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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종교

이슬람 이야기, 캐롤 힐렌브랜드

by Caferoman 2021. 10. 14.

이슬람 이야기 - 캐롤 힐렌브랜드

예루살렘, 이스라엘과 관련된 이슬람의 역사

  • 638년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악사 모스크 건설을 시작함. 무슬림은 1099년까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지배하면서 기독교도와 유대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함
  •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 교황 우르반 2세는 무슬림 세계에 대한 십자군을 선포하고 예루살렘 재정복에 나섬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우르트메르라는 십자군 국가를 세움
  • 1147-1174년 튀르크의 군사지도자 누르 알딘의 통치. 그는 시리아에서 12세기 무슬림의 ‘역십자군’을 선포
  • 1187년 하틴 전투로 살라딘이 예루살렘 정복
  • 1192년 살라딘과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가 예루살렘에 기독교도의 순례를 허용하는 협정에 서명
  • 1291년 아크레 함락으로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축출
  • 1948년 이스라엘 국가의 건설. 이스라엘-아랍 전쟁
  • 1967년 이스라엘이 아랍과의 6일 전쟁에서 승리: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재함락.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 등 아랍이 점령하고 있던 나머지 20퍼센트를 점령

 

우리는 우물 벽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의 종교만이 진실을 말하며 다른 종교들은 틀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다른 종교를 경외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모든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 종교들도 우리의 종교만큼이나 진실을 말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마하트마 간디

 

'이슬람'과 '무슬림'의 차이

이 책에서는 ‘이슬람’과 ‘무슬림’ 두 단어를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 도덕, 사회, 정치적 차원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여러 믿음, 제도, 관습을 가리킴. ‘이슬람의Islamic’는 이슬람의 종교, 글, 문화 등을 의미한다.

무슬림 : 개인 또는 대다수가 무슬림으로 이루어진 국가, 그 국가에 살고 있는 이슬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말한다.

 

실제로 ‘이란 이슬람 공화국’, ‘무슬림 세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서 ‘이슬람’과 ‘무슬림’은 다른 용례로 사용되고 있음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전통적 자료

무함마드의 생애를 재구성하는 데 기초가 되는 무슬림의 전통적 자료는 쿠란,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hadith, 이븐 이스하크의 전기 시라sira 세 가지가 있으며 이 자료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쿠란

쿠란은 아라비아의 관습을 비판하면서, 무함마드가 개혁하고자 했던 당시 사회의 상황과 관습을 보여주고 쿠란의 암시를 통해 시기별로 그가 한 일을 추적한다. 쿠란을 역사학적으로 접근하면 완전하지 않고 단순한 결론에 이르기 쉽다. 무슬림과 비무슬림은 쿠란의 각 장과 절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펼치고 있으므로 쿠란을 무함마드의 전기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5 다른 핵심적인 이슬람 관련 자료인 하디스와 시라와 연결해서 쿠란을 읽어보면 쿠란은 무함마드의 발전 단계, 그가 겪은 시련과 승리에 대해 깊이 통찰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디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쿠란의 구절을 명확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하디스와 시라는 무슬림 종교 문학에서 별개의 장르이지만 무함마드에 대해 공통적인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둘은 함께 수나Sunna(예언자 무함마드의 ‘관습적이고 규범적인 언행’)를 형성한다.

 

하디스

무함마드의 언행을 집대성한 하디스는 동반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어서 초기 무슬림들이 여러 세대에 거쳐 신성시한 대상이었다. 하디스는 무함마드의 설교와 활동, 특히 그의 메디나 시절(622-632)을 매우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으나 사료로서 사용하기는 어렵다. 하디스의 제작연도가 정말 6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에 대해 비무슬림 하디스 학자들 간의 논란이 있는 데다 우화처럼 연속되지 않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일관성 있는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디스 어록집이 무슬림의 일상 모든 면을 지배하는 이슬람 율법을 발전시키는 데 기반이 되었으며 9세기와 10세기에 표준 형태로 자리를 잡은 4권의 하디스 어록집은 수니 무슬림에게 권위 있는 편집본(사히흐Sahih)으로 간주되고 있다. 시아파 역시 그들만의 하디스를 갖고 있는데, 이 자료도 무함마드의 언행을 설명하는 대안적인 설명으로 사용된다.

