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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치사회

닥치고 정치, 김어준 ch.2 : 10년전 그들의 평가 , 연애에 서툰 좌파

by Caferoman 2021. 8. 23.

닥치고 정치 - 김어준

독서노트

노무현은, 내가 아주 어린 시절 옳다고 배운 모호한 정의에 대한 감각, 우리 편은 이기고 나쁜 놈은 진다는 수준의 정의에 대한 감각,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반드시 그렇진 않다는 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싶은 그 정의에 대한 원형질에 가까운 감각이, 사람으로 체화된 상징이야.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살아 있던, 그런 단순한 정의를 믿었던 어린아이의 동반 죽음이야. 내 안의 어린아이가 죽은 거라고.

 

2021년 돌아본 2011년의 평가들

이 책은 2011년에 쓰여졌고 당시 사회적 배경은 문재인 - 박근혜 후보가 경합을 벌인 2012년 대선 이전이고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되기 훨씬 이전이고 이건희가 버젓히 살아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정치 사회에서의 주요 키워드를 언급한 대목이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와서 다시 보니 무척 인상적이네요.

 

문재인

몸에 어떤 요소가 부족하면 우리 몸은 알아서 그 요소를 섭취하려 하거든. 문재인은 지금 시대가 섭취하고자 하는 요소의 집합체야. 문제는 문재인 본인이 자신은 적절한 영양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문재인의 유일한 약점은 문재인을 과소평가하는 유일한 사람이 문재인 본인이라는 거지.

 

그런데 문재인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런 방식의 언어를 구사한다고. 역사와 소명 어쩌고저쩌고. 조까라 그래.(웃음) 그건 그 사람더러 죽으라는 얘기야. 나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요구라고 생각해. 원하지 않았음에도 역사가 요구한 자신의 몫은 이미 충분히 다한 사람이야. 난 그게 아니야. 이길 수 있으니까 나오라는 거야. 나오면 이긴다니까. 씨바.(웃음)

범인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 아무리 지지율이 높게 나와도 그냥 던져버릴 수 있고, 지지율 1위도 역사를 위해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실제로 존재한다. 문재인은 그런 사람이다. 이런 게 바로 어떤 이념이나 이익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고결한 인간의 정신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게 사람들이 원하는 정치의 본질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혼신을 다하되, 그 안에 정작 자기는 없는 거.

 

문재인은 단순하고 담백하다. 특전사 나오고 사법연수원 차석 했으나 평생 구조와 프레임에 맞서며 인권변호사 하다 청와대까지 운영하고도, 자신은 절대 정치하지 않겠다고 첫사랑인 부인과 시골로 내려간 사람. 그러던 그가 노무현의 운명을, 결국 자신의 운명으로, 역사로 받아들인다. 정치 아니다. 인간 문재인의 도리다.

 

박근혜

그녀는, 남친 때문에 고민해본 적 없고, 섹스 트러블로 고민해본 적 없고, 결혼 때문에 고민해본 적 없고, 결혼해본 적 없고, 결혼 이후의 애정 문제로 고민해본 적 없고, 아이 낳아본 적 없고, 아이 교육 때문에 고민해본 적 없고, 이혼할까 고민해본 적 없고, 고부 갈등 겪어본 적도 없고, 시댁과 불화 겪어본 적 없고, 전세금 고민해본 적 없고, 대출 상환 고민해본 적 없고, 급여 문제로 고민해본 적 없고, 내 집 마련 고민해본 적 없고, 선생님 촌지 줘본 적 없고, 남편 승진에 스트레스 받아본 적도 없고, 자기 취업 고민해본 적 없고, 자식 취업 고민해본 적도 없고, 자식 결혼 고민해본 적 없다. 그럼 일반적인 삶의 고민 중 최소 90퍼센트는 해보지 않은 거거든.

 

검찰

권력의 진짜 힘은 기소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기소하지 않는 데 있는 거라고

검찰은 기소권이란 권력을 가진 채, 아까 이야기한 고 3 수준의 인정 욕구에, 검사는 모두 검찰총장 아래 하나라는 검사동일체 원칙까지 더해져, 마치 면허 가진 조폭처럼 행동한다고.

 

노무현

김대중은 너무 늦게 대통령이 됐고, 노무현은 너무 일찍 대통령이 됐어. 그리고 노무현은 너무 일찍 가버렸고, 김대중은 너무 기력이 없었어.

