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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IT과학

건축기술의 집약체인 마천루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 도시를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과학, 로리 윙클리스

by Caferoman 2024. 2. 22.

건축기술의 집약체인 마천루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 도시를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과학, 로리 윙클리스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고층빌딩, 마천루(skyscraper)는 재료와 구조역학, 건축공학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듯 세계 각지에서 앞다투어 더 높은 건물을 세우게 되었는데요, 그러한 마천루에는 어떠한 과학과 기술이 담겨져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주제를 이 책은 다루고 있습니다.

철(Iron)

  • 선철(pig iron) : 탄소 함유량이 3.5~4.5%로 높은 편이고 다른 불순물도 함유하고 있어서, 무르고 부러지기 쉽고 단련 등의 가공이 어렵다. 다시 말해 건축 자재로 적합하지 않다. 
  • 주철(cast iron) : 탄소 함유량이 2~3.5%로 선철보다 조금 낮고 실리콘이 2%까지 포함되어 있다. 단단하지만 여전히 잘 부러져서 견딜 수 있는 하중의 타입과 정도가 제한적이다.
  • 연철(wrought iron) : 탄소 함유량이 0.02~0.08%로 매우 낮다. 단단하면서도 팽창력이 있어서 두드려 펴고, 말고, 압착해서 철판으로 가공하기에 적합하다.
  • 강철(steel) : 탄소 함유량은 0.5~2% 사이로, 연철보다 단단하면서도 주철과 달리 팽창력과 신축성이 있어서 우리의 니즈에 잠재적으로 완벽한 소재다. 하지만 산업혁명 초기에는 강철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톤당 생산 비용이 80달러를 넘었고, 생산 과정도 지극히 노동집약적이었다. 

콘크리트(Concrete)

1800년대 중반, 오늘날 쓰이는 시멘트의 ‘원조’ 격인 포틀랜드 시멘트가 등장
석회석과 점토를 혼합하는 포틀랜드 시멘트 제조법을 발명한 사람은 영국의 조셉 애스프딘(Joseph Aspdin) (그의 시멘트가 영국령 포틀랜드 섬에서 나는 석재와 색이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콘크리트는 시간이 가면서 강도가 높아진다. 이는 포틀랜드 시멘트와 물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 작용 때문이다. 통념과 반대로 콘크리트는 ‘마르지’ 않는다. 건축공학에서 양생(養生, curing)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수분을 조직 안에 단단히 동여맨다. 공사 현장에서는 콘크리트에 물을 분무하거나 수분 유지용 덮개를 쓰는 방법으로 양생 기간 동안 콘크리트가 ‘마르는’ 것을 방지한다. 콘크리트의 경화 촉진을 위해 경화 초기에 하는 초기 양생(initial curing)이 완료된 후에도 공기 중 수분을 이용해서 더 이상 단단해질 수 없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 경화 작용을 이어간다.

 

얼마나 '강한'가의 문제

과학자들에게는 덮어놓고 ‘강하다’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강한지에 따라 강한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 압축 강도(compressive strength) : 재료를 압착할 때 재료가 파괴되지 않고 버티는 최대 하중. 재료가 압축 하중을 견디는 최대치. 
  • 인장 강도(tensile strength) : 재료를 잡아당길 때 재료가 끊어지지 않고 버티는 최대 하중. 재료가 인장 하중을 견디는 최대치. 
  • 전단 강도(shear strength) 재료의 한 면에 평행으로 반대 방향의 힘을 가할 때 재료가 그 면을 따라 절단되지 않고 버티는 최대 하중. 재료가 전단 하중을 견디는 최대치.

 

우리가 건설 현장에서 보는 콘크리트는 대부분 철근 콘크리트

인장력이 강한 철망(steel mesh)이나 철봉(steel rods)을 넣어서 보강한 콘크리트를 말하는데, 이런 보강재를 철근(rebar)이라고 한다. 
철근으로 보강한 콘크리트는 인장 강도가 높아져서 외력을 흡수해 붕괴의 위험을 최소화한다. 콘크리트의 압축력과 강철의 인장력이 만나 성능이 강화된 것이다. 콘크리트와 강철은 서로 물리적 차이가 크고 뚜렷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둘은 온도 변화에 거의 똑같은 비율로 팽창하고 수축한다. 철근 콘크리트 발명자는 이 두 가지 구성요소의 열팽창 계수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이로써 수시로 변하는 기온에 대처하는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다. 이것이 콘크리트가 범지구적 기초 건자재로 군림하게 된 이유다.