쿠란과 하디스의 관계

하디스는 무함마드가 간결하게, 때로는 구체적으로 무슬림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함마드가 공표한 의견으로 쿠란과 상호 보완관계를 가지고 있다. 쿠란의 암시적인 구절은 방대하고 상세한 하디스 어록을 바탕으로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하디스 어록은 의복, 식생활, 장신구, 소문, 욕설에서 심지어 이쑤시개까지 방대한 소재에 대한 무함마드의 의견을 인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하드, 예배, 순례, 천국과 지옥, 심판과 신의 자비와 같은 영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하디스에는 무함마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형이상학적 질문, 의식에서 중요한 점들도 담겨 있다. 하디스에서 그는 자신감과 강인함을 드러낸다. 그는 권위 있는 입법가이자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무슬림이 따라야 하는 본보기로 비친다.

 

시라

무함마드의 생애에 관한 공식적인 전기로 이븐 이스하크가 8세기에 집필했고 이븐 히샴Ibn Hisham(833년 사망)의 편집본으로 남아 있다. 전기는 매우 상세하고 긴 문서로 상당 부분 하디스 어록에 기반을 두었으며, 무함마드의 생애와 성격과 같은 인간적인 측면과 기적, 신비주의, 전설을 함께 담고 있다. 이후 수 세기 동안 집필된 많은 전기들은 모두 이븐 이스하크의 시라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을 정도로 시라는 가장 숭배되는 경건하고 성스러운 전기가 되었다.

 

무슬림의 전통적 자료에 나타난 무함마드의 생애와 업적 무함마드가 활동한 기간은 생애에서 3분의 1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그는 용맹, 패기, 통찰력을 보여줬다. 신이 임명한 예언자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는 정치가, 입법가, 군사 지도자의 역할도 하며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통해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슬람 공동체에 큰 영향을 남겼다.

 

무슬림의 전통에 따르면 메카에서의 포교가 끝나갈 무렵이자 히즈라가 있기 1년 전 무함마드는 쿠라이시족의 강렬한 반대와 박해를 받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가 경험한 ‘밤의 여행과 승천(미라즈mi‘raj)’은 신이 보살피고 있다는 강한 확신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 속의 엘리아와 예수의 승천에 비견할 수 있는 이 사건은 시라에 여러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밤 가브리엘이 무함마드를 깨워 부라크Buraq라고 하는 날개 달린 동물을 타게 했다. 무함마드는 가브리엘과 함께 예수살렘까지 하늘을 날아가 “하늘과 땅 사이의 경이로움을 보고” 왔다. 예언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심판의 날은 예루살렘을 유명한 성지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그가 신과 예배 횟수에 대한 협상을 했기 때문에 무슬림이 하루에 다섯 번의 예배를 하게 되었다는 기록들도 있다. 그중 한 기록에 따르면 메카의 모스크에서 머나먼 모스크(알 마스지드 알 아크사al-masjid al-aqsa)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 무함마드는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만났다. 어떤 기록에서는 그 이전에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무함마드가 천국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가브리엘과 함께 올랐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수천 명의 천사를 만나고 일곱 개의 천계(天界)를 여행한다. 각 천계에서 그는 여러 예언자들을 만나고 두 번째 천계에서는 예수와 그의 사촌 요한을 만났다. 그는 일곱 번째 천계에서 그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 아브라함을 만났으며, 신의 왕좌 앞에 서서 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땅으로 돌아왔다. 무함마드가 박해를 받아 가장 약하고 힘들던 메카의 마지막 시기에 신이 천계의 영광을 보여주고 과거의 예언자들을 만나게 할 정도로 그를 신임했다는 고무적인 증언이 시라에 기록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지하드(투쟁) : 무함마드의 전사로서의 면모

쿠란의 구절은 무함마드가 처음에는 친족관계에 있는 동료 메카인들에게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꺼렸으나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신의 계시에 따라 그들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는 점을 강조 합니다.

