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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기계발

달리기를 글로 배우는 당신에게 : 수많은 달리기 책 중 딱 두 권만 꼽으라면?

by Caferoman 2026. 2. 8.

🏃‍♂️ 달리기를 '글'로 먼저 배웠습니다

올해 달리기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서 마라톤 관련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대개 달리기 책은 두 부류로 나뉜다. 훈련법과 부상 방지를 다룬 '지침서', 그리고 달리며 느끼는 감상을 담은 '에세이'.

전자의 경우 실용적인 정보를 얻는 재미에 여러 권을 읽어도 지루함이 없었다. 하지만 후자인 '러너 에세이'는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타인의 경험에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었지만, 갈수록 내용이 비슷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 굳이 또 다른 러너의 에세이를 찾아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 무렵, 나는 인생의 정답 같은 책 두 권을 만났다.

러너 에세이는 이 두 권으로 종결된다.

  • 철학자와 달리기, 마크 롤랜즈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위 두 책은 따로 지면(?)을 할애해서 다루겠지만 정말 체중감량, 건강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달리기가 아니라 달리기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즐거움에 대하여 이 두 책만큼 명쾌하게 다룬 책이 있을까 싶다.

달리는 것의 의미와 사유를 이렇게 지적을 풀어낼 수 있다니 : 철학자와 달리기, 마크 롤랜즈

책이름 : 철학자와 달리기 저자 : 마크 롤랜즈

한 줄 평 : 잡념을 철학으로 포장한 가벼운 에세이일 거라는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달리기라는 행위 자체를 놀이로서 향유하는 마음가짐, 즉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되는 순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달리기를 통해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을 사유하는 과정이다.

 

장거리 달리기의 자유에서 육체와 정신의 경계는 흐려지기보다는 더 뚜렷해지는 듯하다. 이는 적어도 나에게는 언제나 똑같이 시작된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훈련할 때에도 장거리 달리기 초반은 SW 152번가에서 SW 104번가까지 올드 커틀러 로드를 따라 달리는 것이었다. 120번가에 도착할 때쯤이면 나는 나 자신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104번가 모퉁이까지만 가서 좀 걷자.’
그러나 이 ‘나’ 또는 ‘너’라는 것이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인가? 누가 누구에게 허락한다는 말인가?
힘이 드는 것은 육체이지 정신이 아니다. 정신은 가끔 힘내라는 말이나 던지며 용기를 북돋우지만, 근본적으로 104번가까지 달려가야 하는 것은 정신이 아닌 내 몸뚱이다. 분명 내 육체에게 허락을 하는 주체는 정신인 것 같다. 그리고 내 정신이 육체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인식하는 경험을 하는 데카르트기를 넘어서면 이제 자아를 사유와 함께 날려버리며 그 자체로서의 춤이 되는 경지인 흄기에 이르르게 된다. 여기서 잠시 '이 책은 철학책인가, 달리기 책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흄기에서 자아는 더 멀리 달아난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데카르트기는 육체가 일정 조건만 만족하면 원하는 대로 허락해 주는 식으로, 물질적이지 않은 자아가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흄기에 들어서면 통제하는 자아는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흄기에는 분명한 정신이나 통제자 또는 사고자가 없다.
실제로 나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또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사유에 매료된다. 더 이상 표리부동한 주인은 없다. 내게 남은 자아는 내 정신이 있어야 할 텅 빈 푸른 하늘에서 춤추는 사유뿐이다. 내 정신은 그저 사유가 잠시 형상으로 나타난 것뿐이다. 자아는 춤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춤이다.

 

이렇게 흄기를 거치게 되면 궁극적으로 나의 정신은 지금 움직이는 나의 육체를 통제할 수 없는 무의 존재가 되는 사르트르기에 이른다. 참으로 꿈보다 해석이지만 달리기에 몰입하는 과정을 이렇게 철학으로 풀어 쓴다는 것이 참으로 참신하다.

사르트르기에는 정신이 사유에서 무無로 더욱 축소된다. 사르트르기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나는 이러한 사유들이 나의 일부가 전혀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단호하게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초월적 대상이다. 그리고 서서히 입술에 번지는 미소처럼 이것이 이 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을 말해 주는 결정적인 단서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유들은 나를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드는 생각이 아니라 서서히 커지는 하나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을 깨닫는다. 1.6킬로미터를 11분에 달리는, 거의 터벅터벅 걷다시피하는 내 다리를 멈추게 만들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걸. 나는 가능한 한 모든 이유를 다 끌어모아서 멈추어야 할 합당한 근거를 세워 보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멈추어야 할 이유들이 여전히 계속 뛰어야 할 이유와 팽팽히 맞선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궁극적인 달리기의 최고의 경지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 뛰지 말아야 할 수만가지 이유에 관계없이 정신에 지배받지 않고 이미 달리고 있는 육체의 자유로움이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이유와 행동의 간극 사이를 자유롭게 달리는 것이라는 표현이 무척이나 와 닿는다.

 

어떤 이유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경험한 것은 환희였다.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삶에서 느낄 때 나타나는 가장 확실한 증상인 환희 말이다. 자유롭게 달린다는 것은 이유와 행동의 간극의 자유 속에서 달린다는 것이며, 이것은 세상에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러한 자유 속에서 달린다는 것은 환희 속에서 달리는 것과 같다.

달리기 에세이의 최고봉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름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한 줄 평 : 더 뛰고 싶게, 더 쓰고 싶게, 그리고 더 읽고 싶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이다. 76세 대문호의 왕성한 집필 활동 비결은 결국 마라톤에서 길러진 '지구력'에 있었다. 창작 활동에 부진을 느끼던 나에게, 그리고 이제 막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려는 '런린이'인 내게 이 노장 러너의 목소리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은 정말이지 버릴 문장이 없어 정신없이 문장들을 밑줄 그어가며 필사해가며 읽었다.

막상 소개를 하려니 소개하고픈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PTSD가 올 지경.

 

자신의 묘비명으로 쓰고 싶은 구절이라고 하루키가 소개한 이 구절은 러너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년~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또한 하루키가 글을 쓰기 위한 체력을 위해서라던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브레인 스토밍의 도구로써의 러닝이 아닌 생각을 비우기 위해 러닝을 한다는 점은 아마 조금 진지하게 러닝을 해본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이 가는 글이 아닐까? 실제로 마음이 복잡할 때에 무작정 달리러 나가서 얻게 되는 것은 생각의 정리나, 스트레스의 완화라기 보다, 심각하던 것들이 별것 아닌 것들이 되고, 결국에는 달리는 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에서 비워지는 것들이 되는 경험. 러닝이 주는 가장 큰 힐링이 아닐까 싶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진공을 포용할 만큼 강하지 않고, 또 한결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달리고 있는 나의 정신 속에 스며들어 오는 그와 같은 생각(상념)은 어디까지나 공백의 종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용이 아닌, 공백성을 축으로 해서 성립된 생각인 것이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그 외에 달리기에 관련한 에세이

양산형 러너 에세이,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다 : 마라닉 페이스, 올레

책이름 : 마라닉 페이스 저자 : 올레
감상평 : 하루키와 마크 롤랜즈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 나니, 다른 에세이들은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런데" 수준의 가벼운 공감에 머물고 만다. 유희로서는 충분할지 모르나, 사유의 깊이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을 끝으로, 비슷한 패턴의 양산형 러너 에세이 탐독은 멈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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