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방사립대 학사에 전공평점이 원주율(π)이라 취업을 못하던 중
2. 졸업을 코 앞에 두고 설마 되겠어? 하고 밀어 넣은 R&D직군 지원서가 서류합격 해서 면접 보러 오라더라
3. 면접이 박사-석사-학사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하필 내 순서가 학사 초반이라 석사 2명이랑 학사인 내가 같이 면접에 들어감
4. 지원자들 자기소개를 주욱 들은 다음 한 명씩 전공 관련 질문을 하더라고
5. 앞에 A, B지원자들(석사들)한테는 수행 프로젝트나 전공 지식 관련된 사항을 심도 깊게 물어보더니 내 차례가 오니 잠시 면접관이 내 지원서를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훑더니 몇 초간 정적이 흘렀어
6. "음, C군은 자신을 동물에 비유하면 어떤 동물일 것 같나요?"
7. 망했다 싶었지, 이 사람들은 나한테 전공관련해서 궁금한 게 없구나. 광탈을 직감하고 면접비나 받아가겠구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렇게 답했어.(글자수 제한 때문에 답변은 답글로)
8. 의외로 별 고민 없이 "전 매미인 것 같습니다."라고 바로 답이 나왔어
9. 순간 모니터만 보고 있던 모든 면접관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어. 잠시 정적 뒤 인사 담당자로 추정되는 분께서 침묵을 깨 주셨어
10. 면접관 : "허허 매미라... 특이하네요, 매미는 곤충 아닌가요?"
11. 나 : "아, 곤충도 동물계열 아닌가요?"라고 하니 암튼 알았다고 왜 그런지 설명을 해보라더군 (참고로 "전공 면접" 시간이었어 내 전공은 전자공학이고!!!)
12. 나 : "매미가 길게는 17년을 땅 속에서 벌벌 기어 다니다가 땅 위를 올라와서 겨우 몇 달 날아보고 죽지 않습니까?"
13. 나 : "저도 조금만 참고 버티면 볕 들 날이 올 거라는 말만 믿고 초중고대학교 시절을 보내고 세상 위로 나왔는데 하필이면 불황에 취업난에 한 겨울에 올라온 매미 같습니다."
14. 나 : "살면서 한번 세상에 나와 짧게 울다 가는 매미인데 기회가 된다면 이곳 L사에서 한번 원 없이 울어보고 싶습니다."
15. 사실 "겨울에 태어나버린 매미같다"라는 아이디어는 존경하는 뮤지션인 해철이 형의 노래 가사가 생각나서 즉흥적으로 한 드립이었어.
16. 복기해보면 모범답안은 아니었던 것 같아, "추진력 강한 호랑이"나 "뚝심 있는 코끼리" 같이 깨알 같은 자기 PR을 했었어야 했는데, 면접관들 앞에서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었으니... 면접관들 입장에선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17. 그 결과는? 당시 면접관이던 상무 쪽 부서에 입사했어. 그간 여러 차례 부서이동이 있긴 했지만 이 회사를 15년째 다니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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