 

“비록 싫어하는 것이지만 너희에게 성전이 허락되었노라.”(2:216)

 

7세기 아라비아의 분위기 속에서 모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난 속의 무슬림 공동체와 새로운 신앙인 이슬람교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기를 드는 것이었으며 구약의 모세와 여호수아가 참여한 전투와 마찬가지로 무슬림은 오랜 세월 동안 무함마드의 군사원정이 종교의 이름으로 신에게 용인받았다고 여겨왔다고 말합니다.

쿠란과 그에 대한 종교적 성격의 전기에서 드러나는 무함마드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한 남자로 묘사됩니다. 쿠란은 무함마드를 직접 가리키며 “나는 너희들과 똑같은 인간이나”(18:111)라고 표현하며 분명 무함마드는 기독교에서 예수와 같은 신의 아들이나 삼위일체의 일부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복음서에서의 예수와 같이 “고난받는 종”이나 "죄가 없는 존재"로 그려지지도 않으며 그는 감정과 약점이 있는 인간으로, 신이 그에게 맡긴 예언자의 길을 가기 위해 신에게 의존했던 한 인간으로 묘사됩니다.

 

금서 악마의 시 논란

1988년 출간된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의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는 전 세계 무슬림에게 엄청난 논란과 분노를 낳았습니다. 이 소설로 인해 폭력이 확산되고 38명이 살해되기까지 했으며 영국의 무슬림들은 공개적으로 이 책을 불태웠고 인도에서는 책을 금지시켰습니다.

 

작가의 이름 ‘살만’은 페르시아에서 처음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존경받는 인물에서, ‘루시디’는 최초의 정통 칼리프 4명을 가리키는 라시둔Rashidun에서 가져온 것으로 무슬림에게 신성시 되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했고 중세 시대 유럽의 기독교도들이 무함마드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표현인 마훈드Mahound를 주인공의 이름으로 정했다는 사실은 무슬림들에게 모욕감을 주었습니다. 전 세계 무슬림, 특히 이란, 파키스탄, 인도의 무슬림들은 분개했고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는 그에게 사형선고 판결(파트와)을 내렸다. 

이 소설의 제목은 책 내에서 비중이 작은 한 에피소드와 연관이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 무함마드는 다신교 아랍인들이 카바에서 모시는 메카의 세 여신이자 ‘알라의 딸들’로 알려진 알 우자, 알라트, 마나트가 무슬림들과 신을 중재할 수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유일신의 중재자는 무함마드뿐이라는 이슬람의 타협할 수 없는 원칙에 위배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이야기 속 무함마드는 그 계시가 악마로부터 온 잘못된 계시임을 깨닫고 신이 내린 진정한 계시는 세 여신의 중재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다는 내용입니다.

 

묘사가 금지된 무함마드

기독교에서 예수를 인간의 이미지로 묘사(목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등)하고 있는데 반해 무슬림들은 무함마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란의 거리에서는 무함마드를 상징하는 그림들을 자유롭게 판매하고 있지만 일부 무슬림 국가에서는 그러한 이미지의 제작, 판매, 소유를 금지합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무슬림들은 예언자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관점에서 바라본 무함마드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 단테는 그의 시 『신곡』에서 무함마드를 적대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심지어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종교의 분열을 가져온 죄로 지옥의 수렁 속으로 떨어졌다고 무함마드를 묘사합니다.

자신을 ‘평화의 왕’이라고 칭했던 예수의 이미지는 무함마드가 모범으로 삼았던 행동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습니다. 기독교도들은 무함마드가 그의 마지막 10년 동안 보여준 ‘전사 예언자’라는 개념을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은 모두 자신의 유일신교를 파괴하고자 위협했던 적대적인 이교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야 했던 모세, 여호수아, 다윗 등의 구약 속 인물들을 친숙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함마드 역시 시대적인 특수성 때문에 그를 반대하는 이교도 아랍인과 유대인을 무기로 다스리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과 그의 공동체, 태동하는 이슬람교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들은 평화의 길을 택하고 현세와 내세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예수와 무함마드를 비교합니다. 기독교도들은 무함마드가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상숭배가 지배적이던 땅에서 이슬람교가 살아남고 확산될 수 있는 무슬림 공동체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뛰어난 정치인이자 중재자였던 무함마드는 과거의 모세와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싸웠으며 걸음마를 시작한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기에 모세와 마찬가지로 그는 일상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만들고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을 지면서 구체적인 지도자 상을 보여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함마드는 예수보다 약 두배 오래 이 땅에 살면서 지도자, 입법가, 판사, 군사 지휘자로서 역량을 발휘합니다.)