 

유리

유리의 주성분은 실리카(SiO2)다. 고대에는 실리카가 유리의 약 90%를 차지했지만 오늘날은 75% 정도다. 나머지 성분들은 유리의 물리적 성질을 재단하고 다듬는 용도다. 가령 탄산나트륨을 추가해서 유리의 용융 온도를 1,200℃로 낮춘다. 산화납을 첨가하면 유리의 반사율이 높아지고, 산화붕소는 고온에 강한 내열 유리를 만든다. 1915년에 미국 코닝 사가 출시한 조리용 유리 용기 파이렉스(Pyrex)의 비결이 바로 산화붕소다.

혼성 가공(hybrid glazing)은 강화 유리 두 장을 접합하고 그 사이에 폴리비닐부티랄(PVB)을 중간 막으로 끼워 넣어 잘 깨지지 않고, 만에 하나 깨지더라도 유리가 끈적한 PVB 층에 접착되어 파편이 날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건설 과정 내내 건물의 무게는 매우 예민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건물 무게에는 정하중(dead load)과 활하중(live load)이 있다. 정하중은 시간이 경과해도 크기와 방향이 변하지 않는, 정지해 있는 하중을 말하며 활하중은 건물이 수용하는 모든 것(사람, 사무용 설비와 집기, 엘리베이터 등)의 무게로 유동적인 하중을 말한다. 마천루는 정하중과 활하중 모두를 떠받칠 수 있어야 한다. 

 

마천루의 기초

지면의 산들바람도 100층 넘는 높이에서는 태풍이 된다. 빌딩이 바람 등 다양한 외력에 버티려면 특별한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베이커가 부르즈 할리파를 위해 고안한 것이 버트레스 코어(buttressed core)라는 독특한 구조물이다. 건물 중앙에 폭 11m의 육각형 고강도 철근 콘크리트 코어(기둥)를 배치하고, 이를 부르즈 할리파의 척추로 삼는다. 이 코어의 세 면에서 버트레스(부벽)가 날개처럼 뻗어나가서 Y자 모양을 이룬다. 이 구조로 건물을 올리면 부담스러운 철골 없이도 층수를 높일 수 있다. 

 

공기압 문제

인간에게 공기압이 문제가 되는 건 해발고도 2.4km부터다. 부르즈 할리파보다 세 배나 높은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속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만에 하나 그 정도로 높은 건물을 짓는다면, 최고층들에는 여객기처럼 실내 기압을 지상에 가깝게 유지하는 여압 장치를 달아야 한다. 

 

바람의 문제

바람이 특정 모양의 사물, 가령 원기둥을 만나면 바람이 원기둥을 싸고돌면서 와류(vortex)라는 소용돌이 흐름을 형성한다. 

 

공진 현상(resonance phenomenon) : 물체마다 고유 진동수가 있는데 외부 충격의 진동수가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면 물체의 진폭이 증가하는 현상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자. 높이 올라가려면 타이밍을 잘 맞춰 발을 굴러야 한다는 것쯤 누구나 안다. 타이밍을 놓치면 그네가 흐름과 높이를 잃는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네의 고유 진동수에 맞춰 발을 차고 있는 것이다. 때맞춰 발을 차면 그네에 공진(resonance)이 발생하고 이것이 그네의 좌우 동요를 증폭해서 그네가 더 높이 올라간다. 그네를 탈 때는 공진 현상이 긍정적 효과를 내지만, 빌딩을 설계할 때는 골칫거리가 된다. 

타이베이 101 타워의 비밀은 88층과 92층 사이에 있다. 바로 TMDTurned Mass Damper(진자형 제진기)라고 하는 진동 흡수 장치다. 이 거대한 금색 강철 추가 빌딩이 바람에 기울어지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빌딩의 중심을 잡아준다. 

 

회전문이 존재하는 이유

추운 날씨에는 마천루가 난방 장치를 가동해 빌딩 내부 온도를 높인다. 이 더운 공기가 비상계단이나 엘리베이터 승강통로를 굴뚝처럼 타고 건물 상층부로 이동해서 건물 하층부를 진공 상태로 만든다. 이때 만약 빌딩에 평범한 여닫이문이 달려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문이 열릴 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빨려 들어온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바람 때문에 로비에 있는 종이들이 날리고 치마들이 펄럭인다. 반대로 더운 날씨에는 냉방 장치가 만든 차가운 공기가 건물 하층부로 가라앉아 문이 열릴 때마다 밖으로 빨려 나간다. 회전문은 여닫이문과 달리 사람은 드나들어도 문은 항상 ‘닫혀’ 있는 구조다. 이 구조가 공기가 급하게 빨려 들어오고 빨려 나가는 것을 막아서 빌딩 내부의 공기 소용돌이를 최소화하고 공기 유출입에 따른 에너지 손실을 낮춘다. 굴뚝 효과에 따른 공기 흐름과 온도 변동을 방치하면 구조적 문제까지 생길 수 있다. 환기와 배기에 문제가 생기고 엘리베이터 오작동이 일어난다.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와 화염이 빠르게 확산될 위험도 크다. 그래서 회전문을 다는 것이다. 

