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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학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 셸리 케이건

by Caferoman 2022. 2. 21.

유물론자, 일원론자가 바라본 죽음 :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죽음에 대한 일원론적 관점

1줄 요약 :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사라진다. 영혼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1줄로 요약하면 위와 같이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책의 지면을 할애하는 대부분의 영역은 인간의 존재를 육체와 정신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는 이원론적 입장에 대한 반박과 '육체가 죽으면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 죽는 것이다'라는 관점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상상해보자. 이 말이 옳다고 한다면 죽음은 결코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단 내가 죽었다면 죽음은 절대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죽음이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게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는데 어떻게 죽음을 나쁜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살아있는 동안에도 죽음은 당연히 내게 나쁜 것이 아니다.

 

이원론과 일원론

저자는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이원론을 비교 선상에 두고 자신이 주장하는 일원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식 가능하고 증명 가능한 존재만이 유의미하다는 유물론적 가치관에서 그는 "증명할 수도 없고 인식될 수 없는 영혼이라는 개념은 허상에 불과하다"라는 관점에서 사후세계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를 넘어선 무언가(여기서는 영혼)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원론(二元論, dualism)

인간이 “육체 그리고 육체와는 전혀 다른 정신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관점으로 육체와는 전혀 다른 ‘정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육체와 영혼은 서로 차원이 다른 존재로 보는데 이와 같은 첫 번째 관점을 우리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라고 부른다. 

 

일원론(一元論, monism)

인간은 한 가지 기본 요소 즉, ‘육체’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 일원론에서 인간은 특정한 형태의 ‘물질적’ 존재에 불과하며 인간이 곧 ‘육체’다. 이런 관점을 우리는 ‘물리주의(物理主義, physicalism)’라고 부른다. 인간은 육체에 불과하며, 특정한 형태의 ‘물질적’ 존재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유심론(唯心論, idealism)

이론적으로 육체는 없고 영혼만 존재하는 일원론도 가능하다. 마음, 비물질적인 정신 또는 영혼만이 존재하고, 물질적 존재는 인식론적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형이상학적 관점으로 여기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관념’뿐이며 ‘물질적 존재’는 마음이 품고 있는 관념 또는 이와 비슷한 것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편의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관점이다. 철학에서 이런 관점을 ‘유심론(唯心論, idealism)’이라고 부른다.

 

죽음에 대한 이원론자의 관점

첫째, 엄격히 말해서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조합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영적인 존재다. 즉, 나라고 하는 존재는 영혼 그 자체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 죽음이 나의 일부가 손실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둘째, 육체가 인간의 일부이기는 하나,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가 소멸돼도 인간의 존재는 얼마든지 영속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손실된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물질로 증명될수 없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는 물리주의자의 관점에서 죽음에 대한 이원론자의 관점에 반박합니다.

'비물질적인 영혼이 정말로 존재할까?' , '육체와 영혼이 각각 따로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이원론자의 첫 번째 견해를, '영혼이 정말 존재한다면,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건가?'라는 질문을 통해 두 번째 견해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물리주의자들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원론자들의 관점에서 죽음이란 육체적 사망으로 인해 비물질적인 정신과 육체가 영원히 분리되는 현상이다. 반면 물리주의자들은 육체적 죽음 이후에 계속해서 남아 있는 영혼이라는 또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신이란 육체가 P 기능들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 기반이 망가지면 정신도 불가능하다. 간단히 말해서 물리주의자들에게 죽음이란 ‘P 기능의 종말’을 의미한다.

 

여러분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간에, 단지 ‘심적인 위로’가 된다는 이유로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않길 바란다. 만약 영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면, 스스로에게 반드시 이렇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영혼을 믿을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이것이 철학적 사고다.

 

사실 해당 챕터 말미에 등장하는 저자의 질문, "영혼을 믿을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이원론자와 일원론자 차이는 단지 '무엇을 믿는가?'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란한 철학적 수사가 넘치지만 결국 "영혼이 있다고 믿는자"에 대한 "영혼이 없다고 믿는자"의 반박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영혼의 존재에 대한 플라톤의 주장

1) 형상은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존재다.
2) 이성은 형상을 이해할 수 있다.
3)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존재만이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4) 그러므로 이성은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존재다.
5) 이성이 비물질적인 존재라는 것은 곧 영혼이라는 의미다.
6) 그러므로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

 

저자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 그의 제자들이 주장한 영혼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두고 반박을 합니다.

사실 이 책의 대부분은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근거가 아닌 "영혼은 이러이러해서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라는 점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1) 조합물만이 소멸 가능하다.
2) 변하는 것만이 조합물이다.
3)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4) 보이지 않는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
5)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6) 그러므로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

 

위 사례는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인 심미아스(Simmias)의 주장인데, 저자는 마찬가지로 "내가 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증명을 하느라 애를 써야 하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근거를 제시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지적인 의무도 없다고 발뺌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적인 의무’에 대해 언급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용이 존재한다고 하는 모든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면 될 것이다.

 

저자에게 죽음은 완전한 끝, 진정한 종말이라는 믿음

내가 죽고 나서 내 몸이 부활하거나 내 인격이 이식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 나의 진정한 종말이라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끝이자 내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

 

에피쿠로스 : 죽음은 언제 나쁜 것인가?

가장 끔찍한 불행인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이미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어차피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 우리는 죽음을 인지할 존재 자체가 없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에피쿠로스의 견해를 저자는 지지하고 있습니다. 즉, “죽음이 언제 나쁜 것인가”에 관한 물음에 대해 지금 내가 살아있다면 죽음은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없고 내가 이미 죽었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나쁜 것이 될 수 없다며 죽음은 우리에게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일곱 가지 유혹(Bedazzled)〉은 인간의 이런 심리를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이 악마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당신은 왜 신에게 반항을 한 거죠?”
악마가 대답한다.
“그 이유를 말해주지. 나는 여기 앉아 있고, 당신은 이제 내 주위를 돌며 춤을 추면서 이렇게 말할 거야. ‘오, 신이시여. 당신은 너무나 위대하고 아름답나이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이렇게 불평하게 될 걸? ‘아, 너무 지루해요. 뭐 다른 거 없나요?’ 내가 바로 그랬다니까.”

 

삶과 죽음의 상호 효과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 카프카(Franz Kafka)

 

저자는 죽음은 반드시 삶이 끝난 다음에 따라온다는 사실에서 삶 또는 죽음 자체보다 이 둘의 조합 만들어지는 전반적인 가치에 주목합니다. 여기에서 삶과 죽음의 상호 효과는 죽음이 유한한 삶에 주는 유한함과 희소가치를 긍정적이 효과로 볼 수 있으며 삶이 누리던 것들을 죽음에 '강탈'당한 것 같은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어느 학자의 관점

저자는 죽음에 대하여 우리는 부정하거나 인정하거나 무시하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그 태도에 따라 각자의 삶에 적절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네요.

 

어쩌면 죽음이라는 소재가 주는 당연한 감정과 결론이겠지만 다소 허무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쳤습니다. 또한 저자의 유물론적이고 일원론적인 관점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고 공감되지 않는 영역이었으며 오히려 이원론자 입장에서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정반합의 원리로 돌아보고 그 믿음을 강화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이제 이 책을 덮고 나거든 부디 삶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아가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다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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