또한 이슬람의 경전 쿠란은 신은 유일하다고 끊임없이 선언하고 있는데, 쿠란에 따르면 신에게는 동반자가 없고 여러 신들 위에 군림하는 것도 아니며, 여러 신 중 하나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메카와 함께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강하게 공격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쿠란은 예수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하고 있지만 기독교도들이 그에게 적용한 일부 핵심 교리는 철저하게 거부한다. 특히 예수는 신의 아들도, 삼위일체의 일부도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5가지 의무 : 신앙고백, 희사, 예배, 단식, 순례

무슬림의 신앙적 의무(ibadat)는 이슬람 신앙의 다섯 기둥 또는 아르칸(arkan)이라고도 하며 이는 신앙고백, 희사, 예배, 단식, 순례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슬람 신앙의 첫 번째 기둥 - 신앙고백(SHAHADA)

종교 공동체의 신앙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 가장 중시되는 첫 번째 기둥은 “나는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하고,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증언하나이다”(라술 알라rasul Allah)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이슬람에 입교하려면 이 간결한 선언문을 세 번 말하며 신에 순종할 것을 다짐해야 하며 모든 무슬림은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샤하다를 말합니다.

 

첫 부분 “나는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한다”는 타협하지 않는 참된 유일신주의를 확인하며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증언한다”라는 부분에서는 무함마드의 예언자 지위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이슬람 신앙의 두 번째 기둥 - 예배(SALAT)

살라트는 메카의 카바를 향하여 행해지는 예배행위로 키블라라고 부르는 예배 방향은 모스크 내에서 움푹 들어간 벽면인 미흐랍으로 알아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무슬림이 모스크가 아닌 곳에서 방향을 착각하여 예배할지라도 그들의 좋은 의도를 아는 신은 기도를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며 예배의식은 하루 다섯 번(새벽, 낮, 오후, 저녁, 밤)이 의무입니다. 예배를 위해 각 지역사회에서는 무에진muezzin(예배시간을 알리는 사람으로 오늘날에는 스피커가 사용됨)이 첨탑(미나레트minaret) 위에서 예배시간을 알린다. 무슬림들이 사는 사회에서는 하루 다섯 번 다음과 같은 내용의 예배를 알리는 소리(아잔)를 아랍어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4회)

나는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하나이다. 나는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증언하나이다.

예배 보러 올지어다. (2회)

성공을 빌러 올지어다. (2회)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2회)

하나님 외에 신이 없도다.

 

이슬람 신앙의 세 번째 기둥 - 희사(ZAKAT)

이슬람 교리에서 자선 활동은 자발적인 희사(사다카sadaqa)와 의무적인 희사(자카트)로 구분된다. 이중 자카트가 이슬람 신앙의 세 번째 기둥이다. 이슬람에서 희사는 자발적인 신앙 실천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의무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신앙의 네 번째 기둥 - 단식(SAWM)

이슬람 신앙의 다섯 번째 기둥 - 순례(HAJJ)

무슬림들의 순례(하즈)는 메카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메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곳이며 이슬람의 중심지다. 의례와 정신적 측면에서 모두 메카는 전 세계 이슬람 신도들을 예언자 무함마드, 메카, 그리고 서로를 신앙 공동체와 가족으로서 연결하는 중심축이 되어왔다.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 다섯 번 메카를 향해 몸을 숙이는 동료 신도들과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무슬림들은 메카를 방문하는 대순례, 즉 하즈를 실천한다.

 

무슬림과 커피 그리고 고리대금업

16세기 커피와 카페의 합법성 문제도 새롭게 등장한 사안이었다. 커피를 마시면 취하는지, 취한다면 커피를 금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아랍어 카화qahwa는 원래 ‘술’을 뜻했으나 동시에 ‘커피’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카페에는 사회에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모여 위험한 정치적 주제를 논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카페 자체를 허용할 것인가도 문제가 되었다. 커피의 합법성에 대한 논의는 점차 뜨거워졌으나 16세기 중반 커피를 반대하는 세력이 힘을 잃고 말았다. 오래지 않아 커피와 카페는 오스만 제국과 그 너머까지 곳곳에 확산되었다.