도시 열섬은 도시의 온도가 교외보다 5~10℃ 높은 현상을 말한다. 도시 건설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어두운 색의 흡열 자재를 많이 쓰는데 이들은 열을 잡아 가둔다. 하지만 같은 열에너지도 초목이 흡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열이 초목의 수분을 증발시켜 천연 냉각 효과를 낸다. 나무를 많이 심자! 

 

또한 이 책에서는 도시가 만들어지기 위한 필수 요건들 : 상하수도, 도시철도, 도로망 들을 다루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만들어지기까지 곳곳에 담겨있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들을 다루고 있는데요,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주제여서 그런지 술술 읽혔습니다.

 

상하수도 시스템과 납(Pb)

배관공(plumber), 배관(plumbing) 같은 단어들은 납을 뜻하는 라틴어 ‘plumbus’에서 유래했다. 납의 화학기호가 Pb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납이 배관의 어원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쨌든 로마 제국의 문명 수준이 나머지 유럽보다 천 년 이상 앞설 수 있었던 배후에는 납이라는 신통한 금속이 있었다. 그것은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였다. 납은 유용하기는 해도 삼키거나 흡입하는 경우 심각한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납에 장기간 노출돼 몸 안에 축적된 납은 신경계와 심혈관계와 면역계에 질환을 유발한다. 그런데도 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납 파이프가 후대에 등장한 구리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소재의 파이프에 섞여 도시들에 얼마씩 남아 있을 정도다.

 

하수의 처리 과정

1. 응결coagulation 원수原水에 있는 대형 부유 물질(나뭇잎 등)과 현탁 물질(진흙 등)을 제거하고, 화학물질을 풀어서 미세 오염 입자들을 플록floc이라는 덩어리로 엉키게 한다. 

2. 응집flocculation 물을 천천히 저어서 플록끼리 뭉쳐서 더 큰 덩어리를 형성하게 한다. 솜사탕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3. 침전sedimentation 무거워진 플록이 탱크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렇게 형성된 진창을 펌프로 뽑아낸다. 

4. 여과filtration 물이 모래층과 자갈층을 여러 번 통과하고, 이 과정에서 물에 남아 있던 미세 입자들이 모두 제거된다. 

 

왜 내가 다니는 길은 항상 막힐까?

별다른 이유도 없이 교통체증이 생겼다 풀렸다 하는 현상을 유령 교통체증(phantom traffic jam)이라고 한다. 이유는 놀랄 만큼 단순하다. 운전자들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너무 빨리 달리다가 속도를 바로잡으려고 브레이크를 걸면, 뒤에 오던 사람은 앞차의 급제동에 반응해 속도를 필요 이상 늦춘다. 그 뒤의 차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밀리는 효과가 물결 퍼지듯 연쇄적으로 다른 차들에게 전달되고 효과도 갈수록 증폭되다가 결국 도로는 꽉 막히고 만다. 미국 템플 대학교 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교통체증 유발 파동(연구진은 이것을 재미톤jamiton이라고 부른다)은 심지어 모두가 완벽하게 운전할 때도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서 1차 파동이 일어난 후, 멀리 도로 뒤편에서 발생하는 2차 파동은 재미티노jamitino라고 한다. 꼬마 재미톤이라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2차 파동은 3차 파동을 낳으며 번져나간다. 템플 대학교 벤저민 사이볼드Benjamin Seibold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교통체증의 탓을 개개의 운전자에게 돌리지만, 수리적 모델링으로 분석하면 아무도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교통체증 유발 파동이 발생할 수 있다.” 병목이 없는 통로를 줄줄이 이동하는 엄청난 수의 일개미 떼는 절대 유령 교통체증의 마수에 걸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연구에 따르면 개미들이 서로간의 거리를 넓게 유지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반응할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개미들은 ‘급제동’을 거는 일이 별로 없다. 운전자들이여, 우리가 개미에게 배울 점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지하 철도 시스템 : Subway, Metro, Tube

