 거친 우리에게 깊게 내재되어 있는 객관주의 인식론을 짚어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창의적인 인재, 융합형 인재 등 사회에서 끊임없이 창의성을 요구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의 틀은 여전히 정답과 오답을 가려내는 사고방식을 강화하는데에 그치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게합니다.

 

우리는 진리가 실재한다는 절대주의 세계관에 익숙하다. 반대로 고정된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와 여기서 파생되는 다양성에 대한 담론들에 불편해한다.
우리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 세금과 복지의 문제를 합의와 절충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 선과 악의 이념 대립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는 사회의 부조리로 발생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이라는 형식은 이러한 문제의 책임을 사회에서 개인으로 전환한다.

또한 한국사회에서의 입시와 취업에서 직면하는 살인적인 경쟁률은 과연 이것이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문제로 단정지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여부를 논하기 전에 비정상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물음이 필요함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안타깝게도 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개인이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동안의 의무교육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경쟁의 정당성을 내재화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교과 내용에 경쟁의 정당성이 나온다는 것이 아니다. 시험과 평가라는 학교 교육의 형식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1,000대 1에 육박하고 매년 공기업과 대기업의 취업 경쟁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공정하게 시험이 치러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결과를 정당하다고 믿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2014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자는 2,588만 명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200만 명 정도가 대기업에 취업한다. 전체 취업자의 7.7% 정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인들은 7.7%밖에 되지 않는 대기업 취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그들이 욕심쟁이이거나 허세가 많거나 문제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양질의 일자리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극심한 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7.7%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상위 8%의 서울권 대학교에 진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고 빈부격차로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면 그 어떤 경쟁도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대립하는 두 가지 경제체제의 방향성이었다. 우선 일자리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낮추는 시장의 자유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소득자와 기업의 세금을 높이고 고용과 관련된 복지를 확대하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정의에 대한 두가지 관점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은 ‘유스티치아(Justitia)’로, 그녀의 이름에서 정의를 뜻하는 ‘Justice’가 발생했다. 정의의 여신은 안대를 두르고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그것은 공정함에 의한 심판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고 정의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하는 것을 ‘배분적 정의’라고 하며 같은 것을 같게 대하는 것을 ‘평균적 정의’라고 합니다.

 

이 정의는 또다시 관점에 따라 수직적 정의관과 수평적 정의관으로 나뉘는데요,

수직적 정의 관의 경우 이미 형성되어 있는 수직적 질서를 준수하는 것으로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은 사람, 법을 준수하는 사람과 준수하지 않는 사람, 같은 민족과 다른 민족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정의 입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다른 것은 다르게’ 분배해야 한다는 ‘차등적 정의관’에 부합합니다.

 

반면 수평적 정의관의 경우 정의로움이 수평적인 평등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즉 모든 사람은 성별, 인종, 나이, 지역, 부에서 어떠한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되며 소외계층의 경우 그들의 인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는 그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같은 것을 같게’ 분배해야 한다는 ‘평등적 정의관’에 부합합니다.

 

나의 세계관과 타인의 세계관이 다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소통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소통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소통의 시작은 내가 타인의 세계관을 논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시 말해서 타인이 나와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정의는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된다. 윤리, 경제, 정치적 측면

윤리적 측면에서의 정의는 ‘정의로움’을 의미한다. 정의로움에 대한 판단은 두 가지다. 어떤 사람은 수직적인 정의관을 갖는다.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하고, 내 집단과 타자를 구분해서 차등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정의롭다는 관점이다. 이에 반해 어떤 사람은 수평적인 정의관을 갖는다. 모든 사람이 최대한 동등한 권리를 갖고 평등해질 때 정의가 실현된다고 믿는 관점이다. 이들은 경제력, 인종, 성별, 지역에 따른 차별을 극복하고자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정의는 ‘분배’를 의미한다. 분배로서의 정의는 사회적 생산물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차등적 분배와 균등적 분배로 구분된다.

 

정치적 측면에서의 정의는 ‘선택’이다. 시민들은 정치적 선택을 통해 그 사회의 정의를 확정하고, 이것은 구체적인 경제체제로 드러난다. 시민들의 합리적 선택을 위해서는 우선 현재 한국의 위치가 확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율을 고려할 때, 한국은 신자유주의에 속해 있다. 다음으로 현재의 위치를 기준으로 앞으로의 방향성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보수적 세계와 진보적 세계를 선택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의 선택은 극단적인 끝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한발 더 나아갈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통화 :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 수요와 공급의 관계, 생산비용의 변화, 통화량

통화란 ‘유통화폐(流通貨幣)’의 줄임말로, 쉽게 말해서 시장에서 움직이고 있는 돈을 말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비투스는 20세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회학자인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이다. 보통 ‘습관’이나 ‘습속’으로 번역되고, 영어에서 습관을 의미하는 ‘Habit’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습관이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형성되는 습관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특정한 사회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 개인의 사고나 행동의 일정한 패턴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앞두고 있는 까닭에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의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자산 가치의 하락과 소비심리의 위축을 일으켜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정부는 인플레이션 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통화량 팽창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환율을 상승시켜 수출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 것이다. 이로 인해서 수출 중심의 대기업이 이익을 얻고, 소비자와 노동자로서의 개인의 희생이 커질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건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관성처럼 하나의 방향을 선택하고 있는 거지요. 우리는 매번 현재를 유지하는 선택을 해온 것입니다.

시민은 놀랍도록 참을성이 강해서 문제가 악화되는 시점까지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가시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무 늦어 사태가 악화되었을 때가 보통이지만, 시민의 움직임은 사회의 분위기를 역전시킨다.

시민이 권리와 의무로서 직업을 선택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존하는 많은 직업의 영역이 급속도로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되고 있는 오늘날, "노동, 작업, 행위"가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했던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테크트리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닥치고 정치 - 김어준> , <보수의 재구성 - 박형준,권기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와 같은 책들이 자연스럽게 그 다음 독서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나름 개인적인 정치색에 치우치지 않게 다음 정치사회관련 도서를 선정하려 했으나 역시 취향의 문제인지 닥치고 정치는 다 읽는데 한 주로 충분했으나 보수의 재구성은... 일단 너무 재미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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