 

은행업 무슬림들은 고리대금업(대출)을 전혀 할 수 없다. 쿠란은 이자 징수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장사는 허락하였으되 고리대금은 금지하셨노라.(2:275) 쿠란은 고리대금업자들을 신랄히 비난하지만 자신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이를 매우 옹호한다. 언제나 밤낮으로 알게 모르게 자선을 베푸는 자들에게는 주님으로부터 보상이 있으며 두려움도 슬픔도 없노라. 고리대금을 취하는 자들은 악마가 스침으로 말미암아 정신을 잃어 일어나는 것처럼 일어날 것이다.(2:274-275) 무슬림들은 정직한 금융거래를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비무슬림과의 거래도 허용된다.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원리주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시아파의 교리인 이마마imama에 있습니다. 이마마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잇는 후손인 이맘에게 권능을 부여하고 그들을 숭배하는 이론인데 시아파 공동체에서 이맘은 무슬림 교리와 법률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갖는 유일한 해석자가 됩니다. 수니파는 칼리프를 이슬람 율법(샤리아)의 수호자로 보는 반면, 시아파는 이맘을 그 이상으로 간주합니다.

 

수니파는 전체 무슬림의 약 90퍼센트를 차지하며 수니파가 지배적인 국가로는 모로코, 그리고 무슬림 세계의 다른 한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가 있습니다. 

 

원리주의 : 원리주의자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632년부터 661년까지 무슬림 공동체를 통치한 네 명의 정통 칼리프와 같은 계승자들이 실천하던 ‘원래의’ 순수한 이슬람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은 내부적으로는 수피즘, 외부적으로는 기독교(중동의 경우), 불교, 물활론적 신앙(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등)으로 인해 무슬림들이 신앙을 실천하는 방법이 급변했고, 이런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가 참된 이슬람을 오염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살라피주의Salafism는 하나의 순수한 이슬람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동이다. 오늘날 이 시각을 확산시키기 위한 그들의 투쟁(지하드)은 세속주의, 물질주의, 억압과 부패로 보이는 서양의 현상에 이의를 제기한다. 20세기 말 아프가니스탄에서 등장한 탈레반Taliban은 이슬람 운동의 다소 극단적인 형태에 속합니다.

 

지하드(투쟁)

전통적으로 지하드의 개념은 영적인 측면의 대大지하드(알 지하드 아크바르al-jihad al-akbar)와 일반적으로 전쟁으로 해석되는 소小지하드(알 지하드 알 아스가르al-jihad al-asghar)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지하드는 무슬림이 자신의 저속한 성향과 세속적 욕망을 없앰으로써 자아를 극복하여 정의로운 삶을 살기 위한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투쟁인 반면 소지하드는 신앙을 방어하기 위한 싸움, 즉 무장 투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동반자들, 그리고 이슬람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을 모범으로 삼아 대지하드와 소지하드가 한 사람의 삶에서 공존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쿠란에서 지하드가 언급되는 구절은 24개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은 지하드의 영적 측면을 강조한다. “믿음을 가진 자, 이주를 한 자, 하나님의 길에서 투쟁한 자 이들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나니 하나님은 관용과 은혜로 충만하심이라”라고 한 2장 218절이 좋은 예다. 남을 죽이는 물리적 싸움을 의미하는 단어는 키탈qital로 지하드와 매우 다르다.

 

책의 마무리

이슬람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로 사하라 이남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슬람은 기독교를 넘어서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또한 우리는 여러 종교가 함께 존재하는 세상을 살면서 종교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다른 종교에 대해 넓은 마음을 갖고 배타적인 자세를 버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정치, 사회, 법률제도와 상관없는 개인의 신앙 체계로 축소되어 세속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사회에 귀속될 것인가? 무슬림 대중은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무력분쟁에 의존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이슬람이 현대사회에 적응하면서도 정치적이고 사회적 세력으로 남을 수 있는 이슬람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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