이 시스템은 도시의 생명선이자 도시 확산의 수훈갑이다. 런던에서는 이것을 튜브the Tube라고 부르고 뉴욕에서는 서브웨이the Subway, 파리와 도쿄에서는 메트로the Metro라고 부른다.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지하 철도 시스템은 세계 어디서나 도시가 메가시티로 발돋움하는 필수 요건으로 기능한다. 그럼 석탄 같은 고밀도 물건을 운송할 때 도로보다 철도가 더 적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분적으로는 구름마찰rolling friction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 마찰은 방해될 때도 많지만 유용할 때도 많다. 자동차 타이어가 말랑하고 무늬가 패여 있는 건 거칠거칠한 아스팔트 도로에서 접지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이와 반대로 열차 바퀴는 매우 딱딱하고 상대적으로 매끈하고 좁고 단단한 강철 레일 위를 굴러간다. 열차 바퀴와 레일 사이에 마찰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물체가 맞닿는데 마찰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때의 마찰은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마찰에 비해 약하다. 따라서 에너지 비용 측면에서 보면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는 레일이 보다 효율적이고, 따라서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다. 공학적 과제가 대개 그렇듯 마찰도 타협과 절충의 문제다. 마찰이 너무 강하면 열차가 서서히 정지해버리고, 마찰이 너무 약하면 열차가 아예 움직이질 못한다. 

 

오늘날의 열차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경사는 얼마일까. 30도? 아니면 40도? 미안하지만 여러분의 짐작은 엄청나게 빗나갔다. 마찰 기반 열차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경사는 고작 4도다. 그것도 경사로가 짧을 때나 가능하다. 열차에 작용하는 마찰력의 변화 때문이다. 역과 역 사이가 역이 있는 곳보다 낮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했다. 왜 그랬을까? 승강장에 진입할 때는 오르막길을 배치해서 열차의 속도를 줄이고, 승강장을 떠날 때는 내리막길을 배치해서 열차의 속도를 높인다. 다른 도시 철도 시스템들도 이런 방법을 쓴다. 이렇게 하면 승차감이 좋아질 뿐 아니라 제동 시에 에너지를 많이 아낄 수 있다. 

 

굴착의 두가지 방법 : 개착 방식과 굴진 방식

오늘날 터널을 굴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개착방식(cut-and-cover)과 굴진방식(deep bore)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어떤 방식을 쓰느냐의 결정은 근본적으로 세 가지 고려사항에 따른다. 지질 상태, 공사 예산, 터널의 기능. 개착방식은 지표면에서 땅을 파 들어간 뒤 터널 구조물을 설치하고 다시 흙을 덮는 공법이다. 뉴욕 시 지하철 공사에 이 공법이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보스턴에서는 ‘하향식’ 접근법을 썼다. 먼저 지하연속벽(diaphragm wall)으로 불리는 두꺼운 콘크리트 패널들을 터널 경로를 따라 땅속에 박아 넣는다. 이 패널들이 박스형 터널의 벽체가 된다. 다음에는 벽체 사이에 있는 흙이며 바위를 모두 제거해서 참호 형태로 판다. 벽은 혼자 서 있지 못한다. 개착방식으로 터널을 팔 때는 거대한 임시 버팀목으로 벽을 받쳐 놓는다. 다음에는 콘크리트 평판을 참호 바닥에 깔고 참호 위도 덮는다. 여기까지 완료되면 지상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지하에서만 공사가 진행된다. 굴진방식의 장점 중 하나는, 건설 장비가 지하로 왕래하는 지점만 빼면 터널 공사 과정이 전적으로 지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교통 장애가 최소화되므로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심지에서는 엄청난 장점이다. 굴진방식 터널의 또 다른 이점은 횡단면이 원형이라서 주변 암반에서 터널에 미치는 모든 힘이 균등하게 배분된다는 것이다. 즉 하중을 못 이겨 굽을 수 있는 평면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터널을 원통형으로 파려면 터널 보링 머신(Tunnel Boring Machine, TBM)을 투입해야 한다. ‘두더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원통형 기계가 어떤 종류의 암반도 우적우적 먹어치우며 땅속을 전진한다. 덩치도 어마어마해서 세계 최대 TBM의 경우 지름이 17.5m에 달한다. 이층버스 넉 대를 쌓아놓은 것과 같은 높이다. 솔직히 나는 TBM에 가장 어울리는 동물이 두더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형 지렁이에 가깝다. 지렁이는 흙을 먹으며 굴을 파고 먹은 흙을 도로 배출한다.