 

평생을 업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아무런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으로 살아내는 자는 극히 드물다고.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야. 타고나야 하는 거야. 가르치거나 흉내 낼 수가 없다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스스로 감당해낼 능력이 있어야 해. 무지 어려워. 대단한 용기와, 그게 그저 곤조에 머물지 않도록 성찰할 지성까지 요구하거든. 그런 기질을 타고났다고 모두가 그리 살지는 못하는 이유라고.

 

노무현은 그 두 가지가 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정치인이었어. 대통령 노무현조차 자연인이었으니까. 그게 현실정치인으로서 무조건 옳거나 항상 바람직하다고까지 말할 순 없어. 하지만 노무현을 만나본 적도 없는 수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그리도 슬퍼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평생을 자연인으로 산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느껴졌던 거라고. 그게 연출 없이 살아내는 자의 힘이라고. 정치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대중성이지.

 

삼성

삼성한테 법은 그냥 육법전서에 갈겨놓은 낙서일 뿐이다

마사 스튜어트라는 여자가 있어.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여자지. 그 여자가 5개월을 복역했어. 내부자 거래로. 그 거래로 번 돈이 큰 것도 아냐. 겨우 2억 원 수준이야. 그 여자 재산이 엄청나다고. 2억은 그 여자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전 세계 최고 갑부 명단에 들어가는 여자니까. 그런데 결국 그 정도 액수 때문에 실형을 살아. 마사 스튜어트의 ‘리빙옴니버스’ 그룹은 오로지 마사 스튜어트 혼자의 힘으로 일궈낸 제국이야. 마사 스튜어트가 곧 그 회사의 이미지 자체야.

그런데 이 여자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당일 그 회사 주가가 폭등한다고. 그전에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거든. 그런데 실형이 선고되자마자 주가가 40퍼센트나 뛰어요. 위험 요인이 사라진 거니까. 미래에 대한 리스크가 현재의 주가에 반영되는 거잖아. 이 여자에게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그 리스크가 사라진 거지. 우리나라에서는 이건희가 감옥 가면 삼성 망한다고 하잖아. 거짓말이야. 이건희가 감옥 가면 이건희가 망하는 거지.

 

그런데 우린 지금 이건희 일가족 하나 보호하느라 온 나라가 이 지랄을 하잖아. 검찰이고 사법부고 대통령이고 모두들. 에버랜드 때 이재용은 세 번 소환됐어. 그런데 왜 이건희는 소환하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니까 당시 검찰이 뭐라고 했냐면, 대법원 판결 이후 소환하겠다고 했어. 아니 씨바, 대법원 판결이 났는데 뭐하러 소환을 해

 

우리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 노예근성이 있다고. 원래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게 불확실하잖아. 사람들은 이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자기보다 큰 존재에게 기대고 싶어 해. 위대한 선지자가 나를 인도해주면, 난 그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선택이란 위험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래서 종교도 있는 거잖아. 삼성은 돈의 종교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메시아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한 거지. 그 과정에서 삼성은 곧 이건희라는 상징화 역시 성공시킨 거고. 그 상징화에 사람들이 넘어간 거고. 마치 종교에 넘어가듯. 그래서 그가 우리를 번영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가 설혹 실수들을 한다손 치더라도, 우리 스스로 못 본 척하도록 만들어버린 거지. 사실상 정신적 노예지.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 사마천

 

북한과 통일

3대 세습에 대한 노코멘트는 정치적으로 적절한 태도라고 생각해. 진보신당조차 그렇게 주장하잖아. 3대 세습을 어떻게 비판하지 않을 수 있냐고. 그런데 그런 비판이 대체 정치 논평 이상의 무슨 정치적 실효성이 있냐고. 북한을 앞으로도 한반도 이북에 존속할, 우리와 대등한 정치적 주체로 완전히 인정하고 통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렇게 그들을 완전한 남남으로만 본다면, 그들의 권력 세습을 비판하는 거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것보다 쉬운 게 어디 있어. 근대 국민국가의 출현 이후 권력 세습이란 말도 안 되는 거니까. 하지만 북한을 수십 년 내에 우리와 통일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면, 그들과 우린 별거중이라고. 언제 어떻게 재결합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파트너라고. 북을 그렇게 재결합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 공당이 북의 구조적 한계만 계속 논평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이 뭐냐는 거지.

