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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에세이

어느 소심한 남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 : 마음, 나쓰메 소세키

by Caferoman 2023. 6. 8.

어느 소심한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 : 마음, 나쓰메 소세키

소심한 한 남자의 이야기

소심(小心).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마음(ここ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여기서 소심이란 소인배나 사소함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작음이 아닌 작지만 정교한, 그리고 사소해 보이지만 진중하고 응축된 뉘앙스의 소심이라고 할까요?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선생님의 존재는 사람에 대하여 마음을 닫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 같으면서도 어떤 사연을 가지고 비련의 주인공을 자처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됩니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이 선생님이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소세키의 소설은 분명한 표현으로 전하려는 바를 전달하기보다 뭔가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뜬구름 잡는 듯한 지루함이 있는데요,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지만 소세키의 스타일이겠거니 하고 이전에 읽었던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정도를 기대하며 소설을 읽어나갔습니다.(정 맘에 안 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같이 직설적이고 긴박한 문체의 작품을 찾아볼 수밖에요.)

 

사랑은 죄악이야. 그거 아나?(しかし … しかし君、恋は罪悪ですよ。)

그런데, 그런데 말이네. 자네, 사랑은 죄악이야. 그거 아나?
아무튼 사랑은 죄악이야. 알겠나. 그리고 신성한 것이고.

 

경구로 던진 선생님의 말은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데, 주인공은 뭔가 되게 있어 보이게 말을 던져 놓고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소설이 한참 진행되지만 그렇게 궁금함과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던진 떡밥치고는 그 내용이 빈약해 보였습니다. 엄청난 반전을 기대했던 제가 문제였을까요?

 

소설은 선생이 주인공에게 보낸 마지막 서신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전까지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본 선생님에서, 2인칭(?) 시점으로 전환되며 주인공에게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주인공에게 털어놓습니다. "이 편지가 자네에게 도착할 즈음에는 나는 이미 이 세상에는 없을 걸세."라는 말과 함께.

 

과거에 자네한테서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지금 자네 앞에 그것을 확실히 밝힐 자유를 얻었다고 믿네. 하지만 그 자유는 자네가 상경하기 전에 다시 소실될 수 있는 가변적인 자유에 지나지 않아. 따라서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살리지 않으면 나의 과거를 자네에게 간접 경험으로 가르쳐줄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고 마네. 그러면 일전에 그렇게 굳게 약속한 말이 거짓이 되고 말지. 그래서 난 지금 입으로 해야 할 말을 이렇게 펜을 쥐고 밝히고자 하네.
- 책의 본문 중

 

남의 떡이 커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읽지 않은 분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서신의 내용을 논할수는 없겠습니다만, 선생님은 젊은 시절 자신이 경험한 이성에 대한 감정을 그려내면서 "딱히 먹고 싶진 않지만 남주기는 싫은 떡"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날은 시간표상으로 보면 내가 K보다 일찍 귀가하게 되어 있는 날이었지. 나는 집에 돌아와서 현관문을 드르륵 열었어. 그랬더니 아직 학교에 있을 줄 알았던 K의 목소리가 살짝 들리는 거 아니겠나.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집 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고 말이네. 나는 평소처럼 끈 푸는 데 시간이 걸리는 구두를 그날만큼은 신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곧장 현관을 올라가 방문을 열었지. 내 눈에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K가 들어왔네. 그녀는 거기에 없었지. 하지만 K의 방에서 도망치듯 서둘러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놓치진 않았네. 나는 K에게 어떻게 이리 빨리 돌아왔냐고 물었네. K는 몸이 좀 좋지 않아 수업을 듣지 않고 일찍 돌아왔다고 했지. 내 방으로 돌아와 잠시 앉아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차를 들고 들어왔네. 그때 딸은 “어서 오세요” 하고 나를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인사를 했네. 나는 웃으면서 아까 K의 방에서 왜 그렇게 서둘러 도망쳤냐고 물어볼 수 있을 만큼 변죽이 좋은 남자는 아니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 일이 맘에 걸려 꽁해 있었지. 난 그런 인간이었네.

 

<설득의 심리학, 로버트 치알디니> 에서 저자는 이런 심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얻는다는 생각보다는 비록 가치가 같다 해도 뭔가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은 멋진 데이트 상대를 얻었을 때보다는 그 상대를 잃는다고 상상했을 때 훨씬 더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 설득의 심리학 1, 로버트 치알디니
콜로라도 주에서 140쌍의 십대 연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확실하게 밝혀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부모의 반대는 서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게 하며 각자의 부정적인 행동을 더 많이 지적하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서로를 더 사랑하고 결혼을 더 갈망하게 만들었다. 연구 도중에도 부모의 반대가 심해지자 사랑이 더 강렬해졌고, 부모의 반대가 약해지자 로맨틱한 감정도 시들해졌다. - 설득의 심리학 1, 로버트 치알디니

 

양친의 사망으로 겪게되는 친척과의 불화와 이로 인한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가진 선생님이 남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사랑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한 이 소설은 언뜻 보면 소심함의 끝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한 편으로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만한 감정을 소설로 승화시킨 점은 괜히 일본인들이 손꼽는 작가가 아니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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