 

배와 항구 이야기

오늘날도 세계 무역량의 80~90%가 해로로 움직인다. 전 세계 항구들에서 매일매일 수천 톤의 수입품이 거대한 상선에서 트럭과 열차로 옮겨지고, 반대 방향으로는 수출품이 똑같이 이동한다. 여객 운송은 대개 비행기가 맡지만, 화물 운송은 아직도 화물선이 도맡고 있어서 국제 운송 항로들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붐빈다. 

 

세계 최대의 선박이자 컨테이너선은 머스크 트리플 EMaersk Triple-E로 길이가 400m, 폭이 59m, 높이가 73m에 달한다. 머스크 트리플 E는 길이 6.1m의 표준 컨테이너 18,000개를 한 번에 운반한다. 이 컨테이너들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영국의 유서 깊은 두 대학도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이을 수 있다. 무려 110km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 거대한 선박을 건사하는 선원은 몇이나 될까? 고작 20명이다. 선적 과정이 대부분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추세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식량 문제

국제환경개발연구소에 따르면 도시민 수억 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도시 빈민층은 영양가 있는 음식보다 단지 배를 채울 음식을 선택하고 있다. 도넛 같은 고칼로리 음식은 칼로리는 많이 제공하는 반면 영양가는 극히 낮다. 문제는 이런 음식이 신선육이나 채소 같은 고영양분 식품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는 것이다. 많은 도시에서 빈곤 지도가 질병 지도 및 비만 지도와 겹친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식량 자원 다양성을 논할 때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Nikolai Vavilov, 1887~1943)다. 주장컨대 바빌로프는 여러분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과학자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바빌로프의 업적은 유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스트리아 학자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의 연구를 실용적으로 재해석한 데 있다. 바빌로프와 그의 제자들은 20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무려 25만 종 이상의 작물 표본을 수집했다. 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한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41년 900일에 걸친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포위 기간 중에도 바빌로프의 동료와 제자들은 식물 씨앗이 보관된 바빌로프 연구소를 교대로 지켰고, 굶주림에 죽어가면서도 소중한 작물과 씨앗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들이 목숨과 맞바꾸며 지켜낸 바빌로프 씨앗은행은 현재 세계 각국의 씨앗은행의 모태가 되었다. 특히 북극에서 1,300km 떨어진 섬에 있는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인류에게 환경재해나 핵전쟁 같은 대재앙이 닥쳤을 때를 대비한, 명실공히 세계의 식량 자원 백업 시스템이다. 최대 450만 종의 식용 작물을 보관할 수 있고, 지진이나 핵폭발에도 견딜 만큼 견고하고, 시설을 두텁게 둘러싼 영구 동토층이 유사 시 전기 공급 없이도 씨앗의 냉동 보관 상태를 안전하게 유지한다. 

 

시계와 인공위성

손목시계에 주로 쓰는 똑딱이는 쿼츠quartz, 즉 석영SiO2 조각이다. 쿼츠는 시계 배터리가 공급하는 소량의 전력을 동력 삼아 매초 약 32,768회 진동한다(똑딱인다). 쿼츠 시계는 꽤 정확해서 1년 동안 겨우 몇 초의 오차만 낼 뿐이다. 이 정도 오차야 사는 데 불편하지 않다. 세계는 세슘 원자가 9,192,631,770회 진동하는 시간을 1초로 정의한다. 영국 국립물리연구소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를 비롯한 세계 20여 개 연구소들이 지금도 원자시계의 정확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누구의 시계가 가장 정확한지를 놓고 첨예하게 겨루는 동시에,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오차가 1초에 불과한 시계를 개발하는 데 주력한다. 무엇보다 인터넷과 연결된 모든 것은 현재 협정세계시Coordinated Universal Time, UTC로 돌아가고, 이 협정세계시는 지구 곳곳에 있는 세슘 원자시계들에 연동한다. 원자시계가 지구에만 있는 건 아니다. 우주에도 원자시계가 많이 나가 있다. 지구 둘레를 도는 GPS 위성들은 예외 없이 모두 원자시계를 탑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원자시계다. 엄밀히 말해서 위치 파악에는 인공위성 세 개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인공위성 네 개가 동원된다. 50년 전에는 정보통신기술이라는 용어도 없었지만, 2013년에는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1,100만 명이나 된다.

 

수도권의 인구가 나머지 지역의 인구를 넘어선 근래에 도시의 발전을 찬양하는 듯한 이 책의 흥미로운 요소들은 재고할 필요가 있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많은 인구가 편의를 누릴 수 있도록 발전한 도시와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은 인간이 물리적, 자연적 한계를 극복하고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바라볼 수 있는 한편의 성공스토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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