 

우린 나의 확장이 휴전선에서 끝난다고. 파리, 북경, 서울 다 물리적으로 같은 땅 위에 있다고. 그렇잖아. 그런데 머리에선 끊어져 있어. 아프리카 기아에 대한 세계인으로서의 책임을 묻거나 지구적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게 우리한테 생뚱맞은 것도 그래서야. 나와 세계는 별개이고 세계는 바깥에 있는 거야. 세계인으로서의 보편 인식이 부족하다고. 난 그런 인식의 확장은 땅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

 

청년들에 대한 보상을 민간에 떠넘기는 게 바로 군가산점 제도고.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건 맞아.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는 병사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거든. 뭐하러 돈을 들여. 신성한 국방의 의무, 남북 대치 상황만 들이대면 이야기 끝나는데. 그렇게 몇십 년을 세뇌시켜놨는데. 지금 병사들 월급 평균이 8만 원대가 된 것도 그나마 노무현 시절 두 번이나 대폭 인상해서 겨우 그렇게 된 거야. 보수 정권 시절 병사 평균 월급은 몇천 원 수준이었다고. 그러니까 군가산점 문제로 여자들과 싸우는 남자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자백하는 거야. 왜 여자들과 싸워. 정부와 싸워야지.

 

정치의 생명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

사람들이 대통령을 선택할 때 논리를 동원하는 건, 그 사람에게 꽂힌 마음을 정당화할 도구로 쓰는 거지, 논리의 귀결로 누군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진보 진영에선 언제나 논리를 먼저 내세우지. 뇌 구조가 그럴 수밖에 없긴 한데.

 

진보적 지지자들의 속성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면 지지해주는 보수적 지지자들과 달리, 자신의 지지가 스스로에게 떳떳해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보다 엄격한 자기심사를 거치게 된다는 점을 약점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 마음을 얻는 건데, 마음은 대단히 제한된 자원이라고.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여러 번 나눠줄 만큼 많지가 않아.

 

난 이래서 당신에게 설득당할 생각이 없다는 걸 일방 주장하는 게 논쟁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연애와 같다

계급을 말하면서 시장통 아줌마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를 키워드로 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나는 봐. 진보 정당이 구사하는 언어는 이미 자기들이 설득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만 알아먹는 언어라고. 신자유주의가 나쁘다는 건 나 역시 천만 번 동의하는데, 상대가 알아먹어야 메시지인 거지, 상대는 못 알아먹는데 어떻게 메시지냐고. 혼잣말이지. 정치를 혼잣말로 하면 어떡해.


정치는 기본적으로 연애인데,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건데, 연애를 하려면 당연히 내가 누구인지부터 제대로 알려야 하잖아. 농담도 하고 술도 마시고 손도 잡고 그러다 점점 서로 매력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데. 그런데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웃음)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이라며.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 데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 조건과 대출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내리지.(웃음) 그렇게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을 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웃음)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지.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어 보이는 스테이크를 시키지.(웃음) 그들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버리네.(웃음)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에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


저자는 좌파가 자신의 가진것과 당위성에 비해 민심(표)을 얻지 못하는 현실을 연애에 비유하며 슬프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결국 사람은 그럴듯한 말보다 그럴듯한 감정과 느낌에 이끌리는 법이니까요.

 

진보정치인은. 그들 주장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이야기하는 거거든. 생경하거든. 본능과 욕망이 아니라 이념과 이상을 이야기하거든. 불편해. 그러니 더더욱 언어부터 대중적이어야 해. 그리고 빌어먹을 엘리트 의식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해. 정말 집권하고 싶다면 말이야. 그리고 자신들의 눈물겨운 노고가 상대에게 죄의식을 요구할 권리가 될 순 없다는 걸 좀 깨우치셨으면 해. 종교가 아니라 정치 좀 해줬으면 한다고. 포교 말고 연애 좀 하자고, 제발.

 

연애는 내가 가장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가장 뜻대로 안 되는 상대와 만나는 거거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통해 자기가 누군지가 드러나지.

 

함께하기 좋은 것들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이 책이 다분히 좌파 친화적으로 쓰여졌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한국의 자칭 보수세력들은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진정한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고 싶으신 분은 강원택 교수님의 저서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강원택> , <서가명강 08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강원택>을 추천합니다.

이 책이 마음에 들어서 좀 더 연애에 서툰 좌파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 조국의 시간 - 조국

을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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